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4.11.24(일) 돼지영농후계자 식당 부르고회 월회

버팀목2 2024. 11. 27. 11:47

2024.11.24(일) 맑음

 



☆    천     년      사      랑

천년에 한알씩 모래를 나르는 황새가 있었단다
그 모래가 쌓여 산이 될 때까지
너를 사랑하고 싶다

천년에 한 번 피는 꽃이 있었는데
그 꽃에 꽃잎이 쌓이고 쌓여 하늘에 닿을 때까지 너를 사랑하고 싶다

학은 천마리를 접어야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나에겐 너만 있으면 행복하다

하늘에게 소중한 건 별이고
땅에 소중한 건 꽃이고
나에게 소중한 건 바로 너 란다

내가 한강에 백 원을 빠뜨렸을 때
그것을 찾을 때까지 우리 사랑하자

예전에 모르던 사랑 지금은 편한 사랑
나중에 편안할 사랑 바로 너 란다

장미꽃은 사랑
안개꽃은 죽음을 뜻하는데
나는 너에게 안개꽃에 장미를 꽂아 주고 싶다 왜냐면 너를 죽도록 사랑하니까

영혼이 맑은 그대
일생을 통해 만난 그대
이 세상 다 변해도 사랑해요
영ㆍ원ㆍ히ㆍ

햇살이 눈부신 날
투명한 유리병에 햇살을 가득 담고 싶다
나의 흐린 날에 주기 위해서

사랑한단 말이다
사랑한단 말이다
사랑한단 말이다


☆* 시인 뉴스 포엠 *  중에서 / 작 자 미 상



♤     에           필          로          그

기억으로 각인된 불멸의 자화상 앞에
흔적의 길로 들어서면 세워진 추억이 너무 많아서 돌아갈 수도 없는 나는 이렇게 먼 자리 서 있다

오롯이 꽃잎 같은 가슴에 단 하나
별빛 같은 심장에 압정의 침묵을 꽂는
그대, 진정 누구인가

살아도 살아도 떼어낼 수 없는
흉금에 눌어붙은 환상의 등불이여
초유의 화음이여

그대, 진정
가슴에 사랑을 담아본 적이 있는가
마악 지나가는 달빛에 달콤한 눈물 하나가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 가슴에 사랑을 담아본 적이 있는가  
             /  양  애  희


☆* 그 도 세 상 *   중에서 ❤️


첨삭지도를 위해 양 선생님에게 보냈던 메일이 다시 보냈다고 카톡문자가 어제 왔었는데 어제 낮에는 이래저래 바람 쐬러 다니고, 저녁에는 재통영 고중 23회 동창회 모임하느라 오늘 새벽에야 메일을 열었다. W 형태를 →W 형태로,  피아골 밤 별이 유독 많았고 밝았다 → 피아골 밤하늘은 전등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라 별이 유독 많았고 밝았다로 붉은 글자를 삽입 첨삭하여 저장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북극성을 보며
 
