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1.03.14(일)

버팀목2 2021. 3. 14. 08:01

2021.03.14(일) 흐림

 

 

 

 

 

코로나 19라는 疫病의 창궐로 달리 취미생활을 할게 없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출판사 마로니에북스 20권, 총 8,684p)를 2020.05.13자 통영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하여 같은 해 07.24자 끝을 읽고 나서, 설민석의 삼국지를 읽었고,

2020.08.31자 다시 손에 잡은 책이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10권이었습니다.

 

토지는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서 최참판 댁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여 만주 용정으로 갔다가 다시 평사리로 돌아왔고 주로 경상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사투리로 씌여져 이해가 빠른 반면,

 

태백산맥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주 무대로서 내가 접해 보지 못한 남도 특유의 사투리로 씌어진 문장들로 해독이 어려운 대목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2020.08.31~10.05까지 10권을 읽고는

2020.10.16부터 1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여 ,

 

태백산맥의 제4부 전쟁과 분단에서 그 마지막인 휴전선으로 변한 삼팔선에서 그 끝을 맺었습니다.

태백산맥은 이제 책장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마지막을 필사해 봅니다.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만 3년

1개월 22일 만에 총소리가 멈추게 되었다. 따라서 1945년 8월 15일 해방

과 동시에 미 · 소의 합의로 그어진 직선의 삼팔선은 꾸불꾸불한 곡선의

휴전선으로 변했다. 그 난해한 곡선은 '전쟁이 끝난 선'이 아니라 '전쟁

을 쉬는 선'이란 뜻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구체적인 차이를 잘

모른 채 그저 '전쟁이 끝났다'고 했다.

「근디, 그간에 죽은 목심덜이 징허게 많을 것인디, 다 을매나 될랑

고?」

「징글징글허게 많을 것인디, 고것 얼 누가 무신 재주로 다 알겄어.」

맞는 말이었다. 그 수를 자세하게 밝혀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가고, 날이 지나가면서 대충 짐작하는 숫자가 나

오게 될 터였다.

전쟁이 끝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신문들은 평양방송이 8월 7일에

발표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박헌영 외에 이승엽 · 이강국 · 임화 · 설정

식 등 열두 사람에 대한 숙청이었다. 재판을 아직 받지 않은 사람은 박

헌영 하나였다. 나머지 12명은 재판을 거쳐 형이 확정되어 있었다.

이승엽 · 조일명 · 임화 · 이강국 · 박승원 · 배철 · 백형복 · 조용복 · 맹종

호 · 설정식은 사형.

윤순달은 징역 15년.

이원조는 징역 12년.

그들의 죄상은 첫째, 미 제국주의를 위해 감행한 간첩행위. 둘째, 남반

부 민주역량 파괴 약화, 음모와 테러, 학살행위. 셋째, 공화국 정권 전복

을 위한 무장폭동 행위였다.

이 소식은 며칠이 지나 각 지구의 신문을 통해 모든 빨치산들에게 전

해졌다.

그 신문을 보고 이해룡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고 말았다.

「소장 동지, 소장 동지, 이것 좀 보십시오. 결국 이럴 줄 알았습니다.

보십시오, 그때 94호 결정서에서 모든 잘못을 남선 단체들한테 덮어씌

웠을 때 저는 벌써 이런 결과가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당이 종파주의

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러나 소장 동지의 면전이라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휴전이

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렇게 남로당계만 쏙 뽑아 이 꼴을 만든단 말입

니까. 이건 벌써 그때부터 음모된 종파주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래

도 당을 믿어야 합니까!」

눈에 불을 켠 이해룡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김범준은 느리게 눈을

올려 떴다.

 

「이 동지, 그때 내가 이 동지한테 했던 약속을 지킬 때가 온 것 같소.

