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5.12.13(토) 15:00 통영도서관 물목문학회, 46년전 군대 제대한 날

버팀목2 2025. 12. 14. 05:59


2025.12.13(토) 맑음


음력 시월 스무사흘 하현달
 




♡ 죽음 체험
             송경섭 교수

제가 정년 퇴직 하기 전
오래전에 현직에 있을 때
연차 휴가를 내고
모 사찰에서 시행하는
템플 스떼이(Temple stay)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4박 5일의 프로그램 중에
(죽음 체험)을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템플 스테이에
참가한 사람들은
차례 대로 삼베 옷을 입고
나무로 만든 관 속에 들어가
실제로 죽는 것과 같이
죽음을 체험 하기 위해
줄지어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석자 들은 자기 차례가 되자
삼베옷을 입고 나무로 만든
관 속으로 들어가 누웠습니다.
잠시 후 관 뚜껑이 닫혔습니다.
그 관 속 에서 약 10분가량
누워 있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관에서 나온 사람마다
나올 때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나오는 겁니다.
제 차례를 기다리며 지켜 보던
저는 무척 궁금해 졌습니다.

저 사람 들은 도대체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그 광경을 지켜보며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저두 삼베옷을 입고
관 속으로 들어가
누웠습니다.
곧 이어서 관 뚜껑이
닫혔습니다.
관과 뚜껑 사이로 실처럼
가느다란 빛이 들어왔기에
아주 캄캄한 어둠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관 뚜껑 위로
천이 덮였습니다.
그러자 빛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
저는 누워 있었습니다.

"아하.
여기가 무덤이구나!"

공간은 철저히 분리 됐습니다.
관 속과 관 밖은
아주 달랐습니다.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생각은

"관 바깥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이 안으로
가지고 올 수가 없구나!"
였습니다.

관 밖에는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내가 하고 있는 일.
내  명예.
내 집.
내 차.
내가 늘 보고 읽은 책.
내가 아끼는 이런저런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 밖에 있는
그 어떤 사람이나 물건도.
관 속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죽을 때
무엇이 남아 있고.
무엇을 가져갈 수 있는 걸까?
관 속에 누워 있는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 일까?"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저 자신에게
이런 물음이 저절로
떠 올랐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하.
마음이구나.
죽어서 관 속에 누워 있는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마음이고.
이 관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역시 마음뿐이구나!
그렇다면 남아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래.
잘 살아야지.
마음을 잘 가꾸며 잘 살아야지.
그렇게 다짐을 하는데도
제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로
얼굴에 덮여 있는
천이 젖을 정도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잘못 살아온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스님이 관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나
빈 손으로 태어났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한 번 태어났으니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삶의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흘러갑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가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자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합니다.
세계적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고!"
죽음이 자신만은 비켜 갈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며
악행을 일삼기도 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더럽고
추악한 삶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어쨌든 아무리 그렇게
발버둥 치며 살아도
가까운 시일 내에
모두 다 분명히 죽습니다.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죽은 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백년전쟁 때 영국의 태자였던
에드워드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 있습니다.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 있듯이
한 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 드리라."

유럽과 인도.
그리고 이집트까지 정복했던
그리스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나를 땅에 묻을 때
내 손을 땅 밖으로 내놓아라.
천하를 손에 쥐었던
이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 손으로 갔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대영 제국의 헨리 8세의 딸로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영국 왕정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묘비명 에는
짧은 말을 남겼습니다.

"오직 한 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 들"

장례식장 벽에 흔히 걸려 있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올려 드립니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과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과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 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하리라!

    -천상병-

천상병 시인은 일평생 동안
가난을 딛고 살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중국의 어느 선사는
"살아 있을 때는
철저히 삶에 충실하고.
죽을 때는 철저하게 죽음에
충실 하라"
고 가르쳤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은 멋진 여행이었다.
다음 생은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천상병 시인과 비슷한
언어입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연 따라
세상에 왔다가
인연이 다해
돌아갈 시간이 되면
빈 손으로 돌아갈 뿐이다.
사는 동안 마음을 잘 가꾸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마칩니다.

"너희 들이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진정한
네 것 이니라!"

우리가 죽을 때
무엇을 가져갈까요?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
남편.
마누라.
자식.
좋은 집.
좋은 차.  

등 등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 합니다.  
우리는 가져가지 못하는
무상하고 허망한 것에
왜 집착할까요?

