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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초(伐草) 하는 날

버팀목2 2024. 9. 1. 15:27

 

벌초(伐草) 하는 날

김봉은
 

 아버지 산소에 벌초하는 날이다.
 둘째 조카 석정이와 매년 둘이서 연례행사로 하는 일이다, 산소로 출발하기 전 마침 가승보(家乘譜)를 펼쳐 보았더니 음력 7월 스무아흐레날인데 어제와 오늘 양일간 문중 벌초하는 날이어서 내가 선택한 택일이 절묘한 타이밍이었지 싶었다. 이제는 선대 조상님들의 산소는 6대조 조부님이 남겨주신 선산 유산 문제로 집안 갈등을 30여 년 간 겪다가 타결점을 찾아 묘지는 전부 소산(燒散) 시키고 산소 땅은 매각하여 제실(祭室)로 대체하고, 마지막 아버지 산소 하나만 실존하는 형국이 되었다.
석정이와 9시에 만나기로 하고 큰 집으로 갔는데 집 앞에 큰 조카 승용차가 서 있기에 웬일인가? 싶었다. 내 기억에 축산협동조합 판매장에서 주말에도 근무한다는 핑계로 한 번도 벌초에 참여하지 않던 조카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니 무슨 영문인지? 아니나 다를까? 석정이가  하는 말이 형은 온몸에 두드르기가 나서 벌겋게 되어 누워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예초기가 마당에 놓여있기에 시운전을 해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어제 큰 집에 미리 와서 예초기 날도 새것으로 교체하였고, 시운전도 해 보았다고 한다. 조카 순서가 바뀌었더라면 집안 평지풍파도 없었을 텐데 하며 지난번 큰 형님 초상을 치르고 난 뒤의 일들이 스크린처럼 눈앞을 잠깐 스쳐 지나갔다. 농기계 창고 속에서 까꾸리 하나를 챙기고 내가 가져간 톱, 낫, 괭이가 든 등산 배낭을 메고 마을 앞에 있는 산소로 갔다. 2년 전 겨울에 칡덩굴을 대대적으로 걷어 냈는데, 작년에는 히말라야 트레킹 간다고 오지 못했더니 그래도 추석 지나고 산소에 왔더니 벌초는 되어 있었는데 올해는 진입로부터 칡덩굴이 장난이 아니었다. 석정이가 예초기로 대충 훑고 지나가면 내가 뒤따라가며 낫으로 정리를 해 나갔다. 온몸에 땀범벅이 되었다.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되어 말끔하게 벌초를 마무리했다. 내가 준비해 간 술과 간단한 안주를 차리고는 둘이서 절을 올렸다. 자식들에게 복(福)을 주시든지 벌(罰)을 주시든지 그것은 아버지의 영역이니까 알아서 처분하시고, 지난해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계획으로 성묘를 못 왔고 올해는 추석 연휴 때 가족 여행관계로 성묘를 못 온다고 고했다.
 벌초를 마치고 둘이서 큰 집으로 갔는데 인기척이 없어 석정이한테 형수님은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코로나에 감염되어 일주일 정도 고생을 하더니 그래서 몸도 마음도 쇠약해져서 서울에 있는 자기 누나집으로 휴양 차 갔다고 했다. 그런데 큰 조카 석민이는 밖에서 인기척이 방안에도 들릴만 한데 내다보지 않았다. 시계가 11시도 못되어 애당초에는 벌초하고 나서 큰 집 맞은편에 있는 정든 한정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지려고 했었는데 그럴 마음이 없어졌다. 석정이에게 사워나 하고 넘어오라고(석정이도 통영에 산다) 하고는 나는 승용차를 타고 먼저 출발해서 학섬 휴게소에 들러 냉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면서 그곳 전망대에서 사량도 쪽으로 쳐다보면서 가슴속에 응어리를 쓸어내리고는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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