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3(월) 맑음

장골산의 아침!

☆ 눈물 나게 시린 그리움
누가 세상을 다 안다 하는가
누가 인생을 다 안다 하는가
뼈 마디마디 새겨진 눈물은
골다공증처럼 푸석한 내 영혼을
처참히 부숴버리려 한다
실핏줄마다 흐르는 생명아~!
죽음이라는 순결한 의식 앞에
감히 영원이라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사랑하는데 너무도 사랑하는데
떠나보내야 하는 그 슬픔을 아는가
사랑하는데 아직도 사랑하는데
이별 연습 한번 못해보고
떠나보내야 하는 그 서러움을 아는가
스멀스멀 피어난
까마득한 기억들까지도
내게는 눈물 나게 시린 그리움이다
☆* 소중한 인연 만들기 * 중에서 /
서 태 우 글
♤ 에 필 로 그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
나는 너를 만나 사랑을 알게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설레임
터질 것 같은 보고픔은 늘 너를 갈망하게
하였고
내 삶은 온통 너 하나로 중독 되어
헤어날 수 없도록 깊은 열병을 앓아야 했다
하지만
간절한 나의 바램과는 달리
너는 내게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 말하며
슬퍼할 겨를도 없이 떠나가 버렸지
사랑하기에 떠나보낸다는 그 말
나는 믿지 않았어, 너를 보내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제서야 알겠어
사랑하기에 떠나보내는 슬픔이 얼마나
아픈지
그 사랑 때문에 또 얼마나 아파해야 하는지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을 거야
너를 사랑했고 또 사랑하기에 떠나보냈음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므로
결코 내 사랑에 부끄럽지 않기에
그리움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아도 좋지
않겠니
너는
내게 평생을 아름답게 기억될
단 하나의 사랑일 테니까
☆ 그리움 하나쯤 가슴에 품어도 좋으리
/ 서 태 우
☆* 소중한 인연 만들기 * 중에서 ♡

오거리 시계탑은 이전 항남동 오거리에 설치되었던 시계탑을 모티브로 통영의 예술가 박경리 선생과 이한우 선생의 그림, 음악을 표현하는 피아노 건반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문학과 미술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예술의 도시 통영을 표현하고 있다
통영(統營)
통영은 다도해 부근의 조촐한 어항(漁港)
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항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나포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통영근처에서 포획하는 해산물이 그 수에 있어 많기도 하거니와 고래로 그 맛이 각별하다 하여 외지 시장에서도 비싸게 호가되고 있으니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
박경리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제1장 <통영>중에서
.








티파니 카페 골목
오늘 적십자병원에 통원치료 갔다가 무릎 찰사상 상처부위에 처음으로 24일만에 거저를 붙이지 않고 소독약만 발랐다. 내일쯤이면 딱지가 스스로 탈락될 것 같다.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보니 오거리 시계탑이 바뀌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지나다녀도 시계탑 교체된 것을 몰랐다니...
바뀐 시계탑 사진을 촬영하고는 통영근대역사 골목길(우리는 오행당골목이라고 불렀다)을 도보로 가기로 했다. 통제영역사관에서 '김성수 수채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기에 들여다보았더니 화가는 통영사람인 것 같았다. 대충 둘러보니 통영 풍경을 수채화로 그려 낸 작품전시회였다. 이어서 박현열행정사 사무실에 들러 인사를 나누고 시내버스를 타고 원점회귀했다.
6시에 집 앞에 있는 토탈식당에서 재통영고중 23회 동창회가 있었다. 8명 전원 참석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혼자서 북신만 해변공원을 산책했다. 이곳을 어떤 사람은 무전공원이라고도 해서 헷갈린다.



