김 봉 은
 

 나는 가끔 새벽에 나와 별을 본다. 직장에서 근무할 때 당직 날이면 새벽 3시 청사 주변을 순찰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언제였던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암수 부엉이가 부~엉하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한 놈은 내죽도 공원 소나무 숲에서 울고, 다른 한 놈은 소방서 옥상 송신탑에서 번갈아 가며 사랑 타령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고향 마을 뒷산에서 울려 퍼지는 부엉이 소리는 고요한 밤 동네를 공포에 몰아넣는 듯 들렸다. 성인이 되어 듣는 부엉이 울음소리는 짝을 찾는다는 걸 알게 되어선지 미소가 지어졌다.
 가끔 올려다본 밤하늘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나는 별은 보면 제일 먼저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찾고 이어서 북극성을 찾는다. 군대에서 지도를 보는 독도법을 배웠는데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기 위해서였다. 5개가 모여 W자 형태를 이루고 있는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찾고, W자의 꼭짓점에서 5배쯤 거리에서 북극성을 찾는다. 재미있는 것은 카시오페이아와 다른 별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위치를 이동하는데 북극성만은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북극성이 위치한 방향이 진짜 북쪽으로 산에서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찾으면 된다.
 오래전 전문적인 등산에 입문하기 전의 어느 늦가을의 일이다. 피아골의 단풍이 좋다는 말에 일행 넷이 의기투합하였다. 피아골 단풍도 구경할 겸 지리산의 3대 봉 중 하나인 반야봉에 오르기로 했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배낭에 챙기고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사찰 연곡사를 지나 피아골 들머리인 직전마을에 주차했다. 산행길 단풍은 삼홍소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렀다. 등산로 우측으로 흐르는 계곡물과 어우러져 산과 사람까지 모두 붉게 물든다고 하여 삼홍으로 불리는 피아골 단풍에 정신을 빼앗겼다. 지리산의 주 능선인 피아골 삼거리에 올라 우측으로 진행하여 임걸령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반야봉에 올랐다. 커다란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오던 길로 도로 내려오는데 임걸령 샘터에서 일행 두 명이 무릎이 아프다며 주저앉고 말았다. 등산은 초보였지만 귀동냥한 건 있어서 가을 산행은 일찍 시작해서 마쳐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잠시 쉬었다가 뒤따라오라 하고는 둘이 함께 함께 원점회귀 코스를 향해 걸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피아골 삼거리 표지판은 보이지 않고 이상하게도 올라올 때 보이지 않던 높은 봉우리가 떡 버티고 있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등산객이 있어 피아골 삼거리가 아직 멀었느냐고 물었더니, 벌써 지나왔다는 게 아닌가. 앞에 있는 산이 노고단이라며 조금 있으면 어두워지니 노고단을 거쳐 성삼재로 하산해야 한다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일행들과 같이 타고 온 내 차가 직전마을에 있는데 성삼재로 하산하라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해는 지는데 헤드랜턴도 없었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개발되기 전이라 핸드폰 뚜껑을 열어 희미한 통화 화면 빛에 의하여 걸었다. 그러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렸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순간, 군대에서 배운 대로 하늘을 올려보며 북극성을 찾았다. 북극성이 있는 반대쪽이 남쪽이니 북극성을 등지고 가면 직전마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한참 후 피아골 삼거리 표지판을 발견하고 내려오는데 경사가 심하고 돌길과 철재 계단, 교량을 따라 이동하다가 동행이 발목을 접질렸다. 부축하여 하산하는데, 전방에 등산로 표지판이 보이는 게 아닌가.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환호성이 터졌다. 피아골대피소를 지나 한참을 내려오는데 맞은편에서 손전등을 든 사람 둘이 올라오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일행이었다. 먼저 직전마을로 내려갔다가 도착하지 않은 우리를 찾아 손전등을 빌려서 찾으러 온 것이었다. 그때 서야 피곤이 몰려오면서 부축해 오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걸 알았다. 사람의 몸에서 나온 끈적끈적한 땀이 바짓가랑이에서 등산화 안으로 흘러내려 양말까지 젖은 상태였다. 좀 쉬었다 가자 하고는 교량 위에 덜렁 드러누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두운 산속에서 자칫 낭떠러지에서 떨어졌거나, 독도법을 몰랐다면 기온이 내려간 깊은 산속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참 아찔했다. 마음이 안정되니 별이 눈에 들어왔다. 지리산 피아골 밤하늘은 도시의 전등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라 별이 유독 많았고 밝았다. 은하수와 어우러진 무수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날 우리를 살린 것은 북극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산속에서뿐만 아니라 인생길에서도 길을 잃고 헤맸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으랴. 산에서는 북극성을 찾듯이, 인생길에서도 옛 성현의 말씀이나 어른들의 말씀과 책에서 얻은 지식도 북극성이 아닌가 싶다. 인생길의 나침판이 되어 준 북극성, 오늘도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찾는다.
 
