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5.01.01(수) 乙巳年 새해 첫날 미륵산제

버팀목2 2025. 1. 2. 06:08

2025.01.01(수) 맑음


 

 

 

 

비진도, 소지도, 오곡도, 국도, 연화도, 초도, 욕지도(좌에서 우로)

당겨 본 지리산 천왕봉

 

고성 천황산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

 

어렴풋이 대마도까지

 

봉도, 욕지도, 납도, 상, 하 노대도



☆   새해에  꿈꾸는  사랑

생각의 잎을 키워
바람 불고 비 내려도
한 그루 지혜로 꿋꿋이 서 있는
당신의 언덕, 희망의 나무로 살고 싶어라

마음의 꽃을 피워
외롭고 쓸쓸한 날, 때로는 추운 날
당신의 뜰에 나부끼는 영혼의 향기
천상의 꽃으로 피고 싶어라

믿음의 뿌리로
날마다 물을 내리는
나무여, 꽃이여
축복의 빛이 당신의 햇살로 비출 때

멈추지 않는 기도로
넘치지 않는 소망으로
사랑의 낙원을 꿈꾸는
구름 같은 자유, 천국의 새로 날고 싶어라

신비로운 당신 품에서
꿈결 같은 사랑을 노래 하리라
사막의 눈물을 씻고
오아시스의 별빛으로 잠들고 싶어라


☆* 시가 있는 아침, 이 채의 뜨락 *     중에서 /  이    채       글


♤    에      필      로      그

당신이 아무리 큰 나무라 해도
한 그루의 나무로는 산을 이룰 수 없으며
당신이 아무리 찬란한 별이라 해도
별 하나로는 하늘을 채울 수 없습니다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하루하루 참으로 어려운 이때
있어야 나눌 수 있는 것이 물질이라면
없어도 나눌 수 있는 것은 마음이겠지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나눌 것이 더 많음을 깨달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복의 한 해, 희망의 한 해를 열어 갑시다

마음마다 화평이 깃들고
집집마다 웃음꽃이 가득하여
사람마다 만복이 오는 소리
새해엔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새해엔 우리 모두 행복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채


☆* 시가 있는 아침, 이 채의 뜨락 *    중에서


☆ P * S

새해는 당신의 여생 중 가장 젊은 날입니다
부디 꿈을 이루소서
하루가 소중한 날 되십시오

바라옵건대
올 해는 당신의 해가 되시기를
두 손 모아 소망합니다

   을사년 새해 첫날에
                    준 ♡

 

 

 

 

 

 

 

 

 

 

 새벽 3시부터 잠이 깨어 안절부절못했다. 지난해처럼 6시쯤 나가서 택시를 타고 용화사광장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헤드랜턴 켜고 걸어서 정상으로 갈까? 아니면 시내버스 운행시간까지 맞춰서 나가서 버스로 용화사광장으로 갈까? 5시쯤 미리 나가서 북신사거리에서 미래사로 가는 한아름 승합차에 동승해서 갈까? 궁리를 하다가 다시 눈을 붙여 볼까 하고는 이불속으로 들어갔는데 잠은 오지 않는다. 일단 이불을 개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양치질부터 하고는 세수를 하면서 '출발준비부터 해 놓고 보자'로 정리가 되었다. 한아름 단톡방을 열었더니 05:50경 북신동 장대삼거리 밑 삼미식당 부근에서 김종진이 동승할 거라고 하고 거북시장 '아! 그 집 떡집'에 정전무가 미륵산제에 올릴 떡을 주문해 놓았는데 움직이는 차량편에서 떡을 찾아 싣고 오라는 글을 읽고는 떡집 앞에서 동승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매고 갈 배낭은 어제 잠자기 전에 대충 꾸려 놓아었다.

