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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의 봄

버팀목2 2024. 11. 24. 13:56

 

미륵산의 봄

                       

                                                           김 봉 은       

                                             

 

 미륵산에 봄이 왔다. 진달래는 물론이고 봉수골 벚꽃축제도 곧 시작된다고 한다.

산 정상에 오를 겸 봄을 보러 나섰다. 용화사 행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서 우측 미수동 띠밭등 쪽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여긴 음지라 풀꽃 하나 보이지 않았다.     

 띠밭등을 지나 작은 망 아래에 이르렀을 때 갈색 세상이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얼레지 천국이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군락지에는 운동장 크기만큼이나 얼레지의 싱그러운 잎새가 자라나고 있었다. 큰 망을 지나 봉수대 아래에 이르니 산자고 대여섯 송이가 활짝 피어 나를 반겼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우리 아파트 앞 화단에도 산자고가 있는데 아직 소식이 없었는데 이곳이 더 따뜻하나 보다.

 이 길은 박경리 묘소를 조망할 수 있는 사잇길로 사람들의 왕래는 별로 없는 길이다. 약수터 가까이 오자 여기저기서 얼레지가 만개해 손을 들고 있는 모양새다. 이쪽은 미륵산에서 볕 바른 남쪽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같은 미륵산 자락이라도 기온 차가 있다. 현호색도 꽃을 피웠다. 진달래꽃은 아직 겨울 꿈을 꾸고 있는지 찾아볼 수가 없는데, 인스타에서는 활짝 핀 진달래를 도배해 놓았다.

 약수터에서 물 한 바가지를 단숨에 들이켜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녁 약속이 있는데 봄꽃을 스마트폰에 담느라고 뒤늦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뜀박질로 광장 버스 종점에 도착하니 쉼터 의자에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이 앉아 계셨다. 꽃구경을 나오신 것 같은데 아마 보지는 못했을 터이다. 얼레지, 현호색, 산자고는 높은 곳에 피어 있었으니까···. 버스 안에서 선생님과 잠시 환담을 하는 사이 정량동 삼성타워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선생은 잘 가라고 손짓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멋진 시인이시다.

몇십 년이란 세월은 흘러 선생의 모습은 변했지만, 고귀한 인품은 그대로였다. 음악이 전공이셨던 선생은 여전히 멋있는 중년이셨다.

 지난번 고동주 문학상 시상식 때 뵙고 오늘 두 번째 만남이다. 내가 문학 근처에 가니 이렇게 만나게 되나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집 앞에 도착했다.

 통영의 봄은 미륵산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주일 후쯤 미륵산으로 다시 봄 마중을 가야겠다. 그때는 진달래도 만발하고, 벚꽃도 나비처럼 휘날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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