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6.04.28(화) 반칙이 부른 인생행로

버팀목2 2026. 4. 28. 06:20

2026.04.28(화) 흐림 21°/ 14°

 

 


□. 오늘의 운세(음력 3월 12일)
"마음이 평화, 너그러움이 행복의 열쇠"

□. 마라톤 '2시간 벽' 깬 사바스타인 사웨(31. 케냐)의 루틴
'1:59.30 WR SUB2.'

97g 초경량 러닝화 아디다스
빵과 꿀로 아침식사.

남자부 2위 요미프 케젤차(29. 1:59.41) 여자부 우승 세계기록 티지스트 아세파(30. 2:15.41 이상 에티오피아) 같은 러닝화

□. 카니발 도어록 에피소드
오늘 내 승용차 앞 범프 흠집 수리를 박서방 편으로 보내고 나는 지윤이 승합차인 카니발을 타고 현종이를 등교시키러 학교 앞에 평소보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조수석 뒤좌석 문을 열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작도법을 배운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운전석 옆 모든 스위치를 작동해 봐도 듣지를 않았다. 마지막 수단으로 시동을 껐다. 겨우 문이 열리고 현종이가 학교로 갔다. 이후 지윤이한테 전회했더니 받지를 않아 박서방에게 전화해서 차량내부 실내등 켜는 스위치옆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오후에 퇴근하면서 박서방이 내차를 집으로 가져왔다. 혹인해보니 앞범퍼가 파손이 되어 있어서 신품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얼마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고 자기 집 차를 타고 갔다.

 

반칙이 부른 인생행로

 

김봉은

 

  젊은 날 내 꿈은 계급사회에서 승진 시험으로 당당히 맞서고 싶었다. 교통경찰이나 수사 형사가 나의 지향점이 아니었다.

  내가 군대 입대하던 1977년은 국민소득 1,000달러였고 제대한 1980년대에는 국민소득 1만 달러와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였다. 군대에 입영하여 33개월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 산업 일꾼들이 열심히 일해서 국가를 획기적으로 발전을 시켜 국민소득을 증대시켜 놓았으니 정말 기대가 컸다.

 희망을 안고 귀향길에 올랐고, 나 자신이 발전한 조국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서는 취업 전에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형님에게 송아지를 한 마리 팔아서 운전면허 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더니, 리어카도 한 대 못 사는 형편에 무슨 오너 드라이브? 하면서 역정을 냈다.

 형님도 고민을 많이 했던지 결국 암송아지 한 마리를 팔아 부산에 있는 운전학원에 등록해서 한 달 만에 1종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내가 실업계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모내기하고 가을에 추수할 때는 낫으로 베어서 탈곡기로 타작했다. 농기계라고는 경운기 작동법 정도만 배웠다.

 군대 제대하고 나니 말로만 듣던 를 심는 이양기가 도입되었고 콤바인으로 추수하는 시대가 되어있었다. 형님의 주선으로 농협 작목반에 계약직으로 취업하게 되었다. 먼저 진주 농업기술 양성소에서 이양기와 콤바인 등 작동 교육을 일주일 받고는 고성에서 위탁받은 논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내 적성에 맞지 않아 며칠 만에 그만두었다.

 우여곡절 끝에 또래들보다 3년 정도 늦게 경찰관 공개 채용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였고, 미수파출소에서 본서로 옮겨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직원 330여 명 중에 운전면허 소지자가 10여 명 있었고, 실제 운전 경험이 있는 사람은 5명도 안 되었다.

 운전 경력은 별로 없지만, 면허증도 소지하였고 유경험자로 지휘관 차량 운전기사로 2년여간 근무하였다. 시간 나는 틈틈이 승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원하지도 않은 교통경찰로 발령이 났다. 고생했다고 보상하는 차원이었다.

 내 포부인 승진 공부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교통경찰도 선호하는 부서이다 보니 근무만 열심히 한다고 자리가 보전되는 것은 아니다. 일 년 만에 치안 수요가 제일 많았던 북신파출소로 발령을 받았다. 그 지역은 신흥 유흥가로 야간에는 집단폭력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다음 근무지는 제승당 초소였다. 주간에는 몰려드는 관광객의 질서유지에 경찰관 2명이 투입되었고, 일몰 후에는 제승당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모두 퇴근하고 B와 나만 남았다. 같이 근무하는 그는 순경에서 시험 쳐서 경장으로 승진하였는데 경장이나 경사는 시험 과목이 똑같았다. 경찰법 주관식도 같고 선택과목만 각자 선택했다.