이 동지가 할 말이 더 많은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털어놔

보시오. 어떠한 내용이든 정식 토론으로 접수하겠소.」

김범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예, 할 말이 많습니다. 저는 그때 남선 단체들이 모든 걸 잘못했다고

했을 때 솔직하게 말해 분하고 억울했고, 너무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럼

북선 단체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인데, 당이 어찌 그리 편파적인 결

정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말입니다. 남로당과 북로당은 벌써 오

래전에 합당을 했습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는 오로지 조선로

동당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철통같이 믿었고, 오로지

조선로동당과 인민의 승리를 위해 투쟁을 바쳤습니다. 남로당의 잔재를

일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인공이 시작되고 멋모르는

사람들이 '박헌영 동지 만세'를 부를 때 저난 모든 당원들은 그런 행위

를 철저히 막으며 '김일성 잔군 만세'를 부르게 했고, 왜 그래야 하는지

를 열심히 지도하고 학습시켰습니다. 그리고 북선 동무들이 갖는 우월

감과 자만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남선 동무들은 충돌

을 피하고 좋게 해결하려고 많이들 참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당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남선 단체들에게 책임을 씌우더니 결국은 남로당

계를 숙청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남쪽 출신들인 우리는 뭡니까. 우리

는 분명히 남로당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합

니까. 누구를 위해 투쟁해야 합니까. 당한테 버림을 받았으니 이제 와서

개들의 세상으로 손을 들고 내려가야 하겠습니까? 말씀 좀 해보십시오,

소장 동지!」

이해룡의 충혈된 눈에는 눈물이 번지고 있었다.

「좋소, 이 동지의 말 잘 들었소. 이 동지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

는 말이오. 그런데 내 말을 하기 전에 내가 이 동지한테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소.」

김범준은 어느 때 없이 엄중한 얼굴로 이해룡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길이 냉정하고도 엄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해룡은 그 눈길에 밀리는 기분으로 말했다.

「그건 다름이 아니고, 이제부터는 이 동지의 감정을 누르고, 이 동지의

생각도 접어놓고, 우리가 당사를 학습할 때처럼 그런 마음으로 내 말을 들

어달라는 것이오. 그렇게 할 수 있겠소?」

「예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내 얘길 시작하겠소. 내가 지난번에 이야기를 뒤로 미

뤘던 것은 나도 오늘과 같은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이었소. 그때 상태로

얘길 해봤자 제대로 설명이 안 됐을 것이오. 이 동지는 지금 그때의 일

을 한 가지 상기할 게 있소. 그게 뭔가 하면, 두 도당위원장이 결정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었는데, 그때 '남선 단체들의 잘못'에 대해서 이 동

지나 중간간부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처럼 두 도당위원장도 이의를 제기

했느냐, 안 했느냐, 하는 점이오. 어떻소, 생각이 나오?」

김범준이 이해룡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글쎄요······ 그게 ······.」 이해룡은 미간에 신경을 모으며 고개가 기

울어져 한참을 있더니,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별 의견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맞소. 두 동지는 그 대목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소.

왜 그랬는지 알겠소?」

이야기를 풀어갈 실마리를 잡은 김범준은 이해룡을 지그시 쳐다보

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참 이상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해룡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솔직하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영문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은 그때 벌써 선택적 결정을 했던 것이고, 두 동지는 당의 그 뜻을

파악하고, 이의 없이 접수했던 것이오.」

「선택적 결정, 그게 무엇입니까?」

이해룡의 얼굴이 긴장되었다.

「이 동지, 잘 들어보시오. 민족해방전쟁이 남조선을 해방시키지 못하

고 휴전협상에 임하게 되었소. 상황이 그렇게 되었을 때 당은 인민 앞에

서 어떻게 해야 되겠소. 당에는 인민들 앞에 책임질 의무가 있소. 그 의무

가 무엇이겠소? 이 동지가 지난번에 지적한 것처럼 미군 개입 같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겠소? 그건 전쟁이 진행된 원인이고 결과는 될 수 있어도

당이 인민 앞에 지는 책임은 될 수 없소. 만약 그것으로 책임을 대신한다

면 그건 당의 비겁이고, 인민에 대한 기만이오. 당은 인민들에게 민족과

인민의 해방을 약속했고, 따라서 인민들의 피의 헌신을 요구했소. 그런

데 결과는 무위로 돌아갔소. 그때 당은 인민들의 피의 헌신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오. 그 책임을 수행하지 않고는 당은 인민 앞에 존

