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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伐草) 하는 날

버팀목2 2024. 11. 24. 13:50

 

벌초(伐草)하는 날

 

김봉은

 

 아버지 산소 벌초하는 날이다. 둘째 조카 석정이와 매년 연례행사로 하는 일이다, 산소로 출발하기 전 가승보(家乘譜)를 펼쳐 보았더니 음력 7월 스무아흐렛날인데 어제와 오늘 양일간 문중 벌초하는 날이어서 내가 선택한 택일이 절묘한 타이밍이었지 싶다.

 이제는 선대 조상님들의 산소는 6대조 조부님이 남겨주신 선산 유산 문제로 집안 갈등을 30여 년간 겪다가 타결점을 찾아 묘지는 전부 소산(燒散) 시키고 산소 땅은 매각하여 제실(祭室)로 대체였다. 이제 아버지 산소 하나만 남았다.

둘째 조카와 9시에 만나기로 하고 큰 집으로 갔는데 집 앞에 큰 조카 승용차가 있기에 웬일인가? 싶었다. 모 협동조합 판매장에서 주말에도 근무한다는 이유로 한 번도 벌초에 참여하지 않던 조카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니? 아니나 다를까. 온몸에 두드러기가 벌겋게 나서 누워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예초기가 마당에 놓여있기에 시험 운전을 해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어제 미리 와서 예초기 날도 새것으로 갈았고, 시험 운전도 해 보았다고 한다. 제법이다. 조카 순서가 바뀌었더라면 집안 평지풍파도 없었을 텐데, 큰형님 상을 치르고 난 뒤의 일들이 스크린처럼 눈앞을 잠깐 스쳐 지나갔다.

 농기계 창고에서 가꾸리 하나를 챙기고 내가 가져간 톱, , 괭이가 든 등산 배낭을 메고 마을 앞에 있는 산소로 향했다. 2년 전 겨울에 칡덩굴을 대대적으로 걷어 냈었다. 작년에는 히말라야 트레킹 간다고 오지 못하고 추석 지나고 산소에 갔더니 벌초가 되어 있었다. 올해는 진입로의 칡덩굴이 장난이 아니었다. 조카가 예초기로 훑고 지나가면 내가 뒤따라가며 낫으로 정리를 해 나갔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1시간여 만에 벌초를 깨끗하게 끝냈다. 준비해 간 술과 간단한 안주를 차리고 둘이 함께 절을 올렸다. 지난해도 성묘를 못 왔고 올 추석 연휴도 가족 여행으로 성묘를 못 온다고 고하며 자식들에게 복()을 주시든지 벌()을 주시든지 알아서 처분하시라고 말씀 올렸다.

 벌초를 마치고 큰 집으로 갔는데 형수님은 코로나 끝에 서울 사는 큰 딸네 집으로 쉬러 갔다고 했다. 아파 누운 큰 조카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릴 만한데 내다보지도 않았다. 갈 때는 벌초하고 큰 집 맞은편에 있는 한정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밥 생각이 없어서 그냥 먼저 출발했다. 학섬 휴게소에 들러 냉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면서 그곳 전망대에 앉아 사량도 쪽으로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청년 시절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다. 벌초 날짜는 가승보에 선영(先靈) () 위치(位置)와 성묘(省墓) 일을 음력 칠월28~29, 시사(時祀)는 음력 시월 25일이라고 명시가 되어 있어 그 날짜에 팔촌 이내 형제간들이 모여서 함께 벌초했다. 벌초가 끝나면 식사를 하면서 술 한잔 권커니 잣거니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곤 했었다. 이제는 어른들 다 돌아가시고 나니. 게다가 아버지 산소만 남아있으니, 조카와 둘이서만 다니게 되었다. 이제 벌초가 예전과는 다르다. 자식에게 할아버지 묘소를 알려주었건만 바쁜 세상에 할아버지 묘소를 챙길는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부모들이 자식들께 부담 주지 않으려고 수목장이나 아니면 고향 산이나 바다에 뼛가루를 뿌려달라고 한다고 한다. 몇 해 전만 해도 납골당이 인기였는데 그마저도 차츰 찾는 자손이 적어지다 보니. 이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큰 숙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