 둘은 자정까지 공부하고 12시가 되면 그날 공부한 범위 내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 객관식 문제 10문항씩을 문답 질의하는 식으로 공부했다. 나보다 한 계급 높은 B는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 질문한 문제의 페이지까지 외우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문제를 제시하는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 번은 변칙을 사용하여 질문했는데 B는 정답을 말하고는 원래 문제는 이러한데 당신이 문제를 이렇게 꼬았다며 지적할 정도로 막힘이 없었다.

 직원 관사에 도착하여 나는 그날 공부한 부분을 복습하고 밤늦게 전등을 껐다. 뒷집에 사는 B는 내 방에 불이 꺼질 때까지 불을 끄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로는 빛이 차단되는 커튼을 쳐서 내 방에 불이 일찍 소등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놓고 복습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시험 날이 다가왔다. 연가를 내고 B와 둘이 시험장이 있는 학교 교문에 나란히 들어섰다. 형법과 형사소송법 객관식 각 50문항씩 2교시를 마쳤다. 정답이 애매한 문항이 1개씩이었다. 3교시 경찰법 주관식 50점짜리는 내가 집중적으로 공부한 경찰의무였다. 이어서 4교시 선택과목인 경비 경찰 시간이었다. 내가 공부한 안의 범위에서만 출제된다면 합격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 여기니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감독관이 수험생에게 눈을 감으라고 해놓고 주관식 시험지를 맨 앞에서부터 배부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책상 위에도 시험지가 엎어져 놓이는 순간 시험지가 아래로 떨어졌다. 줍는 시늉 하면서 뒤집어 슬쩍 큰 문제를 보았다. 공부한 문제다. ‘경비 범죄(犯罪)의 개념과 특질을 논하는 것이다. 희열이 넘쳤다. 시작과 동시에 문제지는 덮어놓고 답안지에 일사천리로 써 내려갔다.

 답안지를 거두어 갈 무렵 문제지를 보니 큰 문제가 경비 경찰(警察)의 개념과 특질을 논하라고 했다. 경비 경찰 교과서 첫 페이지에 실린 문제다. 범죄와 경찰? 질문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달달 외우듯이 한 문제이거늘. 하늘이 노랬다. 반칙으로 큰 문제를 슬쩍 본 내 잘못이었다. 지레짐작으로 문제의 질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으니 후회한들 이미 때는 늦었다.

 며칠을 폭음했다. 내가 반칙하여 급하게 감독관이 엎어놓은 문제지를 들쳐 보지 않았다면 승진하여 더 높은 계급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반칙을 저지른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마침, 고속도로순찰대 대원 공개 모집이 있었다. 통영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우선했다. 26개월을 객지서 보내고 다시 복귀했다.

 그 후 의무복무인 유치장 간수 근무를 6개월간 하였다. 유치장 망대에서 유치인 120여 명을 지키던 동료 간수가 되레 불법을 저질러서 감방 안으로 들어가는 불명예스러운 일도 있었다.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고 새로운 부서를 선택하는 희망부서 설문지에 변두리 지서를 1~3 희망지를 썼다. 아직 승진 시험에 미련이 남아있었다. 다음날 수사과장이 나를 호출했다. 수사과 형사계로 발령 나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것이다. 나는 한직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돌아온 답변은 나라에서 발령 내면 따르는 것이지 웬 말이 많나? 하기 싫으면 집에 가면 되지!”였다. 달리 항변할 방법이 없었다.

 승진 시험공부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나 먼 수사과 형사계에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각종 범죄와 10년을 싸우면서 젊음을 불태웠다.

단 한 번의 반칙으로 인해 다시는 승진 공부를 할 수 있는 부서에 발령을 받지 못했다. B는 당시 당당히 합격했으며 이후 경감까지 승진하였고, 중앙경찰학교로 근무지를 옮겼다가 다른 진로를 위해 명예퇴직하고는 나보다 먼저 자연인이 되었다.

 한번 반칙으로 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내 인생 최대의 실수다. 그 후로는 최대한 반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결국 파출소장직을 마지막으로 나도 정년퇴직했다. 기회가 된다면 부끄럽지만 자녀와 손주들에게 이야기해 주려 한다. 나의 반칙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반면교(反面敎師)로 삼아 그들은 꼭 꿈 이루기를 기대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