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않는다
김 봉 은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긴 겨울밤, 뒷산에서 부엉이가 우는 날이면 이불속에 엎드려 좋아하던 친구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내가 사는 마을은 읍내에서 십리나 되는 반농반어의 시골마을로 우체국도 없고 우체통이 없으니 우표 파는 가게도 없었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낮에 배달부가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 나타나면 배달부에게 부치는 것이었다. 낮에 배달부가 나타나면 부치려고 기다리다가, 아침에 다시 읽어 보니 얼굴이 간지러워 부치지를 못했다. 아마 그렇게 밤에 썼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가 수백 통은 되리라. 젊은 날 감성에 젖어 쓴 편지를 아침에 읽어 보고는 아궁이 속으로 편지를 넣으며 외로운 마음을 달래곤 했다. 밤새 배달부가 마을에 나타나길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은 편지 부칠 생각에 가슴은 콩닥거리며 설레었다.
편지는 누가 뭐래도 군대 있을 적에 주고받는 편지가 제일 추억에 남는다. 동계 훈련을 마치고 피곤해하면서도 여자 친구가 보내준 편지를 읽으면 용기가 솟고, 힘이 났었다. 솔직히 가족이 보내준 편지보다는 여자 친구가 보내준 편지가 더 반가웠다. 요즘 젊은이들은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느끼던 그 짜릿하고 즐거운 맛을 알까.
요즘은 카톡이라는 새로운 문명시대가 열려 즉흥적으로 보낼 수가 있다. 편지지에 글을 안 써도 되니 정말 편한 세상이다. 편지는 고칠 수가 있고, 잘못 쓰면 다시 쓸 수도 있지만, 카톡은 자칫 실수하기 쉽다. 보내고 나면 후회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얼마 전 밤에 카톡을 보낸 적이 있다. 술 마신 김에 감성에 젖어 후배에게 보냈다. 아침에 보내온 답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회장님! 밤에 쓴 편지는 보내는 것이 아녜요!”
내가 보낸 글을 읽어 보니 민망했다. 술 마신 김에 평소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 않고 보낸 것이다. 한동안 모임에 빠져서 얼굴 보고 싶으니 꼭 참석하라는 뜻으로 보낸 것이긴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술을 마시고 감성에 빠져 카톡을 쓰지 않으려 한다.
한동안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않는다.’라는 그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주책이란 말은 들으면 안 되겠지. 편지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을. 친구나 후배에게도 얼굴 붉힐 일이 없게 만사 조심해야겠다. 지금도 ‘밤에 쓴 편지는 보내는 것이 아니다.’를 되뇌며 워드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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