#1
[朝鮮칼럼] 대통령 직속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위원회' 제안한다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은 경영계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단순한 불평등 문제가 아니라 저출산과 중소기업 기피 원인
모든 당사자가 참여해서 현장 보고하고 실마리 찾아야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은 어떻게 될까. 여기저기에서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의 특성과 지지 기반, 노동계와 경영계의 주장 및 물밑 이해관계, 각각의 쟁점이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봤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느낌은 나쁘지 않다. 문재인 정부처럼 당위에 매몰되어 최저임금을 성급하게 인상했다가 용두사미 되거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설익은 정규직화 정책으로 노노 갈등을 유발한 상황의 재현은 아닐 듯싶다. 분석할수록 왠지 새 정부 노동정책의 흐름은 노동계 움직임보다 경영계의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는 예감이 깊어진다.
이곳저곳 분위기를 파악하며 여전히 분석 중이다. 노동계는 세 차례 민주당 정부를 경험해서 그런지 100%는 기대하지 않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 등 저마다 처지에 따라, 정년 연장인지 노조법 2·3조 개정인지 방점은 다르다. 경영계는 우려한다. 몇몇 기업은 몹시 긴장하고 있다. 법무법인은 분주하다. 노조법 2조가 개정되어 하청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이 확장되면 소송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노와 사가 자율적 노사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채 법률에 의존하며 빚어지는 촌극이다.
자업자득. 노조법 2조와 관련한 대기업 처지가 딱 그 형국이다. 세계의 기업 경영은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ESG(환경·사회·거버넌스)까지 진화했고, 한국도 조응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은 유독 원·하청 거래에서는 낡은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선소가 문제다. 하청 단가에 임금을 적정하게 반영하면 되는 문제였다. 대기업은 이명박 정부의 협력 이익 배분제, 윤석열 정부의 납품 대금 연동제 등 각종 정책과 사회적 호소에도 하청 단가 현실화를 외면했다. 결국 노조법 2조 상황까지 몰고 왔다.
오늘의 대기업이 있기까지 총수와 경영진의 노력뿐 아니라, 국가의 특혜 지원, 노동자의 헌신, 소비자의 사랑, 주주의 뒷받침이 있었다. 무엇보다 하청의 땀과 눈물이 대기업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대기업은 울타리 노사만의 돈 잔치를 그만하고, 하청 이윤과 임금을 적정하게 반영하는 동반 성장 전략으로 하청을 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가 다시 도약한다. 시대와 국민 인식과 정치 현실이 바뀌었다. 설렁설렁 상황만 모면하다가는 노조법 2조보다 강력한 뭔가가 몰아칠 수 있다는 점을 대기업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부 앞에는 특수 고용·플랫폼·프리랜서의 노동권 문제,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 미적용 문제 등 2차 노동시장의 열악한 처우를 순조롭게 개선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친노동 정부가 들어섰다는 노동계의 기대로 각종 현안이 쏟아질 것이다. 정년 연장, 주 4.5일제 등 1차 노동시장 노조의 대선 청구서도 날아들 것이다. 청구서는 섣부르게 접근할 경우, 중소기업 경영에 타격을 주고, 청년 고용은 더 악화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의 격차를 더 벌리는 이중구조 심화로 직결된다. 총고용에서 그나마 20%가 채 안 되는 1차 노동시장의 괜찮은 일자리가 AI와 로봇으로 급속하게 대체되는, 즉 1차 노동시장을 축소하는 결과로도 이어질 것이다. 신중하게 연관 효과를 검토하면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새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대한민국의 성장 전략에 포함했다. 적극 동의한다. 이중구조는 불평등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중구조에서 비롯된 저출산과 청년층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은 경제의 영역이다. 중소기업은 총고용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새 정부가 성장 전략에 이중구조를 포함한 것은 그만큼의 무게를 싣고서 개선하겠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했다. 그래서 제안한다.
이중구조의 모든 이해 당사자 대표, 전문가, 정부 관련 부처를 망라해서 ‘대통령 직속,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 위원회’를 구성하면 어떨까 싶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아닌, 대통령 직속으로 제안하는 이유는 문제의 복잡성 때문이다. 이중구조는 노사 갈등뿐 아니라 노노 갈등, 사사 갈등, 세대 갈등, 을들의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문제다. 소비자까지 모든 당사자가 참여해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또 국민에게 수시로 보고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나 독일의 노동 4.0 보고서 같은 성과만 도출해도 이중구조 개선과 성장 동력에 큰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2