내가 갈고닦은 마음이
가는 겁니다

한 번쯤.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나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그동안 말라죽은 줄 알았던 이끼가 풍란에 물을 듬뿍 며칠간 주었더니 되살아 났다. 참으로 신기하네.
 

게발선인장이 꽃을 피울 계절이 돌아왔는가 보네. 
 
 오늘 오후 3시에 무전동 통영시립도서관에서 물목 모임이 있고 내 작품인 '미륵산의 가을'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 날인데 아침 8시경 17경 전화가 와서 대뜸 오늘 11시경 김장배추 절간을 하러 갈 거라고 통보를 받았다. 그러면서 고무장갑 두 켤레, 속장갑, 장화를 준비하라고 했다. 헐레벌떡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먹고는 새터로 갔는데 말표신발 상표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더니 거기에 내가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있었다. 앞치마까지 구매를 하고는 주영라이프로 가니까 오늘 같이 작업할 여성 두 분이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 태우고 용남면 음촌마을 배추밭으로 가서 작업에 들어갔다.
 오후 2시경 양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작업하고 있는 사진도 찍어 함께 보내면서 도저히 몸을 뺄 수가 없다고 했더니 조금 후에 전화가 왔기에 대충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오늘 내 작품은 뺀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서 작업한다고 놓친 카톡문자를 보니 물목에 같이 입단한 통영서울병원 신경외과 과장 이재언 선생도 낭송이 잡혀 있다며 내더러 등단작가의 당당한 모습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이재언 선생은 부경대 수필반에서 4년간 수강했다고 덧붙여 놓았었다. 지금까지 되돌아보면 이재언 선생은 신경외과 의사로서 주로 병원에서 체험한 이야기들을 수필로 발표를 했었다. 내가 여행과 山 이야기를 주로 했듯이 자기가 접한 일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비슷했다.
 그렇게 사전에 약속된 일정도 변수가 생겨서 아무 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후 4시경 배추밭에서 작업이 끝나고 같이 작업한 사람들을 아침에 태웠던 장소에 데려다주고는 정량동 복자 삼겹살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는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나중에 알게된 내용으로 내 작품인 '미륵산의 가을'은 강둘자 선생이 대신 낭송을 했다고 한다.
 

          

 

미륵산의 가을

 

김봉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다. 가족 모임을 어제저녁 본가에서 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숙취도 풀 겸 혼자 미륵산으로 가을맞이하러 나섰다.
  나는 마을 뒷산 북포루나 천암산을 오를 때도 오십 리터 배낭에 생수와 과일, 여벌 옷을 챙긴 다음 메고 간다. 오늘도 큰 배 한 개와 생수병에 스포츠음료를 가득 담아 여느 날처럼 여벌 옷을 챙겼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전광판을 보니 용화사 행 버스는 아예 뜨지 않아 택시를 탔다.

 나는 택시에 타면 마음이 편치 않다. 1987년에 교통경찰로 근무한 적 있기 때문이다. 근무 중 택시나 시내버스를 타면 정복을 입은 경찰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았다. 그것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작은 도시다 보니 오래된 기사들은 나를 알기에 지금도 택시비 받기를 꺼린다. 나는 그것이 편치 않아 아는 얼굴이라도 외면하며 택시비를 주고 내린다.

 그래서인지 택시를 탈 때 기사 얼굴부터 살핀(본)다. 오늘 내가 탄 기사도 잘 아는 분이다. 얼굴 가리개를 눈 밑까지 끄집어 올리고 모자챙에 올려놓은 선글라스를 내려썼다. 택시비를 결제하고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고는 용화사광장에 내렸다. 코끝에 진한 꽃향기가 전해져 온다. 금목서 꽃향기다. 사방을 둘러보니 광장 주변이 금목서 천지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금목서 향기를 맡으며 미수동 띠밭으로 올라갔다. 세 갈래 갈림길 앞에 놓인 평상에는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쉬고 있다. 맞은편 평상으로 가서 음료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목이 된 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들이 그득했다. 싸락 밤인데 발 빠른 사람들이 알밤은 주워가고 빈 껍질만 남아 뒹굴고 있다.

 찬 기운을 담은 바람 한 줄기 지나가는데 아직 푸름을 잊지 않는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을이 익어 가고 있음이다. 나는 평소처럼 맨 우측길로 올랐다. 난도가 제일 높은 코스다. 봄에 얼레지꽃이 지천으로 피었던 곳인데 지금은 내년을 위해 땅속에서 휴식하고 있나 보다.
 미륵치로 향한다. 미륵산 둘레길로 미래사와 바다 백 리 길 출발점인 미륵불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바람이 먼저 와 나를 반긴다. 이곳에서 전망하는 경치는 사철 내내 풍경이 다르다. 봄의 산은 연초록 향이 부드럽고, 여름 산은 푸른빛을 삼켜 더 푸르게 빛난다. 가을에는 섬 사이로 스미는 해가 질 녘의 금빛이 나를 잠시 멈추게 하고, 겨울엔 말수가 적어진 바다의 고요함과 산의 적요에 마음이 절로 낮아진다.

