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방

빼떼기(절간고구마) 추억 -첨삭본

버팀목2 2025. 2. 21. 17:47

 

빼떼기 추억

 

김봉은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 지인으로부터 십 킬로그램짜리 고구마 두 상자를 선물 받았다. 집사람이 한 번 삶았는데 아직 숙성이 덜 됐다며 베란다에 방치하고 있었다. 어쩌다 눈길이 가서 상자를 열어 보았더니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그런 걸 묵과하지 못하는 성미다. 어릴 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터라 부엌 앞 배수구에 밥알이 한 톨이라도 눈에 띈 적이 없는 우리 집 가훈 같은 것이었다.

 집사람에게 말하느니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씻은 고구마양은 우리가 삶아 먹기에는 꽤 많은 양이었다. 그래서 썰어서 말리기로 했다. 빼떼기는 삐딱하게 썰어서 말렸다는 뜻이고, 절간고구마는 얇게 쓸어서 햇볕에 말린 고구마란 뜻이다. 나는 고구마를 변신시키기로 했다. 부엌칼과 도마를 준비해서 신문지를 넓게 펴고 그 위에서 고구마를 잘랐다. 내 초등학생 시절에 자주 했던 빼떼기 썰기 작업이었다. 우리 동네 어머니 몇 분은 밤새도록 부엌칼이나 작두로 고구마를 자르다가 깜박 졸음에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다.

 그 후로는 개발된 절간고구마 전용 기계를 사용하게 되었다. 밭에다 천막을 펼치거나 인근 산소 잔디밭에서 소쿠리에 고구마를 담아 나르고 한 사람은 연신 기계를 돌려서 대량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원래 고구마는 첫서리가 내릴 즈음인 시월 중순에 캐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이 수매 가마니에 담겨 생고구마로 주정 공장에 팔려나갔다. 그런데 그 고구마를 썰어 말려서 팔면 노력한 만큼 수익을 더 올릴 수 있었다.

 벼농사와 수확시기가 겹치기도 했는데 나락은 대부분 아침 햇살이 비칠 때 꺼내서 말렸다가 오후에 거둬들이지만, 빼떼기는 며칠 동안 뒤집기를 반복하면서 노상에 그대로 있는데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한밤중에 비가 내리면 잠에서 깨어 가꾸리, 대나무 빗자루 등을 챙겨 온 식구들이 거둬들이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말린 후 수매로 팔려나가는 빼떼기는 주정 공장에서 가공 과정에 씻기 때문에 흙이 묻은 채로 가마니나 포대에 담았다. 집에서 먹을 고구마와 내년 씨종자로 사용할 것은 흙이 묻은 채로 안방 윗목에 자리를 잡았고, 빼떼기를 만들 고구마는 절구통에서 깨끗하게 씻은 후 집안에서 멍석을 깔아 건조했다. 판매용과 내수용은 애당초 대우부터 틀렸다.

 그렇게 건조해서 아래채 사랑방에 보관해 두고는 겨울철에 유일한 간식거리로 먹었다. 또 빼떼기죽이 한소끔 끓었을 때 국자로 건더기를 건져서 물기를 뺀 다음 간식으로도 먹고, 나머지는 주걱으로 으깨어 죽으로 만들어 밥 대신 끼니로 삼았다.

어린 애들은 설빔으로 사준 검정 교복 상의 아랫주머니에 언제든지 넣고 다니기 때문에 동무들과 마을 뒷동산에서 편을 갈라 진돌이 놀이술래잡기를 할라치면 날쌔게 뛰어다니기 때문에 호주머니에 든 빼떼기가 상의 양쪽 호주머니를 맞창을 뚫어 돌아다녔다. 어울려 논다고 어머니의 불호령은 뒷전이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떨어지고 어둠이 몰려올 때면 온 동네 어머니나 형수들이 애들을 부르는 합창이 시작되면 그때 서야 슬그머니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그 시절이 정말 그립다.

 요즘 애들한테 옛날 우리가 자라던 시절 이야기해 주면 왜 굶어요? 마트에 가면 먹을게 천지인데요. 라면사서 끓여 드시면 되지요.”라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웃은 적이 있다.

 선물 받은 고구마를 빼떼기로 변신하면서 내 어릴 적 한 시대가 스크린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글쓰기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 41주년 기념여행  (7) 2025.03.19
내가 데리고 있었다? -첨삭본-  (2) 2025.02.21
독후감 '사랑바라기'  (2) 2025.02.20
소 먹이는 목동  (0) 2025.02.10
제삿날의 해프닝  (0) 2025.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