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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 가는 길에 만난 각시붓꽃

버팀목2 2024. 11. 24. 14:01

 

매바위 가는 길에 만난 각시붓꽃

 

김봉은

 

 벽방산 정상에서 홍류마을 쪽으로 약 400m 내려가면 매의 형상을 한 돌기둥이 고성만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바위가 있다. 이를 일컬어 벽발팔경(碧鉢八景) 중 이경(二景)인 옥지응암(玉池鷹岩)이라고 부른다.

 옥지응암 찾아가는 길에 각시붓꽃 한 무더기가 피어 있었는데 평상시 같았으면 아! 언제 봐도 예쁜 각시붓꽃이 인적도 없는 곳에 피었네!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했을 것인데 그날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고 말았다. 이유인즉, 산에 대해서는 나를 달인(達人) 정도로 알고 있는 지인의 길잡이가 되어 벽방산의 숨은 명소를 보여주겠다며 매바위를 찾아 나섰는데 접근로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중이었다. 한참 후에야 아차! 싶었다. 초행길에도 눈여겨보았고 되돌아 나올 때 길잡이가 되어주었던 고마운 꽃이 아닌가. 그 고마움을 가벼이 넘기고 지나쳐 왔다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등대 같은 꽃인데 인사말이라도 하고 왔더라면 이렇게 후회스럽지는 않을 것인데. 옛 만리암(萬理庵) 절터에서 앉아 벽발팔경 중 1경인 만리창벽을 바라보며 애꿎은 내 심사만 탓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전국 산 비경을 찾아 인증사진을 올리는 사람 중에 벽방산의 매바위를 찾아왔다가 배회만 하고 헛걸음을 했다는 글을 다수 읽었다. 실제 접근로를 아는 사람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산행 지도만으로는 쉬이 찾기 힘든 곳에 숨어 있다.

 십여 년의 등산 경험으로 한번 답습했던 길을 잘 찾는 편인데 겨우 접근로를 찾을 수 있었다. 하산도 낮은 잡나무 숲으로 인해 어디가 어딘지 판단이 어려웠다. 그때 저만치 각시붓꽃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닌가.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날 벽방산에 숨어 있는 명소를 지인에게 알려주겠다며 의기양양하게 나섰다가 찾지도 못하고 헤맸다면 얼마나 체면을 구겼겠는가. 길 안내자가 되어준 각시붓꽃의 예쁜 모습 잊지 않으려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소 별 도움도 안 된다고 여기며 주변 사람을 얕잡아 보고 괄시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어느 날 그 사람이 갑자기 내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중요한 자리에서 마주칠 수도 있다. 그러니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각시붓꽃이 내게 준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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