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을 보며
김 봉 은
나는 가끔 새벽에 별을 본다. 당직 날이면 새벽 3시 청사 주변을 순찰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언제였던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암수 부엉이가 부~엉하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한 놈은 내죽도 공원 소나무 숲에서 울고, 다른 한 놈은 소방서 옥상 송신탑에서 번갈아 가며 사랑 타령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고향 마을 뒷산에서 울려 퍼지는 부엉이 소리는 고요한 밤 동네를 공포에 몰아넣는 듯 들렸다. 성인이 되어 듣는 부엉이 울음소리는 짝을 찾는다는 걸 알게 되어선지 미소가 지어졌다.
가끔 올려다본 밤하늘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나는 별을 보면 제일 먼저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찾고 이어서 북두칠성을 찾는다. 군대에서 ‘독도법’을 배웠는데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기 위해서였다. 별 5개가 모여 W자 형태를 이루고 있는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찾고, W자의 꼭짓점에서 북두칠성의 쪽자 모양새의 한 변 길이의 5배쯤 거리에서 북극성을 찾는다. 재미있는 것은 카시오페이아와 다른 별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위치를 이동하는데 북극성만은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북극성이 위치한 방향이 진짜 북쪽으로 산에서 길을 잃으면 북극성을 찾으면 된다.
오래전 등산에 입문하기 전의 어느 늦가을의 일이다. 피아골의 단풍이 좋다는 말에 일행 넷이 의기투합하였다. 단풍도 구경할 겸 지리산의 3대 봉 중 하나인 반야봉에 오르기로 했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배낭에 챙기고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사찰 ‘연곡사’를 지나 피아골 들머리인 직전마을에 주차했다. 산행길 단풍은 ‘삼홍소’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렀다. 등산로 우측으로 흐르는 계곡물과 어우러져 산과 사람까지 모두 붉게 물든다고 하여 ‘삼홍’으로 불리는 피아골 단풍에 정신을 빼앗겼다.
지리산의 주 능선인 피아골 삼거리에 올라 우측으로 진행하여 임걸령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반야봉에 올랐다. 큰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오는데 임걸령 샘터에서 일행 두 명이 무릎이 아프다며 주저앉았다. 등산은 초보였지만 귀동냥한 건 있어서 가을 산행은 일찍 시작해서 마쳐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잠시 쉬었다가 뒤따라오라 하고는 둘이 함께 함께 원점회귀 코스를 향해 걸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피아골 삼거리 표지판은 보이지 않고 이상하게도 올라올 때 보이지 않던 높은 봉우리가 떡 버티고 있었다. 올 때는 없던 게 어디에 있다 나타났을까.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는 등산객이 있어 피아골 삼거리가 아직 멀었느냐고 물었더니, 벌써 지나왔다는 게 아닌가. 앞에 있는 산이 노고단이라며 조금 있으면 어두워지니 노고단을 거쳐 성삼재로 하산하라는 것이다. 청천벽력이었다. 일행들과 타고 온 차가 직전마을에 있는데 성삼재로 하산하라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해는 지는데 헤드랜턴도 없었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개발되기 전이라 핸드폰 뚜껑을 열어 희미한 통화 화면 빛에 의하여 걸었다. 그러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렸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겨울날 지리산 등산에서 가끔 길을 잃어 동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왔다.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군대에서 배운 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북극성을 찾았다. 북극성이 있는 반대쪽이 남쪽이니 북극성을 등지고 가면 직전마을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한참 후 피아골 삼거리 표지판을 발견하고 내려오는데 경사가 심하고 돌길과 철재 계단, 교량을 따라 이동하다가 동행이 발목을 접질렸다. 부축하여 하산하는데 당시는 국립공원측에서 출입시간 통제를 하지 않던 때라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춘 단체 등산객 수십명이 올라오면서 그렇게 깜깜한 피아골을 휴대폰 불빛으로 길을 비추며 절뚝거리는 일행과 동행하는 둘의 몰골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차며 반야봉으로 올라갔다. 한참 후 드디어 안내 표지판이 보이는 게 아닌가.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환호성이 터졌다. 피아골대피소를 지나 내려오는데 맞은편에서 손전등을 든 사람 둘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행이었다. 먼저 직전마을로 내려갔다가 우리를 찾아 손전등을 빌려서 찾으러 온 것이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면서 부축해 오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걸 알았다. 사람의 몸에서 나온 끈적끈적한 땀이 바짓가랑이에서 등산화 안으로 흘러내려 양말까지 젖은 상태였다. 좀 쉬었다 가자 하고는 교량 위에 덜렁 드러누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캄캄한 산속에서 자칫 낭떠러지에서 떨어졌거나, 독도법을 몰랐다면 기온이 내려간 깊은 산속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했다. 마음이 안정되니 별이 눈에 들어왔다.
지리산 피아골 밤하늘은 도시의 전등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라 별이 유독 많았고 밝았다. 은하수와 어우러진 무수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날 우리를 살린 것은 북극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산속에서뿐만 아니라 인생길에서도 길을 잃고 헤맸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으랴. 산속에서는 북극성을 찾듯이, 인생길에서도 옛 성현의 말씀이나 어른들의 말씀과 책에서 얻은 지식도 북극성이 아닌가 싶다. 인생길의 나침판이 되어준 북극성, 오늘도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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