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1(화) 흐림
☆ 삼 월 이 가 네
진달래꽃 따 먹으며 놀았던 뒷동산에도
봄바람 불어 떠나갔던 동무들처럼
꽃 같은 삼월이 떠나가네
얼어붙은 대지의 숨결 들으며
솟아오르는 새싹이 눈 비비며 일어나고
버들가지마다 미소처럼 파릇파릇 웃으며
걸어왔던 그 길로 봄소식 가지고 온
전령사가 훈훈한 정으로 영글어 가고 있었네
벚꽃이 눈이 되어 날리는 날
손잡고 걸었던 추억들이 그리움 남기고
떠나간 자리마다 가볍게 느껴지는 삼월이
쉼 없이 가네
쑥향기 물씬 풍기고 봄나물 풍성했던
어머니 손길로 차려진 밥상에 구수한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삼월이 가고 있네
사랑하기 좋았던 삼월이 남겨준 그 자리에
물기가 올라 걸음을 재촉하는 사월을 선물하며 떠나간 자리에 나도 가고 너도 가고 있다네
여보게!
들리는 가?
바람처럼 강물처럼
떠나가는 삼월 발걸음 소리가
☆* 시 전 집 * 중에서 / 김 국 현 글
♤ 에 필 로 그
3월이 가고 있습니다
산이며 들에 꽃 가득 피우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달려온 3월이 사람들 마음까지 꽃을 피우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3월은
봄을 만드는 주춧돌이 되었고 그 주춧돌 위에 큰 그릇을 올리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 그릇에 1년 내내 사용할 힘과 용기
지혜와 웃음이 담겨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떠나는 3월은 발걸음이 가볍겠지요
비록 늦게 일어나, 아직 꽃눈과 잎을
피우지 못한 곳도 있지만
다가올 4월에게 부탁하고 휘파람을 불며
가겠지요
그 3월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대 웃는 모습을 꽃으로 피우고
늘 봄을 만들겠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옵니다
3월이 가고 있습니다
가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속으로 오고 있습니다
☆ 3월을 보내며 / 윤 보 영
☆* 시 전 집 * 중에서 ♡
변함없는 일상이다. 아침에 죽림으로 가서 현종이를 통초에 등교시키고 집으로 와서 아침밥을 먹고는 헬스장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는 집으로 와서 간단한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통영수영장으로 수영강습을 간다. 화요일은 오리발을 착용하고 강습을 하기 때문에 수월한 셈이다,
저녁에는 별다른 스케줄이 없으니 조사장 영업을 마칠 무렵인 저녁 7시 30분경 그가 종사하는 유료주차장으로 가서 장사국밥집으로 동행했다. 무전리샤브칼국수에 이어 내가 결제했다.
#1
[강경희 칼럼] 대한민국, 폭싹 속았수다
극빈국에서 선진국까지 이 특별한 나라에서 80년간 두 인생 살았다는 '광복 세대' 기업인 소회
풍랑에도 꺾이지 않고 올곧게 열심히 살아낸 소영웅들이 많아 가능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이북 땅인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4남 4녀의 막내였다. 농사짓고 살던 평범한 집안이었다. 분단과 전쟁이 이 가족의 삶을 바꿔놨다. 부모는 북한 체제 대신 남한 체제를 선택했다. 1·4 후퇴 때 다섯 살배기는 부모 등에 업혀 피란길에 올랐다. 먼저 남하한 형 셋 다 국군에 입대해 대한민국을 지켰고 부상도 입었다. 전쟁 통에 가족이 죽고 뿔뿔이 흩어진 이가 한둘이 아닌데 그래도 부모와 8남매가 오롯이 월남해 재회하는 천행을 누렸다.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걷고, 군용 트럭 얻어 타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경주에 정착했다. 부모는 시장에서 이것저것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지만 열 식구 삶은 궁핍했다. 철부지 막내는 시장 통에서 장사하는 엄마 옆에서 칭얼대며 자랐다. 벌이가 좀 나아질까 해서 포항으로 이사했는데 가난은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교복 한 벌로 버텼다. 다행히 공부를 곧잘 했고 등록금 덜 비싼 ‘국립’ 서울대에 진학해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서 대학까지 마쳤다. 먹고살 만해졌다고 느낀 건 대학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면서다. 제약 회사 영업 사원으로 입사해 전무까지 승진한 뒤 20년 샐러리맨 생활을 마쳤다.