1940년 한 해 동안 미국은 470만대에 가까운 자동차를 생산했다. 곧이어 1941년에는 포드사 한 회사에서만 69만1455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1942년부터 1945년 8월까지 미국 전역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단 139대에 불과하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문이다. 이후 미국은 전쟁에 소극적이던 태도를 바꾸어 모든 역량을 제2차 세계대전에 쏟아붓는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유럽 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연합군은 전세를 역전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미국의 제조업이 있었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고 있던 대영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세계 인구, 자원, 산업 생산의 25%를 지배하던 거대한 연방이었다. 당시 미 육군의 군사력은 세계 39위로, 1940년 독일은 1450대, 영국은 1400대의 탱크를 생산했지만, 미국은 331대였다. 그러나 전쟁은 강대국 서열을 바꾸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직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와 국민에게 압도적인 물량으로 무기를 생산하자고 호소했다. 산업을 재배치하며 전쟁 물자 생산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제조업의 효율성이 드러났다. 독일이나 다른 국가들이 숙련된 장인에게 의존하고 있을 때, 미국은 노동자 누구라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1942년 미국이 매년 항공기를 6만대 생산하겠다고 발표하자, 히틀러는 비웃었다. 1940년 한 해 동안 미국의 항공기 생산은 고작 6019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생산 라인을 만든 미국은 1940년부터 1945년 8월까지 무려 30만1584대를 생산한다. 이는 독일과 일본 등 추축국이 생산한 항공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연합군 항공기 생산의 절반에 해당한다. 1944년 한 해 동안 미국이 쏟아낸 비행기는 전쟁 기간을 통틀어 일본이 생산한 항공기보다 많았다. 미국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항공기와 엔진은 영국과 소련 등 동맹국에도 제공되어, 연합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포디즘’이라 불리는 양산 체제가 미국 제조업에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 포드는 포드 시스템을 전략폭격기 생산에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항공기를 자동차처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자동차는 1만5000개의 부품으로 조립되지만, 당시 최신 폭격기 B-24는 무려 155만개의 부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세계 최대의 공장을 지어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포드가 만든 생산 공정은 27톤의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B-24 폭격기를 63분마다 한 대씩 만들어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질세라 또 다른 자동차 생산자 크라이슬러도 나섰다. 그들은 탱크 양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무기가 셔먼 전차. 크라이슬러 공장 하나에서만 전쟁 동안 독일이 생산한 전차보다 많은 전차를 만들었다. 당황한 독일은 고성능 전차들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생산량에서 밀리며 전쟁 양상이 바뀌었다. 독일이 티거 전차 1대를 만드는 시간에 미국은 셔먼 전차 37대를 생산했다. 크라이슬러 공장은 원자폭탄 제조에도 투입되었다. 제너럴모터스(GM)도 마찬가지였다. 수륙양용 트럭 수만 대를 만들어 노르망디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연합군 상륙작전이 성공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게 미국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전쟁 물자가 유럽 동맹국들에 수송되기 시작하자, 독일의 잠수함 U보트는 대서양에서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이에 미국은 무려 2700척의 수송함을 생산하며 맞섰다. 만 톤급 수송선인 리버티호를 건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4일이었고, 어떤 경우는 4일 만에 제작되기도 했다. 미국은 배를 만드는 능력도 세계 최강이었다. 심지어 항공모함을 1주일에 1척씩 진수하면서, 이들을 수송 선단 호위에 사용해 U보트 공격을 막아낸다. 미국은 전쟁 동안 무려 141척의 항공모함을 새로 제작했다. 같은 시기 일본이 보유했던 항공모함은 고작 16척이었다. 미국은 압도적인 생산력으로 하늘과 땅, 바다를 완전히 장악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세계 산업 생산의 절반이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1940년대까지 독일은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였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과학이라도 제조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자, 결국 모든 전선에서 밀렸다. 궁지에 몰린 독일과 일본은 점령지에서 착취한 노동력으로 총력전을 펼쳤지만, 미국은 현대화된 생산 체계로 이를 압도했다. 모두가 숙련공일 수 없는 현대 산업에서는 노동자를 갈아 넣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시스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제2차 세계대전은 보여주었다. 이 시점부터 미국은 군사력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절대 강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1985년 플라자 협정 당시 일본 제조업은 세계 시장의 10%를 넘는 수준이었지만, 현재 중국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30%가 넘는다. 중국의 제조업 생산량은 미국, 독일, 일본, 한국, 영국을 합친 것보다 많다. 전 세계 제조업이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여기에 미국의 고민이 있다. 자신들이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는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의 미국은 군함 한 척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제조업이 국가 경제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의 비전과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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