2019.06.12(수)
2019.06.12(수) 맑음
아침 일찍 정남이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성회제(性會祭) 제당(祭堂) 누수관련 공사를 맡은 인부로부터 연락이 왔나 싶어 전화를 받았더니
어제부터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면서
오늘중으로 작업이 마무리 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하고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달려 갔습니다.
윗채 뒷부분 지붕에서 흘러 내리는 빗물을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빗물 받이를 처마끝에 다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어제와 오전중에는 제당 뒤 길가에 설치되어 있는 상수도 계량기가
지면보다 낮게 설치되어 있는 것을 돋구어 재설치 하였고,
제당 뒤 배수로를 깊게 파서 담장 밖 고랑으로 낙숫물이 흘러가게 하라고 했는데
시멘트를 발라서 그냥 각을 주어 낙숫물이 집안에서 흘러 나가게 해 놓았습니다.
여튼 내 맘에는 쏙 와 닿지 않는 작업이었지만
정남이 형님은 만족하는 듯한 인상을 내게 주었습니다.
거의 12시쯤 작업을 마무리하고는 제당 옆에 있는 정든한정식으로 가서
셋이서 점심을 먹었는데 내가 밥값을 계산하고 일행보다 늦게 제당으로 돌아오니
공사를 맡은 류상국씨가 공사를 일찍 서두르지 못한 사실에 대해 기다려 준것에 대해 고맙다면서
오늘 점심값은 자기가 주겠다며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건네 주기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문중 돈으로 밥값을 계산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겠지만
이미 내 마음은 내 사비로 계산한다고 맘 먹었기에 거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랫채에 있던 세입자가 두고간 수족관 자재 일체를 류상국씨가 가져온 화물차에 몽땅 실어 놓고는 처리를 부탁했습니다
밥값 문제로 싫다는 소리도 하지 못하고 폐기물 처리를 하겠다며 꾸역꾸역 둘이서 화물차에 싣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랫채 뒤에 있는 쓰레기도 말끔히 청소를 하였습니다.
아마 제당을 매입한 이후로 오늘 처럼 깨끗히 청소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업자가 한꺼번에 장비와 우리가 실어준 수족관 자재 등을 적재하지 못해
한번 갔다가 온다고 하여 다시돌아 오면 영수증을 받고 공사대금을 계산해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낯선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그곳에 같이 서있던 큰형수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보니
설핏 안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영 낯선 얼굴이 아닌지라 형수한테 누구냐고 물었더니
유용선 딸이라고 하므로 그러면 종남이 아니냐고 했더니 맞다고 하므로 종남이는 내 초등학교 동창생이고
어릴적에 우리 앞집에 살았던 친구로서 스쳐 지나간 종남이를 불러 세워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종남이가 반갑다며 자기집에 같이 가서 커피라도 한잔 하자고 했는데
어릴적에 같은 동네 어느 집에서도 물도 얻어 마시지 않은지라 선듯 내키지 않아 공사업자에게 공사대금을 치러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며 슬쩍 둘러대며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 도착한 류상국씨에게 영수증을 받고는 혹시 나중에 내가 직접 연락할 일이 있을지 몰라 그의 연락처와 이름을 물어서 폰에 입력시키고는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종남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돌아가면 안될것 같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종남이 엄니는 나이가 많아 지난번에 내가 용돈이라며 5만원을 손에 쥐어주면서 인사를 했는데도
오늘도 나를 몰라 보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누구라고 말을 했더니 그러냐면서 반갑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 앞집이 종남이네 집이었는데 우리가 도로 건너편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집이 멀어 졌지만
어릴때에는 눈만 뜨면 얼굴 보는 지척에 살았었습니다.
종남이가 깎아온 참외를 내보다 먼저 와 있던 같은 동네에서 결혼했던 윤자 누님과 한조각이 먹으면서 종남이와는 50년만에 만났다고 하면서 옛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는 어릴적 명래라는 동네 형이 살던 집이 다른 사람 손을 몇손 거쳐 이제 내가 모르는 사람이 집을 샀고 대문도 예전과는 달리 뒷골목길로 새로 내었다고 하였기에 돌아 오면서 그 집 앞으로 가보았는데 종남이도 따라 나와서 같이 둘러 보고는 헤어졌습니다.
그때 그 집 옆 지금은 빈집이 되어 있는 집에 원재라는 아이가 살았는데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의 동생 원점이네는 그후 충무로 이사를 갔었습니다.
지금은 고향마을에는 빈집이 많았고
모두 낡아 있어서 당장 거처할 수 없는 집들이 서너채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