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4.12.31(화) 일년의 끝

버팀목2 2024. 12. 31. 08:13

2024.12.31(화) 맑음


설을 준비하는 사람들

알 가자미 열여섯 마리

참돔 세 마리


☆   한  해 가  저 물 어  가 고

한 차례 눈 내려 그늘진 곳
발 길 닿지 않은 비탈진 벼랑에
잔설이 서푸름 얼어가네

바삐 오는 겨울밤 깊어가는 창가에
불 밝혀 책 펴고 더운 김 서리는 찻잔에
여울지는 상사 잠들지 못하여

아득히 사라져 가는 무엇들
애잔이 부르며 끌어안고 틈새 열어 감아 시 쳐도 보고
하오며 아직은 더디 달아나리라
밤새 눈 붉고 침침 하여지고 그예 흐리어
지워져 가네

작은 햇살 비껴드는 사이로
우짖는 새소리 귀를 기울이나니
흔들리는 가지 끝에 피어 오른 싸늘함
따스하게 어루이는 새 날 오기를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사랑보다 찬란한 보석이 없음을
정녕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를 미워한 날이 더 많았던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믿음보다 진실한 빛이 없음을
가슴으로 새기고 새겼어도 불신의 늪으로
높은 울타리만 쌓았던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용서보다 아름다운 향기가 없음을
진실로 깨닫지 못하고 반목의 싸늘한 바람만 불어왔던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비우고 낮추라는 말이 정녕 옳은 줄은 알지만 부질없는 욕심의 씨앗만 키워왔던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변명으로 포장한 고집과 아집으로
고요한 자성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끝내 용서하지 못하고
끝내 홀로인 고독의 외딴 방으로
어리석게도 스스로 자신을 가둬버린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나만 잘 살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누
불치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한 채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뒤돌아서 당신을 비난했던 슬기롭지 못한
나를 용서하세요
지혜롭지 못한 나를 용서하세요

12월의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곧 하얀 눈이 펑펑 올 것 같습니다
그때, 내 마음의 천사도 함께 왔으면
오늘은 왠지 하얀 눈길을 걷고 싶습니다


☆* 시 전 집 *  중에서 / 오   서    아        글


♤       에      필     로     그

이별이란 말보다는 그리움이란 말을
남기자
작은 삶의 울타리 안에 크고 작은 기쁨과 행복 상흔으로 남은 죄절과 슬픔과 고통
울퉁불퉁하고 울록볼록했던 삶의 길목에서

화들짝 웃음도 지어보고 울컥 화를 풀어
콧물 눈물도 흘리며 걸어왔던 한 해 동안의 삶 잘 살았구나
이 많은 사람과 수 없이 많은 일 들 속에서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행복한 사람

이른 새벽 바다를 가르고 오르던 태양
한낮의 뙤약볕으로 온 세상을 어르고
저녁이면 제 몸을 다 태우며 서산을 향해
돌아가는 놀 빛 석양처럼

아쉬움이란 말보다는
기다림이란 말을 남기자
새로운 날을 향해 기다림으로 마주하자


☆ 12월의 송가   /   신       영
.
☆* 시 전 집 *   중에서 ♡


 

#1

[백영옥의 말과 글] [386] 한 해를 정리하며

입력 2024.12.28. 00:12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글을 쓰다 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노동요로 정훈희의 ‘안개’를 듣다가 지금 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바람이여 안개를 거둬가 다오”라는 노랫말처럼 안갯속 풍경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말이면 반복하는 일 몇 가지를 실천했다. 새 다이어리 사기, 다음 해의 습관 계획 세우기, 전화번호부 정리하기 등이다.

연말에는 다음 해에 만들고 싶은 새로운 습관을 정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 정리하기 등 많은 실패에도 루틴을 반복하는 건 계획을 적는 것만으로 절반은 성공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경우, 이런 심리적 만족감이 늘 결심 과잉을 만들었다. 습관 리스트 만들기에 몰두하면 애초 계획은 서너 가지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해가 된다는 부푼 마음에 목표에 대한 현실적 분석보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패가 계속 반복되면서 실패보다 훨씬 나쁜 측면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작심삼일’이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정신적 습관이 된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이제 나는 새해 목표 딱 한 가지만 세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참는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 저녁형 인간에겐 ‘아침 운동’과 ‘7시간 이상 숙면’처럼 아무리 취지가 좋은 목표라도 실행 초기에는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목표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다.

 

해가 바뀔 때,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도 정리한다. 인연에도 생로병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는 물건을 애써 정리한다. 입지 않는 옷, 쓰지 않는 그릇 등은 치운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비워야 소중한 것들이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간을 채워 간다는 건 다른 면에서는 공간을 잃는 것이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 공간도 그렇다. 아무리 비좁은 곳이라 해도, 버리고 정리하면 새로운 공간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2025년 당신의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희망으로 채워지길.