 미륵산 둘레길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격정을 내려놓은 채 잔잔한 청색으로 누워있다. 바람마저도 가을의 온기로 눅눅해져, 산정의 사람을 조심스레 감싸안는다. 누군가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사진첩을 천천히 펼쳐 보이는 듯했다. 내 추억의 앨범에 간직하기 위해 손주 닮은 구름도 찍고, 작은 어선도 찍었다. 지금 보이는 풍경은 커다랗게 그려놓은 한 폭의 수묵화다.
 오르면서 보니 등산로를 누군가가 말끔히 제초 작업을 해 두었는데, 오고 가는 사람을 위해 깔끔하게 다듬어준 그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미륵치에서 물총 샘터로 향한다.

 여기서 남평리 쪽은 암반이 이어져 있는 너들 지대이다. 이 길을 지나간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허벅지 높이의 돌탑을 중간중간 열두 개나 쌓아 놓았다. 누군가의 불심(佛心)이 절실하게 와닿았다. 나도 경건한 마음으로 그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얹었다.

 이전에 이 길을 지날 때면 짙은 숲으로 주변 경관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잎을 떨구어서인지 오늘따라 구망산이 조망되고. 남평리 벼가 익은 벌판도 눈에 들어왔다. 미륵산에 올라 유일하게 가을을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 발아래에 있는 남평리 황금벌판이다. 산 아래 신봉 소류지도 보이고, 서쪽 바다에 일직선으로 떠 있는 곤리도, 추도, 두미도가 구름 아래 떠 있다. 쾌청한 날씨가 아닌데도 주변 경치는 뚜렷이 잘 보였다. 등산로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던 개복숭아 나무도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 채 가로질러 누었는데, 지면과 닿은 부분에 바윗돌을 받쳐 놓아 나무가 다치지 않게 배려해 해두었다. 산 구석구석에 보이지 않는 가슴 따뜻한 이들의 손길이 느껴졌다. 산에 오르면 이래서 좋다.

 고로쇠나무 군락지를 지나 도착한 물총 샘 위에, 도솔암 둘레길과 미륵산 정상, 미래사로 가는 이정표 앞에 안내표지판이 하나 더 생겼다. 붉은색 글씨로 쓴 멧돼지 출현 주의 표지판이다. 그 주변에는 멧돼지가 먹이활동을 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주변에 인적이 없이 고요하다. 보니 숲속에서 나 여기 있소, 하고 멧돼지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다.  경고문을 읽어 보니 새끼를 동반한 멧돼지를 건드리지 말고, 멧돼지에 돌을 던지거나 비명을 지르지 말고갑자기 등을 보이고 뛰지 말라.’고 적혀있었다.

 물총 샘으로 다가갔다. 샘 아래에 붉은색 물봉선화 군락지에 꽃이 만개했다. 물봉선화꽃은 시어머니 학대를 견디지 못해 죽은 며느리 무덤가에 피었다는 전설을 가진 며느리밥풀꽃을 닮았는데, 꽃술에 밥풀을 닮은 하얀 점 두 개가 없는 것으로 구별된다.

 생수통에 샘물을 가득 채우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미륵산의 봄은 각종 야생화가 반기지만 올가을은 이렇게 푸르딩딩하고 밋밋하게 있다가 떠날 모양이다. 울긋불긋한 가을 풍경을 기대하며 올랐던 미륵산의 가을은 아쉽지만, 금목서 꽃향기를 위로로 삼고 서운함을 달래야 했다.

 

 나는 용화사 절 아래에 있는 배수지에 미륵산의 반영(反影)된 모습을 기대했다. 마치 백양사 주변의 단풍과 쌍계루와 백학봉의 아름다운 풍광이 일광정 연못에 투영된 모습을 상상하며 왔었다.

 실망하고 있는 내 모습을 심연의 거울에 비춰보았다. 정년퇴직 후 마음을 비우고 몸을 가벼이 하며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아직도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유명 고승의 말씀처럼 비우고 또 비우리라 다짐하며 가을 미륵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