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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수급자의 일상 -완성본-

버팀목2 2024. 7. 26. 09:14

 

 

연금 수급자의 하루 일상

김봉은

 

 34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직을 했다. 재직 중에 퇴직 후에 재취업할 곳으로 자동차운전면허 학원의 감독직을 꿈꾸며 나름대로 보직 관리를 해 왔다. 경찰서 교통관리직 간부로 3년 이상 재직하면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통영지역에 학원이 2개소가 있는데 그곳에 재직하고 있는 선임자들과 또한 학원 경영자들과의 평소 인맥 관리도 나름대로 해 왔기에 퇴직과 동시에 취직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퇴직하자 학원 측으로부터 입사서류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의 회식 자리에 초대되어 인사를 나누었다. 며칠 후 정식 출근을 하기로 되었다. 학교 방학이 시작되어 학원 수강생이 몰리게 되어 조기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현실(現實)과 이상(理想)은 괴리가 있었다. 자동차학원 운영 전반에 걸쳐 비위 문제가 돌출하게 되면 그 형사 책임은 감독이 책임지게 되어 있었다. 현직에 있을 때 학원에서 비리 문제로 감독직에 있던 선배가 검찰에 구속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아온 터다.

내가 그린 그림은 학감으로 임기 5년을 채우고 그동안 자동차운전면허 이론 강사 자격증이나 실기 자격증을 취득하여 재취업하여 자동차운전면허 학원에서 10년 이상을 직장 생활하는 것이었는데, 이상(理想)으로만 그려졌을 뿐 끝이 났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연금 수급자로 살기로 했다. 아내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아침 6시에는 눈을 뜬다. 창문을 열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는 침대 위를 테이프로 닦아내고는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서 양치질과 세수를 한다. 그런 다음 스킨과 크림을 바른 후 선크림을 바른다.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어 저승꽃 피는 걸 예방 차원이다.

베란다로 나가서 창문을 열고 오늘의 날씨를 체크하고 노트북을 열고 블로그에서 4,662일째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날짜와 날씨, 그리고 그날 해야 할 일이나 달력에 메모가 된 내용이 있으면 적어놓고 노트북을 닫는다. 하루 일과 중에 내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스냅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나중에 일기 쓰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일기장 마무리는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할 것이다. 현관에 가서 조간신문을 챙겨 오고 생수를 한 컵 마신다.

 오전 7시 무렵 집사람과 같이 북신동 집을 나선다. 죽림에 사는 외손자 현종이를 등교시키기 위해서다. 집사람은 죽림주공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의 밥을 챙겨 먹이고 등교하는 것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것이다.

 810분까지는 현종이네 집 앞 베란다 의자에 앉아 현종이가 학교 갈 채비를 하는 동안 가방 속에 든 수필집을 꺼내 두 편 정도를 읽는다. 수필을 읽는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한 독서이기도 하지만 외손자 둘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제스처이다. 그런 다음 거실로 나와서 현종이 책가방과 마스크 등을 챙긴다. 출발 준비가 끝나는 대로 집을 나선다. 차 시동을 걸고는 아르바이트 일을 마친 집사람이 오기를 기다린 다음 같이 출발한다. 830분경 현종이가 등교하고 나면, 재래시장이나 월드마트로 가서 시장을 보고 집으로 와서 아침 식사를 한다. 가끔은 복국이나 콩나물국이나 시래깃국으로 외식도 하지만.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집사람이 세탁기를 돌려서 나온 세탁물을 부엌 싱크대 앞에 내다 놓으면 앞 베란다 건조대에 너는 것은 내 몫이다. 그러고 나서 헬스 가방을 챙겨 늦어도 11시에는 집을 나선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2시이다. 이전에는 컵라면 등으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수영장으로 갔었는데 식사 후 곧장 수영강습이 좀 무리인 것 같아서 우유나 토마토를 믹서기에 갈아놓은 것을 한 컵 마시고 수영장으로 간다. 50분간 수영강습이 마치고 모두 모여 손을 맞대고는 파이팅을 외치고는 강습 종료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온다.

 조간신문 마지막 장 오피니언 란과 사설은 필독이다. 그러고 나서 빨래건조대에서 세탁물을 걷어서 정리한다. 내 의류는 안방으로 가져와서 각 위치에 정리하고 집사람 세탁물은 거실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 여기까지가 가사 담당 내 몫인 셈이다.

 이제부터는 저녁 식사를 할 궁리를 한다. 집사람은 아침밥을 챙겨주고 나서 오전 1030분경 출근하여 자판기 관리일과 봉평동 어린이 돌보미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밤 10시가 되기 때문에, 저녁은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틈틈이 떠오르는 수필 자료를 메모해 두었다가 시간 되는대로 습작도 한다. 한 달에 34일간에 걸친 제주 올레길 탐방, 토요일에 두어 차례 이어지는 산행 후 촬영해 온 사진으로 올레길 탐방기와 산행기를 쓴다. 한편을 작성하여 오, 탈자 검색까지 마치면 대충 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전혀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가끔은 세월 가는 걸 잊고 살다가 문득 세월이 유수(流水)라는 말의 주인공이 내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몸서리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청소년기에 서로 좋아했었지만, 내가 입대한 이후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던 이웃 동네 경아가 부산의 어느 하늘 아래에서 노래 가사 말처럼 익어가고 있겠지 하고 막연히 심란해진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이젠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연금 수급자의 일상은 매일매일 반복의 연속이다. 그나마 취미생활이 있고, 함께해 줄 가족이 벗이 있으니 외롭지 않다.

 후배들에게 젊어서부터 취미 한두 개는 가지라고 권한다. 나이 들어도 외롭지 않게 좋은 친구 몇을 곁에 두고 연금으로 대접도 해가면서 남은 긴 세월 즐겁게 살라고 조언하는 선배, ‘연금 수급자의 소소한 스케치 여기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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