 

#2

[박정훈 칼럼] 제2, 제3의 한덕수가 계속 나오면

민주당의 점령군 행세는
갈수록 가관이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아무리 겁박해도
제2, 제3의 한덕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입력 2024.12.28. 00:16업데이트 2024.12.30. 17:01
 
 
 
우원식 국회의장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 정족수가 151명이라고 밝히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장석으로 몰려가 항의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의결 정족수 논란을 무시하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한 것은 자신들을 무소불위 점령군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뜻도 된다. 이재명 대표의 대권 플랜에 일분 일초가 아쉬운 민주당으로선 정치색 없는 실무형 총리가 저렇게까지 저항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대행은 민주당 강행 6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도 여야가 합의해 오라고 버텼다. 임명을 거부한 게 아니라 정치적 해결을 요청한 것인데 민주당은 즉각 탄핵의 칼을 뽑아들었다. 한 대행으로선 탄핵소추당할 것을 알면서 정면 돌파로 옥쇄(玉碎)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허약해보이던 관료 출신 한덕수가 이렇게 세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나.

한 대행에게 따라붙는 상투어가 ‘무색무취’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까지 두루 중용되며 경제수석·부총리에다 총리 2번을 지낸 화려한 이력 덕에 ‘영혼 없는 관료’란 이미지가 굳어졌다. 기능만 탁월한 ‘행정 기술자’라는 것인데, 취재 현장에서 수십 년간 그를 봐온 필자는 이런 상투적 낙인이 얼마나 곡해된 것인지 알고 있다. 그는 정치적으론 무색무취하지만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선 분명한 자기 철학을 갖고 일관성 있게 주장해온 사람이다. 적어도 ‘영혼 없는 기술자’는 틀린 표현이다.

그는 철저한 시장주의자이자 경제 영토를 넓혀야 기회가 온다고 믿는 개방 신봉자다. 그의 개방 철학은 정치 환경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았고, 좌파가 집권했다고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 도리어 그가 개방의 신념을 밀어붙여 정책으로 현실화한 것은 좌파 정권 때가 더 많았다. 김대중 정권의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한국 영화 스크린 쿼터 폐지를 주장해 영화계를 뒤집어 놓았고, 노무현 정권의 경제 부총리 때 이를 절반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관철시켰다. 추곡 수매 제도를 폐지하고 쌀 시장을 개방해 성난 농민들에게 ‘볍씨 세례’를 당하기도 했다.

21세기 한국 외교의 최대 성과인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숨은 조정자도 한덕수였다. 노무현 정권 당시,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이 협상 전면에 섰지만 막후에서 큰 전략을 짜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며 그림을 그린 것이 그였다. 한덕수는 대한민국이 생존하려면 미국과 경제의 피를 섞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협정 체결에 성공했고, 그는 이명박 정부의 주미 대사로 기용돼 미 의회의 FTA 비준안 통과까지 마무리지었다. 한·미가 안보에 이어 경제 혈맹을 맺은 데는 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무색무취가 아니라 신념을 갖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는 이념을 좌·우로 가르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국가를 위로 끌어올리는 ‘업(up)’이냐, 추락시키는 ‘다운(down)’이냐만 있을 뿐이란 소신을 국회 답변에서 밝힌 적도 있다. 좌든 우든, 나라에 도움되고 국익에 기여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업’ 세력으로 규정되길 원하는듯 했다. 김대중·노무현의 좌파 정권에서도, 이명박·윤석열의 우파 정권에서도 국익 관점만 보는 ‘업’의 입장에 서왔다는 것이다.

올 4월 총선 후 거대 야당의 폭주가 본격화되자 한 총리의 입도 거칠어졌다.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던 그가 야당 공격에 조목조목 반박하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해 정가의 화제가 됐다. 일각에선 정치적 야심을 의심했지만 그가 정치에 뜻도, 소질도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한 총리는 여·야 대치를 치닫는 정치 상황을 답답해했다. 민주당이 과거의 전통을 잃고 이재명 1인을 위한 전투형 사당(私黨)으로 전락해가는 것을 보며 자신이 알던 그 당이 아니라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탄핵 폭주, 입법 폭주, 방탄 폭주를 거듭할수록 한 총리도 투사로 바뀌어갔다. 침묵해선 안 된다고 작심한 듯했다.

야권에선 과거 자기 편이던 한 총리에게 ‘사람이 달라졌다’고 비난했다. 김대중 청와대 시절 비서실장·경제수석으로 호흡을 맞췄던 박지원 의원은 국회 질의에서 “나쁜 한덕수”로 변했다고 공격했다. 한 총리는 “제가 왜 변하냐”고 반박했는데, 변한 것은 자신이 아닌 야당이란 항변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합리성을 잃은 민주당이 ‘나쁜 민주당’으로 추락했다고 호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변질된 민주당은 대통령에 이어 권한대행까지 탄핵소추해 국정을 혼란으로 밀어넣었다. 정권 탈환을 위해선 경제가 망가지든, 국정이 마비되든 상관없다는 그 무모함이 소름 끼친다. 말 안 들으면 팬다는 민주당의 점령군 행세는 갈수록 가관이다. 두번째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경제 부총리도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또 탄핵으로 협박할 게 뻔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폭주를 멈추지 않는 한 아무리 겁박해도 제2, 제3의 한덕수가 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