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5(토) 맑음
재향 경우회 통영지회 안보 및 선진지 견학
08:00 무전동 고려병원 앞 출발
08:05 죽림정차
08:40 공룡휴게소 조식(김밥)
10:10 국립 산청호국원 참배(단성면 목화로 170번 길 57)
10:50 성철 대종사 생가(단성면 성철로 124)
11:50 남명 조식선생 유적지(산천재, 남며 조식 기념관, 시천면 사리 384)
13:00 중식, 추어탕(단성 성내리 683-6 성화식당)
14:30 동의보감촌 관광(금서면 동의보감로 555번길 45-6)
17:00 석식 동의보감촌 내 산청각
19:30 통영도착
현충탑 참배
미래의 시간에 우리도 여기에 올 것이다.
성철 스님 생가 겁외사 방문
성철 대종사 출가송
성철스님 출가송 조성문
청념 이영주는 보통학교 6년과 서당에서 자치통감을 배우던 중 18세 무렵 한문 문리를 터득하고 나서부터 다시 누구에게도 더 배우지 않고 혼자서 학덕을 쌓아갔다.
~중략~
1936년 출강의 길을 떠나 해인사로 가게된다. 청년 이영주는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하던 조실 동산해일대종사의 상좌가 되어 성철(性徹)이라는 법명을 받으며 출가 시를 짓고 마침내 수행의 한 길로 매진한다.
~중략~
"영원한 나는 진리라고 하면 불교가 가장 수승한 것 같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다 만약에 앞으로라도 불교 이상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면 또다시 찾아 나서겠다"고 법정 스님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영원한 진리를 위해 초연히 고독한 발걸음을 평생 멈춘 적이 없었다.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의 어렵고 힘든 변화의 시대를 맞아, 이 자리에서, 영원한 진리를 찾아가는 청년 이영주의 그 열정을, 오늘의 젊은이들이 가슴깊이 새겨서 새 인생을 개척해 가길 바란다.
불기 2563년(2019)
겁외사 창건주 圓 澤
생가 장독대
삼서근(麻三斤) : 성철스님이 통영의 안정사 왼쪽 토굴인 천제굴에 수행중일 때 1954년 여름 찾아온 작은 딸(큰딸은 사망) 수경(진주사범 졸업까지 세 학기를 남기고 찾아감, 불필 스님)에게 이제 학교는 그만 두고 참섬공부만 하겠다고 하자 성철은 끝을 맺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며 학교를 마저 마치라고 하면서 던진 화두.
성철스님의 열두가지 덕목
조식 유적지를 찾아간다는 것이 버스 기사가 조식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해 1576년 문인들이 세운 덕천서원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버스를 돌려 조식 유적지 산천재와 남명 기념관을 다시 찾아갔다.
12시 방향이 천왕봉이다.
남명선생 영전에 내린 선조대왕의 제문
명종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
선조대왕께 올린 무진봉사
남명기념관
손대면 사가야 하는 버섯!(능이 버섯)
너무 비싸다.
'도전 허준 골든벨'이 진행되고 있었다.
소형주차장 위로 필봉산과 왕산 정상이 조망된다
귀가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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