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방 156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않는다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않는다  김 봉 은   긴 겨울밤, 뒷산에서 부엉이가 우는 날이면 이불속에 엎드려 좋아하던 친구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우체국 문이 열리면 부치려고, 아침에 다시 읽어 보니 얼굴이 간지러워 부치지를 못했다. 아마 그렇게 밤에 썼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가 수백 통은 되리라. 젊은 날 감성에 젖어 쓴 편지를 아침에 읽어 보고는 아궁이 속으로 편지를 넣으며 외로운 마음을 달랬다. 밤새 우체국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은 편지 부칠 생각에 가슴은 콩닥거리며 설레었다.   편지는 누가 뭐래도 군대 있을 적에 주고받는 편지가 제일 추억에 남는다. 동계 훈련을 마치고 피곤해하면서도 여자 친구가 보내준 편지를 읽으면 용기가 솟고, 힘이 났었다. 솔직히 가족이 보내준 편지보다는 여자 친구가..

글쓰기방 2024.11.24

벌초(伐草) 하는 날

벌초(伐草)하는 날   김봉은  아버지 산소 벌초하는 날이다. 둘째 조카 석정이와 매년 연례행사로 하는 일이다, 산소로 출발하기 전 가승보(家乘譜)를 펼쳐 보았더니 음력 7월 스무아흐렛날인데 어제와 오늘 양일간 문중 벌초하는 날이어서 내가 선택한 택일이 절묘한 타이밍이었지 싶다.  이제는 선대 조상님들의 산소는 6대조 조부님이 남겨주신 선산 유산 문제로 집안 갈등을 30여 년간 겪다가 타결점을 찾아 묘지는 전부 소산(燒散) 시키고 산소 땅은 매각하여 제실(祭室)로 대체였다. 이제 아버지 산소 하나만 남았다. 둘째 조카와 9시에 만나기로 하고 큰 집으로 갔는데 집 앞에 큰 조카 승용차가 있기에 웬일인가? 싶었다. 모 협동조합 판매장에서 주말에도 근무한다는 이유로 한 번도 벌초에 참여하지 않던 조카 승용차가..

글쓰기방 2024.11.24

봄비 내리는 날의 단상(斷想)

봄비 내리는 날의 단상(斷想)  김봉은  봄비가 창문을 적시고 있는 아침이다. 유튜브에서 비 오는 날에 딱 들어맞는 노래 한 곡을 지인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색시 비가 내리는 아침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라며 답신을 보내왔다. 비가 새색시처럼 내리고 있다는 단어를 처음 접하지만 예쁘고 정감이 간다. 빗줄기가 거세지 않고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소리 없이 내린다는 뜻인가 보다.  햇빛이 쨍쨍한 날보다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감성에 젖기 쉽다. 오늘처럼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베란다로 나가서 창문을 열고 우리 앞에 버티고 선 장골산을 바라본다. 중턱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며 내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보았다. 이 나이 되도록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얼굴은 희미해져 가지만 이름은..

글쓰기방 2024.11.24

북극성을 보며

북극성을 보며(인생길의 나침반) 김 봉 은 나는 가끔 새벽에 나와 별을 본다. 직장에서 근무할 때 당직 날이면 새벽 3시 청사 주변을 순찰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언제였던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암수 부엉이가 부~엉하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한 놈은 내죽도 공원 소나무 숲에서 울고, 다른 한 놈은 소방서 옥상 송신탑에서 번갈아 가며 사랑 타령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고향 마을 뒷산에서 울려 퍼지는 부엉이 소리는 고요한 밤 동네를 공포에 몰아넣는 듯 들렸다. 성인이 되어 듣는 부엉이 울음소리는 짝을 찾는다는 걸 알게 되어선지 미소가 지어졌다. 가끔 올려다본 밤하늘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나는 별은 보면 제일 먼저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찾고 이어서 북두칠성을 찾는다. 군대에서 ‘독도법’을 배웠는데 ..

글쓰기방 2024.11.24

소 먹이던 목동

소먹이던 목동 김봉은 초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소를 몰고 나가서 야산에서 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고는 뒷산 소나무에 매어 놓고 학교에 갔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그 소를 몰고 마을 인근 들이나 야산으로 가서 소에게 풀을 먹이는 게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내 일상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경기라도 하고 늦게 돌아오면 뒷산에 같이 매어 놓았던 마을 다른 소들은 모두 없어지고, 우리 소만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나를 쳐다보는 소의 눈빛이 애처롭기에 그지없었다. 하굣길에 잔망을 지다가 자기 배를 곯게 했다고 원망하는 것 같아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미안하기 짝이 없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 얼른 냇가로 소를 몰고 가..

