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추억하기
김봉은
몇 해 전 추석을 앞둔 음력 칠월 스무 여드렛날 부친 산소 벌초(伐草)를 둘째 조카와 하기로 계획하고 큰집에 갔었고, 조카가 창고에 들어 있는 예초기를 꺼내 시운전을 해보는데 일 년 중에 벌초 때 한번 사용하고는 장기간 방치해 둔 상태라 시동을 걸어보는데 좀처럼 여의치 않아 결국 읍내에 있는 농기구 수리점 신세를 져야 했다.
조카가 읍내로 가서 예초기를 수리하고 다녀올 시간에 내가 먼저 산소로 가서 장마기간 엄청나게 세를 불려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는 칡덩굴을 정리하여 통로를 개척해 놓으면 시간을 절약할 것으로 예측하고 낫으로 작업을 하다가 엉킨 칡덩굴이 덤불처럼 한 덩이가 되어 숲 전제가 요동을 쳤다. 그러자 덤불 속에서 왕벌들이 나타나 목장갑을 낀 내 오른손등을 큰 왕벌이 물었다. 직감적으로 덤불 속에 왕벌집이 있다는 예측이 가능했고 이곳을 최대한 빨리 이탈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렇잖아도 내게는 벌 알레르기가 있다.
오래전 조모 산소에 벌초하다가 땅벌에 뒤통수를 쏘여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고, 군대생활 할때 사격장에서 '선착순' 단체 얼차려를 받다가 앞서 달리던 전우가 건드려놓은 벌집에서 성낸 벌들이 내게 달려들어 쏘여서 의무대로 후송조치 되는 등 벌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하는 자신을 아는지라 그날 벌초는 포기를 했다.
그리하여 초유의 벌초대행 업체에 거금 삼십만 원을 주고 의뢰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는데, 대행업체에서 진입로는 그대로 두고 봉군만 벌초를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내 손등을 물었던 왕벌도 응징을 해야 하겠고, 덤불처럼 되어 통로를 막고 있는 칡덩굴 제거를 위해 그해 겨울을 선택했다.
추운 겨울 날씨에는 야생벌들이 동면에 들어갔을 테니 마음 푹 놓고 아예 일대 칡덩굴과 잡목들을 일거에 제거해 버렸다. 왕벌들이 터를 잡을 곳을 미리 제거해 버렸기에 속이 후련했었다.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니 잡목들이 우거졌다. 그래서 지난여름에 생각한 일이다. 겨울 되면 부친 산소 주변의 키 큰 나무가 봉군에 그늘을 지우는 나무들 베기와 묘에서 바라보는 벽방산 조망을 가리는 특히 거목이 된 밤나무들을 베어 내기로 했는데 오늘 토요일이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최적기다 싶어 톱, 괭이, 낫, 정전가위 등 장비와 생수를 챙겨서 출발했다.
산소 앞 도로에 주차를 하고는 국도변이라 사고예방을 위해 트렁크를 열어 두고 산소로 올라갔다. 먼저 봉군 남쪽에서 햇빛을 가려 그늘을 지우는 벚나무 두 그루를 베었다. 봉군에 그늘이 지면 잔디가 죽기 때문에 이는 성묘(省墓)의 기본이라는 사실은 어려서부터 어른들을 따라 선산 벌초를 다니며 배워온 것이다. 그런 다음 묘지 앞 칡덤불을 걷어내고, 차근차근 밤나무와 잡나무들을 잘라 내었다. 묘소에서 보면 벽방산이 확 트이게 조망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부친 산소의 조망권을 확보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내 어릴때의 추억을 소환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는 집에 라디오도 없었고, 일기예보란 자체를 접할 수가 없는 세상이었다. 아버지는 해 뜨는 아침이면 마당에서 오른손을 꺾어 이마에 갖다붙이고 동쪽 벽방산을 올려다보면서 산 위에 걸려 있는 구름의 형상과 불어오는 바람을 코로 음미하시고는 그날의 일기를 예측했다. 아버지가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비가 올 것이라며, 비에 대한 대비를 즉, 말해서 비 설거지를 가족들에게 당부를 하면 정말로 해가 지기 전에 비가 왔다. 그리고 우리 마을에 여름철에 내리는 비는 남서쪽 사량도 쪽을 바라보면서 '벌써 비가 묻었다'고 하었고, 그러고나면 두어시간 이내로 뿌옇게 비구름이 마을을 뒤덮고는 적시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아버지가 누워 계신 방이 벽방산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벽방산 조망에 장해가 되는 나무들을 일거에 제거했다. 작업을 마치고 아버지 산소 봉군 옆으로 가서 벽방산을 아버지 대신 쳐다보니 시야가 확 트여 있어 내 마음도 시원했다. 저승에 계신 아버지도 흐뭇해하시리라 본다. 모처럼 내 아버지를 추억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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