그만하면 열심히 달린 삶이었는데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1992년 만 46세에 공장을 빌려 창업했다. 자체 브랜드를 갖지 않고 화장품을 생산만 해주는 회사였다. 매출 100억원 넘는 데 6년 걸렸고, 그로부터 11년 뒤 1000억원에 도달했다. 대형 화장품 회사들이 명멸할 때도 자체 브랜드를 만들지 않고 이름 없이 품질 좋은 화장품을 위탁 생산하는 데만 주력했다. 연구소를 만들어 자체 기술을 확보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매출 1조원, 2조원을 찍고 지난해 매출 3조원 넘는 회사로 성장하는 동안 세계 10대 화장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찾는 세계 1위 화장품 전문 제조 회사가 됐다.
코스맥스 이경수 회장의 79년 인생사다. 코스맥스는 한국콜마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K뷰티 강국’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쉽게 화장품 브랜드를 창업할 수 있게 생태계를 조성했다. 선진국 산업이라는 화장품 수출이 지난해 100억달러를 넘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 강국이 됐다. 창업 30여 년 만에 세계 1위 제조 회사를 만든 ‘광복 세대’ 이 회장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압축했다. “저는 두 번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주 가난한 삶과 풍족한 삶, 직장인의 삶과 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인의 삶, 그것을 가능케 한 이 특별한 나라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광복 80주년, 대한민국 역사가 그랬다. 극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달려가는 동안 곳곳에 기적의 역사가 쓰였다. 그 80년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사연이 곡절마다 있다. 이 회장 이상으로 대단한 성취를 남긴 지도자, 기업인의 영웅적 서사도 적지 않고, 그만큼은 아닌 삶이어도 비극의 역사를 억척스럽게 극복한 개인의 서사(敍事)도 넘쳐 난다.
최근에 지극히 한국적인 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일찍 부모 여읜 애순(아이유)과 그런 애순을 애틋하게 챙긴 관식(박보검)이 가정 이루고 자식 키우는 가족 드라마다. 화려한 K팝, 웅장한 K드라마는 아닌데 3대, 4대의 가족사를 따라가다 보면 태풍 그칠 새 없는 가혹한 인생에도 꺾이지 않고 올곧게 살아내는 게 얼마나 대단한 승리인지, 그것이 가능하도록 품어주는 가족애가 얼마나 엄청난 힘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넷플릭스를 타고 세계 각국에 방영 중인데 광복 80년의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데 썩 어울리는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세계가 대한민국의 성취를 칭송하는 이 순간에 정작 우리 사회는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세대·계층·지역 간 골은 깊어지고, 이념 갈등은 격화되고, 스트레스 과잉 속에 절로 지치고 심지어 제 손으로 쉽게 삶을 거두는 나라가 됐다. 권선징악의 도덕률은 권력층만 비켜 가고, 나라 전체가 전진할 때 홀로 퇴보한 정치판은 지난 80년 성취를 일거에 부숴버릴 듯 위태한 순간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 뉴스는 잠시 접어두고, 소박한 가족 드라마가 보여주는 방식대로 내 가족, 우리 이웃의 3대, 80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이 필요한 듯싶다.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내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보통 사람들의 미시사(微視史)가 주는 교훈이 작지 않다. 그런 사람이 많아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는데 이 풍족한 시대에 우리는 알맹이를 놓치고 휘청거린다.
드라마 제목 ‘폭싹 속았수다’는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는 뜻이 아니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의미의 제주 방언이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은 광복 80년을 맞는 대한민국에 바치는 헌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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