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5(목) 맑음
☆ 12 월
다양 각색으로 달려왔던 한 해인데
이제 잊혀 질 날들이 빼곡하게
그리움처럼 쌓인 채로 길을 틉니다
아쉬움도 반성할 줄도 알았건만
왜 진작 깨우쳐 보질 못하였는지
어찌 보면 못난이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정말로 대견스러운 것은
생의 고통과 아픔을 꾹 참아가면서
위기와 고비를 넘긴 삶이었기에
변화무쌍한 기후에 항상 순응하며
한 해를 낀 긴 터널마저도 무탈하게
거침없이 질주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벽에 걸린 한 장 남은 달력이
나랑 함께 눈을 마주 칠 날도
몇 날 손으로 세어 보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이만 때면 모임의 초대장이 쌓이고
사람들은 의례적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송년 모임 하루를 마치 일 년인 양
사람들 사는 냄새가 물씬 번집니다
다 담으려 말고 잊을 것은 빨리 잊고
어느 때 보다도 아름다운 날 몇 날은
서로가 향기 나도록 장식을 하렵니다
다만 이제 배 부르게 채운 것을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할 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12월의 달력을 아주 내리기 전까지는
사랑의 불씨 또한 그대로 남기렵니다
☆* 내 생애 어느 날도 똑같은 날은 없었다 * 중에서 / 신 남 춘 글
♤ 에 필 로 그
남은 달력 한 장
짐짓 무엇으로 살아왔냐고 되물어 보지만
돌아보는 시간엔 숙맥 같은 그림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고
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을 알고도 못함인지
모르고 못함인지 끝끝내 비워내지 못한
아둔함으로 채우려는 욕심만 열 보따리
움켜쥡니다
내 안에 웅크린 욕망의 응어리는
계란 노른자위처럼 선명하고 뭉개도
뭉그러지지 않을 묵은 상념의 찌꺼기 아롱지는 12월의 공허
작년 같은 올 한 해가 죽음보다
진한 공허로 벗겨진 이마 위를 지나갑니다
☆ 12월의 공허 / 오 경 택
☆* 12월 추천 시 * 중에서 ♡
해미가 식당에서 재통영 고농회 모임 참석을 위해 집을 나서면서 바라본 장골산 위에 떤 초닷새 상현달
학섬휴게소 내 해미가 조개구이 식당에서 바라본 초닷세 상현달
해미가 식당에서 재통영 고농회 모임을 회장으로서 직권으로 임시총회를 개회했다. 안건으로 '모임의 존폐 여부'를 먼저 상정하여 존치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으나, 현 집행부로는 활성화가 어려운 실정으로 차기 집행부를 꾸리기로 했다. 차기는 2025년 차기 집행부를 이끌어 갈 차기 집행부는 회장 조규열(38회). 사무국장 백건우(39회)로 결정되었고, 기존 직책인 총무를 사무국장으로 명칭 변경을 하기로 했다. 회비 징수 문제도 정리를 했다. 그동안 모임이 침체되었던 만큼 연회비 12만 원을 징수치 않기로 하고 내년부터 받기로 했다. 기히 납부한 회원들의 회비는 반환하지 않고 내년회비에 갈음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틀째 금주가 이어졌다.
#1
[양상훈 칼럼]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이성적 아닌 감정적, 사려 깊음 대신 충동적
국민 정서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아
혼자 동떨어진 생각… 다음도 이 연장선상인가
'안전벨트를 매십시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많은 폭탄을 던져 왔다. 그 폭탄은 거의 모두 자신과 정부·여당 안에서 터져 자해만 입혔다. 윤 대통령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란 얘기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수없이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로 비정상적일 줄은 몰랐다. 많은 사람이 윤 대통령과 나라를 걱정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간곡히 조언하고 고언했지만 돌아온 것은 정반대 행동이었다. 윤 대통령은 결국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에서도 국무위원들의 우려와 반대를 무시하고 정반대 결정을 내렸다. 한국 대통령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자폭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여름 민주당 의원들이 ‘계엄령 선포’ 주장을 했을 때 ‘괴담’이라고 비판했는데 괴담이 아닌 것으로 됐다. 그 의원들에게 사과한다.