재할 수 없소. 그 책임의 수행을 위해 당은 '선택적 결정'을 하게 되는 것

이오. 이 선택적 결정은 인민의 단결을 위하는 것인 동시에 당의 장래를

위한 것이며 또한 원대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준엄한 '역사 선택'인 것

이오. 그 역사 선택의 결과가 이번 일이오.」

「아니 그럼 박헌영 동지께서 스스로 역사 선택을 했단 말입니까?」

이해룡은 그동안의 생각이 완전히 뒤집히는 착란을 느꼈다.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죽음도 나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소 그건

이미 볼셰비키 당사가 입증하는 바이고, 그건 이미 볼셰비키의 전통이

기도하오. 그걸 이해하는 데 있어서 조금도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소

바로 이 동지 자신을 보면 되는 거요. 이 동지는 지금 역사 투쟁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놓고 죽을 각오로 투쟁하고 있소. 바로 그 정신

이 역사 선택을 하는 게 아니겠소. 젊은 이 동지가 하는 일을 박헌영 동

지가 안 해서야 되겠소?」

이해룡은 비로소 눈앞이 새로 열리는 것을 느꼈다.

「예,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떠오른 것인데, 한 가지 의문이 있

습니다. 왜 하필 박헌영 동지가 역사선택을 해야 하는 겁니까?」

김범준은 이렇게 묻는 이해룡을 쓰다듬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며 부드

럽게 웃었다.

「이 동지, 지금 우리 앞에 적이 몰려오고 있소. 당적 사명을 전달하기

위해 누구든 하나는 살아나야 하고,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은 적을 막아내

며 죽어가야 하오. 이때 누가 적을 막고 나서야겠소. 그건 당연히 나요.

그건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많은 자가 지켜야 하는 당연한 이무고, 도리

요. 당은 현재고 미래며, 변증법적 발전을 멈추지 않는 생명체 라야 하는

거요.」

「그렇군요 ······ 그렇군요 ······.」

이해룡은 초점을 잃은 듯한 눈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중략~

 

9월이 저물어 가는 어느 날이었다. 화엄사골과 피아골에 일시에 토벌

대가 밀려들었다. 이해룡은 지난번 빗점골과 대성골을 공격했던 병력이

이동해 온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주능선을 넘어 뱀사골이나 달궁골로

빠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김범준을 부축해 가며 여섯 명의 대원과

함께 피아골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살아남아 있는 대원은 여섯이

전부였다.

그들이 주능선에 막 올라섰을 때였다. 어디선가 기관총이 난사되기

시작했다.

「 피해라!」

이해룡이 외쳤다. 그러나 그는 돌아서다 말고 푹 고구라졌다. 총알들

이 잇따라 그의 등을 뚫고 나갔던 것이다. 그의 옆에서 김범준도 허리가

휘청 꺾이며 쓰러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네 명이 쓰러졌다. 그리고 나머

지 네 명은 넘어지고 뒹굴며 비탈을 내려 뛰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 부딪친 나무에서 일찍 물든 나뭇잎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

었다.

 

염상진은 대원 네 명과 함께 막바지에 몰리고 있었다. 위로 밀리고 밀

려 산꼭대기에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토벌대들은 총을 난사해 대며 밀

어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들의 병력동원이나

포위망 구축 같은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확실해지

고 있었다. 그들에게 비트를 기습당하는 순간 염상진은 새로운 배신자

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부사령 동지, 총알이 떨어졌구만요!」

어느 대원의 다급한 소리였다.

「서로 나누어 쓰시오. 함부로 쏘지 말고 한 놈씩 정확하게 겨낭하시오.」

염상진은 가늠구멍을 들여다본 채 지시했다.

「총알이 다 떨어졌는디요.」

뭣이! 그 순간 염상진은 방아쇠를 잡아당기고 말았다. 그 총알이 적을

향해 제대로 날아갔을 리가 없었다. 염상진은 대원들 쪽으로 몸을 돌렸

다. 대원들은 총알이 없으면서도 원형을 이룬 형태로 각자의 위치를 지

키고 있었다. 염상진은 자신의 탄띠를 살펴보았다. 탄창 두 개와 수류탄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는 탄창 두 개을 허물어 네 대원에게 네 발씩 나

눠주었다.

「이게 마지막이오. 한 발씩 정확하게 겨냥해서 쏘도록 하시오.」

「세 발씩만 쏠게라?」

한 대원이 물었다. 그 말은 곧 한 발씩은 남겨야지요? 하는 말이었다.

