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5.03.14(금) 화이트데이,무전순대돼지국밥집

버팀목2 2025. 3. 14. 09:53

2025.03.14(금) 흐림


이월 보름날 우리 아파트 앞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어제까지 입 다물고 있단 우리 아파트 화단 목련이 오늘 꽃망울을 터뜨렸다.



☆     봄아 봄아 봄날을 위한 편지

소박한 풀꽃을 사랑하는 친구야
나는 축복의 땅 시골이라는 신의 성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아니

인간이 만들어 놓은 땅인 도시라는 곳에
풍요는, 보이지 않는 치열함과 경쟁이 낳은
산물이라는 걸
누런 지퍼 같이 펼쳐진 도시 길가에 피는 꽃은 힘겨운 신음으로 꽃을 피운 단다

시골살이 조금은 불편해도
봄에 실루엣이 상앗빛으로 스미던 날
흙을 가꾸며 들꽃 속에서 박꽃 같이 행복한
미소를 짓던 아름다운 친구야

지금은 잊힌 동토의 계절
들판은 황량하고 능선의 나무는
썰렁한 바람 둘러업고 일없이 흔들리며
사금파리 뽀쪽한 결핍의 계절일지라도

친구야
함박눈 오는 날이면 백옥 같이 고운 빛 들판은 얼마나 아름답더냐
눈 덮인 산하 상고대 눈꽃 나무는
얼마나 장엄하고 듬직하지 않더냐

은둔의 계절인 겨울에도
흙속에 잠자는 씨앗의 숨결을 너는 들었을 테지
잠자는 대지의 호흡을 말이야
오감을 동원해도 회색빛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전설이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련이라는
자양분 없이 잉태하지 않는다더니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 추위는
꿔다 가도 한다는 속담을 증명하듯
찬바람이 날을 세우더라

추위 속에서도 친구가 사는 남도의
향기로운 봄소식은 어여쁘다
눈 속에 설중매나 붉은빛 동백이 피어나는
소식이 있던 날은 얼마나 찬바람이 불던지
결핍의 계절을 건너온 꽃망울이 귀하고
사랑스럽다

봄 햇볕에 그을린 친구의 황톳빛
손아귀에 우직하게 걸려 있는 호미 끝에서
봄이 송알송알 솟아나겠지
친구의 겨울 봄꽃이 어서 잠에서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까만 밤
하얗게 지새워 봄바람에 향기를 띄운다


☆* 시 전 집 * 중에서 /  이   도   연        글



♤       에       필      로      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서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 봄 편 지   /   이   해   인

☆* 시 전 집 *    중에서 ♡



 
 
 오늘은 우리 아파트 화단에 목련이 첫 꽃봉오리를 터뜨린 날이다. 이런 날 이런 글을 필사해 본다.  

 나는 늘 글을 쓰고 싶었다. 장래 희망은 글 쓰는 사람.
글쓰기는 꼭 해보고 싶은 일이자 희망, 열망이자 꿈이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백일장 키즈'로 자라며 글쓰기는 평가받는 과제가 됐고, 긴장되고 부담되니까 어렵고 두려웠다. 점점 글쓰기는 대단한 예술이나 업적, 타고난 재능의 영역으로 느껴졌다. 선망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며 좌절했다. 이렇게나 좋은 작가들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했다. 진로를 선택할 때마다 글쓰기는 전공과 직업으로 치환돼 나에게 가치와 이익을 안겨줄 좋은 전망이어야 했다. 좋아하는 마음과 좋은 전망. 안팎으로 가능성을 점쳐 보다가 모든 가능성을 포기했다. 내가 글을 써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없었다. 
 장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반대와 애매한 재능과 취약한 마음가짐으로 나는 장래 희망을 바꿔갔다. 번번히 떨어지는 공모전 대신 수능공부에 전념했고, 취업이 어렵다는 문예창작과는 지원하지 못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작가'는 공란으로 지웠다. 교사와 기자, PD와 같은 '작가'를 비켜간 직업을 장래 희망란에 적었다. 일과를 마친 밤에야 몰래 글을 쓰는 '키친테이블라이터'로 오래 지냈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진로특강 과제로 멘토를 찾아가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중년의 다큐멘터리 PD였던 멘토가 내게 물었다. 학생은 꿈이 뭐냐고. 그의 반짝이는 문 때문이었을까. 이상한 대답이 나왔다. "저는 글을 쓰고 싶어요."
 사실 스펙을 쌓으며 대기업에수십통의 자기 소개서를 내고 있던 나로서는 충동적인 대답이었다. 이 한마디가 뭐라고 소리 내 말하기조차 어려웠을까. PD가 활짝 웃었다. "멋지네요. 이제 글을 쓰면 됩니다." 단순하고도 단단한 긍정이었다.
 "글쓰기는 업(業)의 영역이라기보단 삶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글을 쓰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합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선 자기 이해가 우선이겠지요. 아니러니 하게도 자기를 이해하려면 자기 삶을 써봐야 합니다. 계속 쓰세요. 공개적으로 쓰세요. 글쓰기로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무엇을 할 수 있을 진 아무도 모르니까요. 계속 쓰면 뭔가는 달라질 겁니다."   
 이후로 용기 내 공개적으로 글을 썼다. 계속 글을 쓰자 댓글이 달리고독자가 생기고 기회가 찾아왔다. 첫 책을 낸 건 7년이나 지나서였지만 , 한때 내게로만 침잠했던 글은 어느새 사람과 세상을 향해 갔다. 글쓰기에 진지했기에 그만큼 두려워단 걸 뒤늦게 알았다. 나에겐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용기와 지지가 필요했다.
 "저는 글을 쓰고 싶어요." 작가인 내게  사람들은 말한다. 스스로에 대한 의구신과 이미 늦었다는 좌절감ㅇ르 품었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희망한다. 글쓰기의 첫 단어가 '용기'라면 마지막 단어는 '계속'이라고 생각한다. 용기와 계속을 연결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단어는 '다시'. 몇 번이고 다시, 글을 쓰면 된다. 자기 자신이 될 때까지. 다른 삶을 이해할 때까지. 나만은 당시 장래의 희망을 힘껏 긍정한다. "멋지네요. 이제 글을 쓰면 됩니다."   
 