윤 대통령이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를 새 대통령 집무실로 정했다고 발표했을 때 ‘이건 뭐지’ 하고 어리둥절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다른 선택지들이 있는데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라는 거대 조직을 연쇄 이동시키는 무리를 꼭 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이 때 무언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는 분들이 적지 않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부터 윤 대통령의 자폭은 본격화됐다. 많은 주변 인사와 많은 언론이 대통령과 김 여사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일절 무시했다. 그렇게 건의한 사람들은 심한 경우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이 하나하나가 모두 자폭 폭탄이었다.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여당 내부와 싸우고 있는 일, 유죄 판결을 받은 구청장을 즉시 사면해 그 구청장 자리에 다시 출마하게 한 일, 가수 문제로 김 여사와 의견이 맞지 않았다고 국가안보실장을 경질한 일, 육사 내 동상을 갑자기 옮긴다며 일으킨 평지풍파, 경호처장을 50만 대군을 지휘하는 국방 장관에 임명하는 이상한 인사 등 작은 자폭은 계속 이어졌다.
윤 대통령의 자폭은 가장 중요했던 올해 총선 기간에 집중됐다. 그중에서도 한동훈 대표가 김 여사 문제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고 총선 득표용 발언을 하자,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호응하는 대신 사퇴 요구를 한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폭탄이었다. 한 대표 말을 받아 ‘국민의 시선을 유념하겠다’고 하는 것이 선거 시기 대통령의 당연한 처신인데 정반대로 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던진 이 폭탄은 거의 테러 수준이어서 필자는 몇 시간 동안 관련 보도를 믿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자신과 정부의 운명이 걸린 총선을 스스로 망치겠다고 자폭 테러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자폭은 놀랍게도 총선 기간 내내 계속됐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과 관련된 사람을 굳이 대사로 임명하고, 이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큰데도 굳이 그를 출국시키고, 기자에게 ‘테러’ 위협을 한 수석비서관을 즉시 해임하지 않고 버텼다. 마지막으로 의정 갈등을 진화하지 않고 더 불을 지르는 담화를 당에서 반대하는데도 굳이 총선 투표 직전에 발표해 선거 자폭 테러의 정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이 이런 연쇄 자폭만 하지 않았어도 총선 결과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을 것으로 본다. 그랬다면 야당의 폭주는 불가능했다. 결국 총선 때 자폭이 이번 계엄 자폭을 부른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있다. 윤 대통령은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며, 사려 깊지 않고 충동적이다. 인내해서 얻는다는 지혜를 모르고 즉흥적·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감(感)이 거의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상이 어떻고 국민의 정서가 어떤지를 모른 채 혼자만의 동떨어진 생각을 갖고 있다. 윤 대통령의 계엄 발표문을 보면 마치 1970년대를 사는 사람인 듯하다. 우리 사회에 반국가 세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지금 야당의 행태가 도를 크게 넘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계엄을 선포할 정도는 아니며 이를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데 윤 대통령은 모르고 있었다. 한 국무위원이 “비현실적 공상 영화 같다”고 한 말도 같은 얘기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다음 처신 역시 감정적이고 충동적일 가능성이 있고,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내용일 듯한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윤 대통령의 다음 결정도 이번의 한밤중 계엄 발표처럼 느닷없이 국민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필자는 윤 대통령 총선 참패 후에 ‘안전벨트를 매십시오’라는 글을 썼는데 정말 그래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2
[정우상 칼럼] 20년 전 국보법 폐지 투쟁, 지금 그들은
"아버지는 조작된 간첩"
눈물 흘렸던 30대 청년은
이후 민노총 간부로 간첩 활동
"고문 조작" 국보법 사범은
동생 이어 매부까지 국보법 위반
아내 윤미향은 조총련 행사에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할 때, 국회에서 ‘국보법 조작 피해자 증언 대회’라는 것이 열렸다. 연단에 선 33세 청년은 “평생을 억울하게 간첩의 가족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아버지는 남파 간첩 친척을 만나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1980년 구속돼 18년간 복역했다. 아버지는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를 간첩으로 조작한 국보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위는 이 사건의 재심을 권고했고, 법원은 불법 구금과 고문을 인정해 “그런 상태에서 받은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간첩 혐의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출소 후 대법원이 이적 단체로 판시한 범민련 경기연합 고문으로 생을 마쳤다.
이 청년 옆에는 1993년 ‘남매 간첩단 사건’의 당사자 김모씨가 나와 국보법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여동생과 일본에서 반국가 단체인 한통련 관계자를 만나 공작금을 받는 등 국보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 씨는 안기부의 프락치 공작과 고문으로 사건이 조작됐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국보법을 위반했을 수 있지만, 간첩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김 씨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5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 위 조사관으로 채용돼, 군 의문사 사건을 직접 조사했다. 그에게 전현직 군인 35명이 조사를 받았다.
