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경력 소환
김봉은
내가 태어난 곳은 읍내에서 십리나 떨어져 있는 반농반어의 빈촌이다. 중학교는 읍내에서부터 오리나 더 비포장도로를 걸어서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날이 밝자마자 소를 끌고 나가서 야산에서 소에게 풀을 뜯어 먹이고는 마을 뒷산 소나무에 매어 놓고 학교를 갔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그 소를 몰고 마을 인근 들이나 야산으로 가서 소에게 풀을 먹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경기라도 하고 늦게 돌아오면 뒷산에 같이 매어 놓았던 마을 다른 소들은 모두 없어지고 우리 소만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나를 쳐다보는 소의 눈빛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하굣길에 잔망 지다가 자기 배를 곯게 만들었다고 원망하는 것 같아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미안하기 짝이 없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 얼른 물이 있는 냇가로 소를 몰고 가서 물부터 먹이고 나면 조금 죄스러움이 반감되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반바지 차림으로 소를 몰고 나가면 깔따구가 정강이를 물어뜯어서 내 정강이는 성한 날이 없었다. 언제였던가. 마을에서 두어 살 위 형들이 마을 아래 선창가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고는 나도 낚시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얼핏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이력서처럼 자기 소개하는 란에 취미와 특기 란이 있었는데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내 취미와 특기는 뭐지? 하고는 망설여지곤 했었는데 낚시에 입문하게 되면 취미 란에 낚시라고 적을 수 있어 고민 하나는 해결되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남의 대밭에 톱과 낫을 들고 바람처럼 숨어 들어가서 주인 몰래 하나를 베어서 줄행랑을 쳐서 집으로 와서 보니 벨 당시는 곧게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굽어 있었다. 주인 몰래 낚싯대용 대나무를 훔친다고 살펴볼 겨를이 없어 대충 보아서 곧게 뻗은 대나무라고 벤 것인데 그대로는 도저히 낚싯대로 사용할 수가 없어 곧게 펴야 사용할 수 있었다. 대나무 곧게 펴는 방법은 동네 형님들에게서 눈 때 중으로 익혀온 터다. 대나무 굽은 부위를 짚불에 구워서 뒤안에서 곧게 펼쳐놓고 담장 돌을 가져와서 대나무 굽은 부위를 눌러서 곧게 펴서 낚싯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낚싯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시 썰물 때 마을 아래 바닷가 갯벌에서 오뉴월 땡볕아래에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낚시 미끼인 갯지렁이를 오후 내내 파서 잡아 놓고는, 해질 무렵 산에 풀어놓았던 소를 냇가에서 물을 먹여서 집으로 몰고 와 외양간에 매어 놓고는 선창가 바닷가로 내달렸다.
방파제에서 밀물에서 썰물로 바뀔 때까지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깜깜하게 어두워진 둑방길을 따라 집으로 오는 길에 그렇게 정성스레 만들었던 대나무 낚싯대를 분질러서 내팽개치고는 다시는 낚시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허공에다 냅다 소리를 꽥 지르고는 집을 향해 너털너털 걸었다.
그때서야 낚시할 생각에 들떠서 하루 종일 빈속이라는 것을 뱃속에서 쪼르륵 거리는 소리를 듣고 허기를 느꼈다.
몇 날 며칠을 낚싯대로 쓸 대나무를 훔칠 기회를 엿본다고 허비했고, 굽은 대나무를 곧게 편다고 짚불 연기에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하루해를 보냈고, 땡볕아래 잇갑 판다고 비지땀 흘렸는데 내 태공 입문은 이렇게 허사로 막을 내렸다.
현시대는 돈만 있으면 가까운 낚시점에 가서 입맛에 맞는 낚싯대를 고를 수가 있고, 미끼도 낚을 생선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시간과 취미만 있으면 언제든지 낚시를 즐길 수도 있는 세상이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언제 날 한번 잡아서 어릴 적 못다 이룬 낚시꾼의 꿈을 이루어 보고 싶다.
낚시하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한 분 있다. 첫 부임지 파출소장님이셨다. 소장님이 비번날이면 차석이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어디론가 모셔주고 오곤 했는데 처음에는 집으로 모셔 주고 오는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차석으로부터 듣고 알게 된 사실이다. 소장님은 김해출신으로 바다낚시보다 저수지나 수로에서 민물낚시를 즐긴다고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차석이 오전에 소장님이 원하는 장소로 모셔다 드리고 왔다가 저녁 무렵 모시러 가면 처음 내려 준 곳에서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같은 장소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계셨다고 한다. 훗날 직장 단체 회식자리에서 내가 '낚시터에서 고기가 입질이 없으면 장소를 이동해야지 왜 같은 장소에서 입질도 없는데 계속 계십니까'하고 궁금해서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이러했다.
‘낚시터는 명상하는 자리이며, 물론 처음에는 오늘은 어떤 종류의 고기가 맨 먼저 입질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반추하면서 잘못에 대한 반성도 하고, 닥쳐올 미래도 구상하면서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세월을 낚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던 소장님은 평생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사셨다. 이태 전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고는 장례예식장에서 만난 사모님에게 '한 달포 전에 목욕탕에서 만났는데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어째 이런 일이 있느냐'고 여쭈었더니 글쎄 갑자기 급성 췌장암 판정을 받고는 암수술비와 항암치료 등을 걱정하시면서 남은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이제 살만큼 살았다’며 그만 수저를 놓고는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자신의 죽음앞에서 초연해 질 수있는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도 후배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평생 사치라고 모르며 칠부 바지에 그분의 털털한 웃음소리가 지금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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