 

 04:40경 집을 나섰다. 떡집 앞에 도착하니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고 사람들이 보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에게 미륵산으로 갈 떡을 달라고 했다. 한 박스였다. 떡을 찾아서 들고는 북신사거리로 가면서 황 회장에게 전화를 해서 아까는 떡집에서 만자고 했었는데 이제는 북신사거리로 떡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가다 보니 김종진이 집 앞까지 갔다. 거기 가니 손정호와 김종진이가 나와 있었다. 그렇게 합류해서 진남초교 앞에서 정전무가 합류하여 미래사 앞까지 갔다. 속속 도착하여 짐들을 배분하여 매고는 6시경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30여분 걸려서 정상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해맞이 객들이 벌써 도착해 있었고 계속 올라오고 있었는데 일출 예정시간은 07:34 경이다. 한 시간을 정상에서 추운데 떨고 기다려야 한다. 산악팀들이야 제를 지낼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은 너무 빨리 올라온 것 같았다. 물론 자리 선점도 있지만 그래도 6시 30분은 이른 시간이다. 정상 바로 아래 바람을 피하기 좋은 장소에 김종진과 손정호, 정진호, 배만규가 자리르 틀고 앉아 데워온 정종을 따랐다. 두어 잔 마시고 있으니 한아름 총무가 검은색 제복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동위제관에 봉해졌다. 제일 먼저 술을 올리는 순번이다.

 

 그렇게 제46회 乙巳年 해맞이 미륵산제가 시작되었다. 통영시체육회 회장, 관광개발공사 사장, 강석주 전 통영시장과 뜻있는 산악인과 많은 일반 시민들이 獻酒를 올렸다. 

  8시경 모든 의식이 종료되고 산악연맹 행사 참여자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미래사 쪽으로 하산을 해서 타고 갔던 승합차편으로 제2 금진호 초장집으로 갔다. 주 메뉴는 아귀탕이었다. 미륵산제에서 가져온 제물 건어로 소주를 마시고 아귀탕으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1
[2030 플라자] 교과서에서만 봤던 계엄
임현서 법무법인 초월 대표변호사
입력 2025.01.01. 23:56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늦은 시간 야근을 하고 있던 같은 법인 변호사들이 난리가 났다. 밤늦게까지 고객에게 보내줄 서면을 작성하던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급한 서면을 작성하면서도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991년생인 나로서는 교과서에서만 봤던 바로 그 계엄이었다.

이내 비상계엄 포고령이 언론사를 통해 보도됐고, 오늘은 일찍 잠들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벌어지는 상황을 주시했다. 변호사로서 느끼는 계엄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엄청났다. 평상시 같았으면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었지만 창밖 국회대로는 국회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로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그런데 현대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계엄 사태와 2024년 현실에서 마주한 계엄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계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어두컴컴한 밤 비밀스러운 군부대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되는데, 오히려 현실에서는 국회 앞 현장 상황을 생중계하는 스마트폰과 이를 둘러싼 시민들의 생각과 감정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 유튜버, 일반 시민을 막론하고 잠들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공간에서 계엄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고, 영상을 중계하고, 주변의 반응을 전하고 있었다.

여러 매체로 계엄의 현황을 접하며 하던 일을 마저 처리하니 새벽 한 시 반 정도가 됐다. 그새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회에 진입하기 위해 담장을 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비롯해 긴박한 상황이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늦은 밤 아이들을 재운 아내는 계엄 뉴스를 보면서도 계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내 또래 젊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긴급한 상황 중에 계엄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몰라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기엔 불안한 밤이었기에 상황을 지켜보며 밤을 새우더라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내 이름을 딴 작은 유튜브 채널에 계엄이 무엇인지 계엄법의 내용이라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영상을 올릴 셈이었다. 부리나케 영상과 함께 계엄법의 내용을 노트북에 띄우고 7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해 올렸다. 동영상 인코딩을 거쳐 영상이 올라가니 벌써 새벽 네 시가 넘었다.

나는 현장에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계엄법 영상을 올리며 얼떨결에 계엄 특집 시민 보도와 논평에 동참한 셈이 됐다. 조금 있으면 동이 트는 새벽이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계엄법을 설명해 주는 영상을 보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내 영상은 금방 조회 수가 10만이 넘어 하루만에 5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정확히 계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찬찬히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던 새벽에 정보가 궁금했던 국민이 많이 시청한 것이었다.

아침이 되어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양한 매체를 살펴보니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간밤에 있었던 일들이 생생히 재구성되고 있었다. 밤새 잠들어 있었던 시민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었다. 40여 년 만의 비상계엄이니만큼 세상이 많이 달라졌는데, 가장 큰 변화는 모든 시민이 계엄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계엄은 하룻밤 사이에 온 세상이 어두침침해지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어도 시민들의 눈과 귀는 더 바쁘게 움직인다는 것을 밤새도록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잠들지 않는 시민들의 눈과 귀가 위기에 봉착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 저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