 수필 한편 완성본이다. 이렇게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가면 언젠가는 책이 되리라 믿는다. 
저녁에는 '돼지영농후계자' 식당에서 56년생 통영경찰서 퇴직자 모임이 있었다. 오늘따라 저녁에 소주 한잔 하자고 연락온 곳이 두 곳이나 더 있었다. 조경천이가 근 한 달 만에 전화가 왔었고, 이학재 동생이 뜬금없이 형님 모시고 소주 한잔하고 싶다고 전화가 왔기에 오늘은 사전 약속이 있다고 했더니 내일로 미뤄 만나기로 했다.

 
▣ 조선일보 뉴스레터

#1
정우상 칼럼

 

 요즘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을 보면서 “대장 출신이 뭐 저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민주당이 군 출신을 영입하는 것은 안보에 대한 안정감을 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영입한 인사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김병주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그를 영입한 민주당은 ‘한미 동맹의 상징’이라고 그를 추켜세웠다. 운동권 대신 전문가 중심으로 영입했다 자랑도 했다. 그 역시 “더 튼튼한 안보, 더 강한 군대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라고 말했다. 대장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김병주를 두고 군에서는 “내가 알던 그 사람 맞나”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그는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일 연합 훈련을 재개하자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진주할 수 있다”며 친일 몰이 소재로 활용했다. 그러나 한·미·일 훈련은 김 의원이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근무하던 때 최소 6차례 시행됐다. 한·미·일의 안보 협력은 가능해도 군사 동맹이 될 수 없는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의원은 여당 대변인의 ‘한·미·일 동맹’ 표현을 트집 잡더니 국회에서 “정신 나간 국민의힘”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의 이재명 대표 코드 맞추기로 지난 8월 개딸들의 지지를 받아 민주당 최고위원이 됐다. 군 출신으론 이례적이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대표는 동향 출신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한다. 무투표로 원내대표가 된 박찬대 의원은 부친이 안동 출신이다. 김 의원도 예천 출신으로 이재명 체제에서 성골(聖骨)이다. 야당 강세인 경기 남양주 공천을 받아 재선 했고,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국방장관 1순위로 꼽힌다. 정부의 우크라이나 파견단을 파병으로 규정해 국회 동의를 주장하고, 방산 수출 때 국회 동의를 받는 법안을 발의했다. 북한 파병으로 안보의 핵심변수가 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나라 전쟁”이라고 한 이 대표 박자에 맞춘 것이다. 이제 보니 ‘육군대장 김병주’는 이런 처세술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었다.
 김병주를 보며 20년 전 민주당 전신인 열린 우리당에 군 출신 비례로 들어온 조성태 의원이 떠올랐다. 육군 대장을 거쳐 김대중 정부 때 국방부장관을 지낸 조 의원은 노무현 정부가 전시작전권 이양을 추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의원 모임을 만들었다. 여야 142명이 참여했다. 그때만 해도 안보에선 여야가 의기투합을 자주 했다. 노사모가 그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의원직을 그만두려 했지만 당 지도부가 말렸다. 당시 조 의원은 “아무래도 정치는 안 맞는 것 같다”며 괴로워했고, 보좌진들도 “언제든 국회를 떠나려 짐을 싸두고 있다”라고 했었다.
 
 민주당 정부에서 장관과 의원을 했지만 군인이라는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장관 취임 직후 발발한 제1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직후 백령도와 연평도에 신형무기 K-9 자주포를 배치하도록 지시한 것도 조 의원이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도발 때 군은 이 자주포로 즉각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국방장관 때 주적(主敵) 개념을 만들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정부가 주적 개념을 삭제하려 했지만 “현시점에서는 안 된다”며 버텼다. 북한이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다시 주적을 트집 잡은 얼마 뒤 조 장관은 경질됐고, 군에서는 “주적 고수가 경질의 이유”라는 말이 나왔다.
 조 의원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다루려 하자 “NLL은 영토 문제다. 회담 의제에 올리면 북한에 이용당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권력 앞에서도 원칙을 굽히지 않았던 집권당 의원, 이것이 그의 마지막 공직 생활이었다. 구차하게 권력 주변을 서성이지 않고 후학을 양성했다. 조성태 의원은 2021년 8월 14일 별세했다. 그의 아들은 육군 장성으로 복무 중이다. 김병주를 보며 “대장, 정말 아무나 하는구나” 고개를 저었다가 조성태 장관을 회고하며 “대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안심했다. 필자가 병장이었을 때 부대 최고 지휘관이었던 ‘대장 조성태’께, 그때는 할 기회도 없었던 ‘충성’ 경례를 드리고 싶다.
 