 
 
#1

 

[광화문·뷰] 동물성 보수와 식물성 지식인의 동거

'탄핵 트라우마'가 바꾼 무기력 식물성 보수가 변했다
문제는 보수 내 갈등 격화 보수의 방, 굳이 좁힐 건가

입력 2025.03.14. 00:12업데이트 2025.03.14. 09:49
 
 
 
 
 
 
 

 

지난 연말, 국회의원과 교수, 기자와 평론가 등 보수 진영 지식인 혹은 지식 노동자들 예상은 엇비슷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매우 빠르게 결론 날 것이며, 이르면 4월 대선도 가능할 것이다. 많이 틀렸다. 탄핵 반대 시위대 기세가 나날이 높아졌다. 지금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을 두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도 ‘거리의 보수들’이 받쳐줬기에 가능했다. 냉골에서 외친 이들의 반발이 없었더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처럼 ‘풀보다 먼저 눕는 보수’가 되었을 것이다.

“보수주의에는 ‘자본론’ 같은 건 없다, 우리가 보수주의라 부르는 태도는 이념적 교리 체계가 아니라 어떤 일군의 정서로 이뤄진다”고 한 건 보수 이론가 러셀 커크였다. “보수의 미덕은 품격”이라 믿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의, 혹은 그보다 많은 보수 대중이 지금 ‘품격 따윈 개나 주라’고 하고 있다.

지난 1월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현장. 여의도 '탄핵찬성' 집회에서 먼저 사용한 은박지 보온용품을 착용하고 있다. /뉴스1
 
 

어느 전직 교수가 민주주의와 예술에 관해 수준 높은 글을 자주 올려왔다. 며칠 전, 그의 페이스북에 “현안을 외면하는 교수님 글에서 역겨움을 느낀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격변이다. 그런 격변이 지금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보수끼리 이렇게 격렬히 다투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는 듯하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1966년 9월 18일부터 10월 16일까지 28일간 아내 보부아르와 일본을 여행했다. 초청자인 게이오대와 교토 진분쇼인(인문서원)출판사는 이들을 극진히 모셨다. 긴자의 최고 요정 신키라쿠에서 식사, 1박에 200만원이 넘는 교토 다와라야 료칸 숙박을 넘어 일본 전체가 ‘지식계의 비틀스’를 극진히 모셨다. 교토로 가는 날, 두 사람이 도쿄역에 나타나지 않자 초 단위까지 맞추는 신칸센은 출발을 3분이나 늦춰줬다. 당시 동행했던 통역가는 사르트르가 다른 도시에서는 ‘산토리 올드’에 취해 인사불성이 됐고, 퇴실하면서 호텔 위스키 한 병을 슬쩍했다고 ‘즐거운 추억’으로 묘사했다.

 

이 여행에서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으로 출간되는 강연을 세 번 했다. ‘지식인이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위치하지만, 피지배자를 위해 지배자를 비판하는 존재’라고 했고, 일본의 반(反)베트남전 시민단체와도 만나 미 제국주의를 성토했다. 하지만 지적질도 상대를 봐가면서 했다. 체 게바라, 호찌민을 옹호하고 독일, 프랑스,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일본 제국주의는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유럽 좌파와 달리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쏙 빠져,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 지식인은 태생적으로 기생적이고, 비겁하다.

 
1966년 9월 28일간 일본을 방문한 사르트르. 일본에서 비틀스급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일본인 통역가가 쓴 책에 상세한 일정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진영의 용병이 되는 것을 꺼린다. 보수 지식인이 유난히 그렇다. 보수 진영에서 먹고살면서도 자신을 ‘중도 보수’라 소개한다. 좌파 지식인이 상대를 ‘극좌’라 비난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보수는 상대 주장이 조금만 격하면 ‘극우’라 멸시한다.

자기 과오에 엄격한 것이 보수의 품격이라 믿던 보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빠르게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좌파의 ‘진영적 태도’를 복사했다고 느껴질 만큼 싸움의 태세와 기술이 변했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든다. ‘동물성 보수의 시대’라고 표현하겠다. 격하고, 맹렬하고, 공격적이다.

이유가 있다. 현재 상황을 ‘체제(體制) 전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전쟁이다 총을 들라’는 대중과 ‘우리 편도 실수가…‘ 하는 이들이 불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네모와 동그라미는 겹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네모를 비난해야 동그라미인가, 동그라미를 경멸해야 네모인가? 미국 보수주의자 맷 슐랩이 지난 2019년 한국 보수의 사분오열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수’라는 방에 다 같이 있다면, 어느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