국보법 폐지 투쟁을 했던 이들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아버지 무죄를 주장했던 청년 석모씨는 20년 뒤 민노총 간부로 북한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모두 102차례에 걸쳐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보고문과 충성 맹세문을 북에 보냈다.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라고 외쳤던 그가 왜 북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했는지 아직 전모를 알 수는 없다. 그의 외침대로 2004년에 국보법이 전면 폐지됐다면 그는 아무 일 없이 민노총 간부로서 북한과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씨의 ‘남매 간첩단 사건’에 대해선 2016년 재심이 열렸다. 법원은 “한통련의 반국가단체성을 부정할 수 없고 이들이 단체의 실체를 알고도 활동비로 돈을 받았다”며 국보법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다만 군사기밀문서를 넘겼다는 혐의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그런데 2004년 고문 조작을 주장한 김 씨 가족들은 이후 국보법 사건에 계속 등장했다. 김 씨 여동생의 남편은 2006년 민노당 사무부총장으로 재직 때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 아내는 훗날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이다. 윤미향은 작년 9월 조총련이 주최한 ‘간토대지진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의전을 받았다. 그가 지난 1월 국회서 주최한 토론회에선 ‘평화를 위해서라면 북한의 전쟁관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윤미향은 국정원이 민노총 석 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자 “국보법을 하루빨리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2004년 12월, 국회 앞에서는 국보법 개정이 아니라 완전히 폐지하라는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그중 한 명인 박석운씨는 현재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본부 대표로 촛불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민언련 사무총장은 “민주화 선배들이 부끄럽다”며 1인 단식 농성을 했다. 지금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이다.
과거 국보법 수사 과정에서 고문당한 이들에게 국가는 배상과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국보법을 앞세워 고문하고 조작하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간첩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간첩 사건의 수사 노하우와 정보를 축적했던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의 대공 수사권 이관으로 데이터베이스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0년 전 겨울, 국보법 폐지를 주장한 이들의 은밀했던 전략은 대공 수사권 박탈로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국보법 폐지라는 종착지로 향하고 있다.
#3
첫눈 내린 날 창덕궁을 찾았다. 창덕궁 후원(後苑)으로 들어서니 단풍 든 숲을 품고 내리는 함박눈이 경이로웠다. ‘푸른 솔 변하여 백룡의 비늘이 되었구나’라는 숙종과 ‘하늘 가득 날리는 옥빛 용의 비늘’이라 한 정조, 두 임금이 창덕궁 후원에 남긴 어제(御製)에 감탄하며 설경을 천천히 음미했다.
우리 전통 정원을 즐기는 최고 정수를 ‘미음완보(微吟緩步)’라 한다. 찰나일지라도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후원을 거닐며 그렇게 온 마음으로 담고 싶었다. 사철 아름다운 곳이라지만 부용지는 물론이고 애련지와 관람지 전경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자리한 창덕궁 후원은 대표적 한국 전통 정원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 금원(禁苑), 궁궐 북쪽에 있어 북원(北苑), 상원(上苑)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 비밀의 정원이라는 비원(祕苑)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 명칭은 고종실록에도 등장한 후원 관리 관청 이름이었다.
창덕궁 후원은 태종 시기 처음 조성되어 세조 대에 확장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인조 대에서 순조 대까지 옥류천, 주합루, 연경당 등이 추가로 조성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왕가의 안식처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이상향을 실현하고자 한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눈 내린 날을 돌이켜보니 ‘폄우사(砭愚榭)’가 마음에 남았다. 효명세자가 자주 들러 책을 읽고 심신을 돌본 정자로 ‘어리석음에 돌침을 놓아 깨우치게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폄우사에서 지은 정조의 시를 차운한 효명세자도 ‘중천에 날려대는 것은 새하얀 옥비늘’이라 겨울 눈을 표현했다.
눈 녹은 자리에 낙엽 쌓인 창덕궁 후원은 그새 다른 풍경이 되었다. 게다가 폭설 후 방문객 안전과 후원 정비를 위해 관람이 중지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당분간 금원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 별천지는 언제나 그곳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평안한 날에 눈이 내리면 다시 찾아 느릿느릿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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