염상진은 대원들을 휘둘러보았다. 네 명이 모두 입을 꾹 다문 얼굴들이

었다. 그 얼굴들이 평소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금방 느꼈다.

「네 발씩 다 쏘시오. 이게 남아 있으니까.」

염상진은 수류탄을 내보였다. 대원들은 더 말없이 적을 향해 몸들을

돌렸다.

염상진은 적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한 번, 두 번,

빈 탄창이 튕겨 나왔다. 더 쏠 총알이 없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총알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도 방아쇠를 두 번씩만 더 당기면 빈 총이 되

는 것이다. 그는 빈 총의 가늠구멍을 통해 몰려오고 있는 적들을 노려보

고 있었다. 마침내 왔구나! 이젠 가야지! 그는 어금니를 꾸욱 물었다.

문득 아들 광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새벽 공기 같은 맑고 시원한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왔다. 「아부지, 나도 싸게 싸게 커서 아부지맹키

로 훌륭헌 사람이 될라요.」 그는 눈을 질끈 감다. 어머니의 얼굴이, 아

내의 얼굴이, 딸의 얼굴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생각해 냈다.

얼른 왼쪽 윗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날 어머니가 주셨던 돈이 손끝에

잡혔다. 그는 돈을 매만져보고 손을 빼냈다.

 

「부사령 동지, 총얼 다 쐈구만이라.」

뒤에서 들린 말이었다. 염상진은 몸을 돌렸다. 그는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나갔다.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에는 찬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때 아래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염상진. 염상진 들어라. 우린 네가 염상진인 것을 알고 있다. 총알이

다 떨어졌으면 부하들 데리고 자수하라. 자수하면 선처를 보장한다. 이

젠 전쟁도 끝난 지가 오래다. 잘못 생각해서 부하들 불쌍하게 죽이지 말

고 어서 자수하라. 자수하면 틀림없이 선처하겠다. 앞으로 5분간의 여

유를 주겠다.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

 

「동무들, 다 같이 앉읍시다.」

「동무들, 저자들이 떠드는 소리 다 들었지요? 투쟁을 끝낼 때가 마침

내 우리 앞에 왔소. 동무들은 투쟁의 마지막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나 적들이 저렇게 떠들어댄 이상 나는 동무들에

게 당의 원칙을 강요하고 싶지 않소. 이 마당에 여러분의 마지막을 여러

분들 스스로가 솔직하게 결정하기 바라겠소. 저자들의 말을 듣고 자수

하겠다면 가도 좋소. 자아, 백 동무부터 돌아가면서 말해 보시오. 」

염상진의 말이었다.

 

「지넌 여그서 죽겄구만이라.」

「개덜얼 믿느니 경상도 디딜방아럴 믿겄소.」

「더 살아서 헐 일도 웂구만이라.」

「하먼이라, 다 항꾼에 가야제라.」

「동무들, 다들 장하시오!」

염상진의 감격 어린 목소리였다.

 

「염상진 들어라아, 2분 남았다아!」

아래서 들려오는 힘찬 목소리였다.

「자아 동무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한마디씩 하시오.」

염상진이 수류탄을 손아귀에 잡으며 말했다.

 

「머시냐, 바라든 대로 살아봤응께 원도 한도 웂구만이라.」

「나도 더 바랠 것이야 웂는디, 새끼 한나 있는 것이 눈에 볿히요.」

「나도 후회헐 것 아무것도 웂소.」

「나넌 따로 헐 말 웂고, 그저 부사령 동지 뫼시고 죽은께로 영광이오.」

「동무들, 나도 동무들 같은 당당한 전사들과 함께 죽으니 아무것도 더

바랄 것이 없소. 그저 영광스러울 뿐이오.」

 

「동무들, 우리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합시다.」

「동무들, 우리 다 같이 만세를 부릅시다.」

염상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입으로 수류탄의 핀을 뽑았다.

「인민공화국 만세에 -.」

꽝!

 

이틀이 지난 벌교역 앞마당에는 사람의 목 하나가 내걸렸다.

악질 빨갱이 염상진 사살.

 

「야이 씨부럴 눔덜아, 여러 개소리 씹어돌리지 말고 싸게 저것 띠내려!」

염상구가 두 경찰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아니, 워째 그러신다요?」

손을 싸잡은 경찰도 어리둥절해졌다. 상대방은 틀림없이 청년단장 염

상구였던 것이다.