글쓰기방 2024.11.24

수우도 해골바위 탐방

수우도 해골바위 탐방   김봉은  새벽 4시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이 꼭두새벽에 웬 전화인가? 정신을 차려 다시 보니 전화벨이 아니고 모닝콜 소리였다. 참 그렇지, 오늘 수우도로 가기로 했지. 수우도는 통영시 사랑 면에 속했지만, 거리상으로 삼천포에 가깝다 보니 새벽에 출발해야 배를 탈 수 있다.  벌떡 일어나 양치질부터 하고 세수를 했다. 어제 짐을 챙겨놓기는 했지만, 다시 점검해 보았다. 냉동실에 챙겨놓은 돼지갈비 양념구이와 간식거리도 챙겨 넣었다. 후배들은 내 배낭이 무겁다고 하면서도 먹을거리 생각하며 좋아한다. 포카리스웨트 가루를 넣은 생수통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이번 등반책임자는 구 대장이다. 승용차 2대로 4명씩 분승하여 출발했는데 5시 40분경에 삼천포 활어 경매장에 도착했다. 그 옆..

글쓰기방 2024.11.24

여보 파이팅!

여보 파이팅!        김 봉 은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는데 집사람 호칭이 12가지라고 한다. 나열해 보면 마누라, 부인, 집사람, 아내, 처, 당신, 여보, 임자, 자기, 색시, 여편네, 각시였다.  나는 집사람이라고 호칭하고, 부를 땐 '여보'라고 한다. 아내는 취미도 다양하고, 집에 있지를 못하는 성미다. 지금까지 취미나 가졌던 직업을 나열해 보면, 배드민턴, 난타, 장구, 휘타구, 동화책 외판원, 보험회사 설계사, 한식 요리사, 장애인 복지사, 유아 돌보미 등의 직업을 가졌거나 취미활동을 했다. 한때 누비를 하면 돈을 잘 번다고 하면서 누비 작업용 재봉틀을  사달라고 하여 두 달 치 봉급을 털어서 재봉틀을 사 주었는데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아파트 아래층에서 재봉틀 작동 소리에 층간 소..

글쓰기방 2024.11.24

연금 수급자의 일상

연금 수급자의 일상 김봉은   34년 동안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에 재취업할 곳으로 자동차운전면허 학원의 감독직을 꿈꾸며 나름대로 보직 관리를 해 왔었다. 경찰서 교통관리직 간부로 3년 이상 재직하면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통영지역에 학원이 2개소가 있는데 그곳에 재직하고 있는 선임자들과 또한 학원 경영자들과의 인맥 관리도 나름대로 해 왔기에 퇴직과 동시에 취직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퇴직하자 학원 측으로부터 입사서류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의 회식 자리에 초대되어 인사를 나누었다. 며칠 후 정식 출근을 하기로 되었다. 그런데 현실(現實)과 이상(理想)은 괴리가 있었다. 자동차학원 운영 전반에 비리가 생기면 그 형사 책임을 모두 감독이 책임진다는 ..

글쓰기방 2024.11.24

제삿날의 해프닝

제삿날의 해프닝                                                                                                   김봉은  오늘은 음력 이월 열엿새 날 부모님 기일이다, 원래는 부친 기일이었고, 모친은 동짓달 초엿새였는데 추세에 따라 부친의 기일에 합동으로 모시기로 했다.우리 지역에서는 제사상에 오르는 제물은 주로 생선 위주다. 지난 3월 중순에 제물로 사용할 건어를 사들여서 형수에게 전달해 주고는 다음날,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올레길 탐방을 떠났다.오늘은 청과점으로 가서 과일을 집사람이 사서 우리 집으로 배달을 보내고는 출근했는데, 밤과 대추와 과자류가 빠졌다는 게 아닌가. 나는 마트로 가서 과자류와 명태포, 밤, 대추 ..

글쓰기방 2024.11.24

참회(懺悔)

참회(懺悔)  김봉은  제목을 참회라고 써놓고 한자를 찾아보니 참(懺)자도 뉘우칠 참자요, 회(悔)자도 뉘우칠 회자였다. 뉘우치기를 제곱하는 셈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체력 단련을 목적으로 산악회를 조직하였다. 매주 수요일 퇴근 후 미륵산을 야간에 등산하는 산악회로 명칭이 수요산악회였다.  산악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외연을 확장하게 되어 외부인도 참여하게 되었다. 주로 지인들과의 인맥을 통하여 섭외한 구성원들로 정회원 15명이었다. 우리 산악회에서 통영시 산악연맹 회장이 배출됨으로써 산악인 사이에서 꽤 알려졌었다. 회원들끼리 단합이 잘 되다 보니 신규 회원으로 가입할 수 없느냐고 의사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그런데 회칙에 신규 회원은 기존 회원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거부하면 가입이 될 수 없었다...

글쓰기방 202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