 
 
#2
조형래 칼럼
 
 러시아 푸틴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논란을 빚는 대목이 있다. 2021년 말부터 당장에라도 전쟁이 터질 듯한 상황이었는데도 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용인하겠다는 듯한 제스처로 푸틴을 자극했느냐는 것이다. 바이든은 푸틴, 그리고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의 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주권 국가의 선택 사항”이라며 나토의 동진(東進)을 멈추라는 푸틴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랬던 그가 2년 7개월여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지금에 와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긋는다.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본격화된 옛 소련 위성 국가들의 나토 가입은 유럽의 안보 지형에 직결되는 예민한 문제였다. 2014년 친서방 정책으로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뺏겼던 우크라이나는 자국 안보와 러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토 가입을 추진했던 반면 푸틴은 같은 뿌리의 옛 소련 연방국이 서방 편에서 총부리를 겨눈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현재 전쟁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과 러시아 쿠르스크 일대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소(獨蘇)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다. 쿠르스크에서는 독·소 양국에서 340만 명의 병력과 1만 대의 전차가 동원된 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가 벌어졌고 남쪽의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에서는 사상자가 200만 명에 이르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시가전이 전개됐다. 이런 역사를 기억하는 푸틴은 서방에게 나토의 동진 중단을 공식 보장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푸틴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그전까지 사이가 좋았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려는 조지아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무덤덤하게 통보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푸틴의 호전성을 바이든은 왜 간과했을까? 트럼프도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바이든이 전쟁을 부추겼다”며 미국의 지원을 요구하는 젤렌스키를 “지구 최고의 세일즈맨”이라고 비꼬았다.
 전쟁에 지친 유럽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회의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극우 세력은 물론 대(對) 러시아 강경파였던 영국에서조차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영국을 대표하는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직전 게재한 기사에서 서방과 젤렌스키가 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휴전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가 독재자로부터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다는 데 의미를 두고 나토 가입을 조건으로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푸틴의 공격을 견뎌낸 정신 승리를 했으니 우크라이나 영토의 20%에 이르는 러시아 점령지는 포기하라는 것이다. 트럼프 측 휴전안은 향후 20년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배제하는 것으로 젤렌스키에게 더 불리하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 깊숙이 빠져드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3년 가까이 세계 경제를 짓눌렀던 식량·에너지 등 공급망 교란과 북러·북중 밀착으로 인한 동북아 안보 위기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전쟁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경제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러시아나, 미국 지원 없이는 전투 수행은 물론이고 공무원 월급이나 연금 지급 등 몇 개월도 버티기 힘든 우크라이나로서는 협상장에 나오라는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우리도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수교한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긍정 평가가 90%를 넘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하는 나라다. 러시아와 교역 규모는 전쟁 전 연간 38조 원 수준으로 치솟았다. 삼성·LG전자는 러시아의 국민 브랜드로, 오리온 초코파이는 최애 식품으로 추앙받았고 현대차 점유율은 30%에 달했다. 하지만 러시아 제재로 교역 규모는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현지 진출 기업들의 손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19세기 독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나 20세기 최고의 외교가 헨리 키신저는 그 어떤 이념이나 가치보다 국익을 우선했다. 지금이야말로 지도자에게는 사자의 용맹보다 여우의 교활함이 더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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