「요런 개좆겉은 새끼덜아,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 당

장에 못 띠내리겄어!」

 

「유 순경, 내 말 잘 들으시오. 청년단이 밀려들면 마지못한 척 물러서

시오. 절대로 경찰에서 그걸 내려주지 말고, 염상구나 청년단 손으로 떼

가게 내버려두란 말이오. 알겠소?」

「예, 알겄구만요.」

 

한장수 노인은 뜻밖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그 사람의 흉한 모습을 보

고 나서 한세상이 또 막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 유명한 대장이 저리 죽었이니 동기나 삼수가 살았을 리가 웂는 일

이제. 말자리나 하고, 생각 똑바라지게 묵은 젊은 사람덜언 다 죽어뿔고

인자 나 겉은 쭉찡이에, 지 욕심 채리는 것덜만 남었구만. 해방이 되고

이적지 8년 쌈에 죽기도 많이덜 죽었제. 쓸 만헌 사람덜 요리 한바탕씩

쓸어불고 나먼, 그만헌 사람덜이 새로 채와지자먼 또 을매나 긴 세월이

흘러야 허는겨? 인자부텀 새로 낳는 자석덜이 장성혀야 헌께 한시상이

흘러가는 세월이제. 그렇제, 갑오년 그 쌈에서 3·1만세까지가 시물다섯

해고, 3·1만세에서 해방꺼지가 또 시물여섯 해 아니라고. 인자부턴 또

그만헌 세월이 흘르먼 워찌 될랑고? 잉, 또 고런 심덜이 모타지겄제. 세

월이란 것이 그냥 무심허덜 않는 법잉께. 나가 질게 살아옴서 보고 젺은

세월이 그렸어. 나도 참말로 징허게 오래넌 살었구만. 인자 나 겉은 쭉찡

이부텀 얼렁얼렁 가야제. 그려야 새로 타고난 목심덜이 묵고 커날 것잉

께. 복동이도, 동기도, 삼수도 웂는 사랑방얼 혼자서 지키기도 인자 심

파허는 일인께. 살아올 기약이 웂어진 사람덜잉께.

 

이틀 뒤에 염상진의 상여가 나갔다. 그는 율어로 가는 길목 어느 산자

락에 묻혔다. 목 아래로는 짚둥으로 몸체와 두 팔다리를 만들어 붙인 그

의 관 위에 서민영과 김범우가 흙 세 삽씩을 뿌렸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갔다. 어둠이 장막을 친 깊은 밤, 무덤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인기척이 실리고 있었다. 어둠에 묻혀 잘 드

러나지 않는 무덤가에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림자들은 무덤을 에워쌌

다. 그림자는 모두 여섯이었다.

 

대장님, 지가 왔구만이라. 하대치여라. 대장님, 대장님이 먼첨 가셔뿔

고, 지가 살아남아 이리 될 줄 몰랐구만이라. 지가 대장님 앞에 면목이

웂구만요. 그려도 대장님이사 다 아시제라. 지가 요리 살아 있는 것이

그간에 총알 피해댕김서 드럽게 살아남은 것이 아니란 거 말이제라. 대

장님, 편안허니 먼첨 가시씨요. 지도 대장님헌테 배운 대로 당당허니 싸

우다가 대장님 따라 깨끔허게 갈 것잉께요.

 

먼저 떠나간 대원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혁

명의 별이 되어 어둠 속에서 저리도 또렷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

던 것이다. 그는 봉화가 타오르고, 함성이 울리고 있는 가슴에다 그 별

들을 옮겨 심고 있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적막은 깊고, 무수한 별들의 반짝거리

는 소리인 듯 바람소리가 멀리 스쳐흐르고 있었다. 그림자들은 무덤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끝》

 

오늘이 내 양력 생일인데,

축하 메시지가 두 사람으로부터 카톡으로 왔습니다.

 

먼저 온 한 명은,

고성중학교 후배인데

고성군수 출마해서 낙선한 후배이고,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최고로 멋진 하루되세요

                 김  x식

 

 

나중 한 명은 처조카다

'고모부.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카마스터 박정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