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30(목) 비


내 생일날 아침밥은 새터 시락국집에서 먹었다.

점심은 진영갈비 식당에서 지난해 돌아가신 장모님 친구분들과 집사람이 냉면을 먹었는데 맛이 있었다며 오늘 점심은 냉면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갔었다. 비빔냉면을 먹었는데 이태전 중국 북경 북한식당 옥류관에서 먹었던 평양랭면이 생각났다. 한글 표기도 냉면이 아닌 랭면이었고 물냉면 이었는데 깔끔한 맛으로 기억된다. 들쭉 술과 대동강 맥주를 시켜 소맥으로 마시려고 했었는데 들쭉 술은 매진되었다고 해서 우스개 소리로 너희들 도대체 술 몇 병 갖다 놓고 장사하느냐고 했던 말도 떠 올랐다. 그 뒤 백두산 갔다 오면서 길림성 농협에서 들쭉 술을 구매했었는데 일반 소주가 아니고 45도였다. 크기도 750ml였다
오후에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오니 책상 위 자판 위에 집사람이 봉투를 놓고 갔었다. 생일이라고 선물로 현금을 놓고 간 것이다
□. 오늘의 운세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잘못된 습관을 고쳐야 한다."
☆ 4 월도 가 네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있는 것은 없더라
변하지 않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변해 가는 것
사람도 자라는 줄 몰랐는데
세월이 가면 훌쩍 자라 어른도 되지
엄동을 견뎌 내고 살다 보니
어느새 봄이 왔는지 아름다운 꽃과
바람결에 향기가 코 끝을 스미는데
아름다운 꽃들과 향연을 벌이다 보니
벌써 4월도 가고 있더라
가는 것은 아쉽고 서글픈 일이지만
그래도 변해가는 세상은 어쩌지 못해
계절의 여왕 5월이 장미와 함께 온다네
☆* 시 전 집 * 중에서 / 도 지 현 글
♤ 에 필 로 그
4월이 간다
숱한 사연을 남기고 떠나고 있다
피었던 벚꽃도
한잎 두잎 떨어져 잊은 지 오래
진달래 꽃 떠난 자리
철쭉 영산홍이 지키고 있다
문득 뒤돌아 보니
벌써 4월은 저만치 달아나고
산천은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푸르름이 짙어가는 계절 앞에 서 있다
왠지 다 하지 못한 아쉬움도
더러는 있기도 하지만은
때가 되어 가야 하는 것을 어찌하리
두 손 흔들어 안녕을 빌 수밖에.......
그래도 위로 삼기는 찾아오는 5월이 있어
버선발은 아니어도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려야지,
☆ 4 월의 끝자락을 잡고 / 신 성 호
☆* 시 전 집 * 중에서 ♡
동백은 통째로 진다(수정판)
김 봉 은
베란다에 토종 동백 한 그루가 있다. 해마다 겨울이면 탐스러운 꽃송이를 보란 듯 서너 송이 피워 올리는데,, 올해는 유난히 한 송이뿐이었다. 그마저도 활짝 핀 모습을 보려 베란다로 나갔더니 아뿔싸!! 떨어진 채 바닥에 누워있는 게 아닌가. 동백은 다른 꽃과 달리, 핀 모습 그대로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 더 애잔하고, 그래서 더 사랑받는다고 한다. 영양이 부족했을까, 제때 분갈이를 해주지 않아서였을까. 아침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동백이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사십 년이 다 되어간다. 장남 나이와 비슷하다. 떨어진 꽃을 주워 물을 담은 접시 위에 띄워 두었다. 붉은 꽃송이가 고요히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슴푸레하게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1988년도 올림픽이 열리던 해, 나는 통영의 비진도 초소장으로 파견되었다. 초소 앞 관사에 짐을 풀었고, 식사는 마을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같은 하숙집에서 했다. 그곳에서 일 년을 더 근무한 뒤 한산 지서로 발령을 받았다. 이삿짐을 본가로 옮길 때, 초소 뒷집 아주머니가 그동안 정이 들었다며 이별의 정표로 동백나무와 소사나무 분재를 선물로 주셨다.
소사나무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30여 년을 살다 고사목이 되었고, 동백 분재만이 지금껏 앞 베란다의 주인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겨울이면 게발선인장과 동백이 번갈아 붉은 꽃을 피워 집안의 냉기를 덜어준다. 게발선인장은 두 달 넘게 꽃을 보여주지만, 동백은 길어야 열흘 남짓이다. 대신 가장 싱싱한 순간에, 미련 없이 통째로 떨어진다.
문득 비진암으로 가는 오솔길이 떠오른다. 길목의 토종 동백나무 군락은 붉은 터널을 이루어 하늘을 가리곤 했다. 머리 위에도, 발아래에도 동백이 가득했다. 지금쯤 그곳 또한 붉은 꽃으로 한껏 치장하고 있으리라.
그 겨울, 하얀 원피스에 검정 코드를 걸치고 이젤 상자를 든 한 아가씨가 첫 여객선에서 내렸다. 얼굴은 백합처럼 희고 입술은 동백처럼 붉었다. 겨울방학 때 찻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나와 알게 된 K였다. 미대를 지망했으나, 대처승(帶妻僧)인 부친의 뜻에 따라 국문학과에 진학해야 했던 그녀는,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듯 동백을 자주 그렸다.
언젠가 내가 비진도의 동백숲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것을 기억했는지, 어느 날 밤차를 타고 서울에서 통영으로 내려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초소에는 무전기뿐이었고, 일반전화가 있던 초소 뒷집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첫배를 타고, 북풍한설 몰아치는 섬으로 오겠다니!
첫 여객선이 들어오는 시간이면, 육지의 소식이 담긴 신문과 주문한 생필품을 받기 위해 마을 사람 대부분이 부둣가에 모인다. 그날은 미모의 아가씨가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다 쏠렸다. 그 장면은 오래된 영화의 한 컷처럼 또렷하다.
하숙집 할머니는 평소 담장 너머로 “초소장, 식사하러 오소.”라고 외쳤다. 다음 날 아침에는 내가 어디에서 잤는지 궁금했던지 이른 시간에 초소에 들렀다. 하지만 겨울밤, 우리가 한 일이라곤 목도리로 칭칭 감은 채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어둠 속을 오가는 작은 고깃배의 불빛을 바라본 것뿐이었다.
짐작건대 그녀는 내가 싱글인 줄 알았을 것이다. k가 떠난 후 내가 결혼을 했으니까. 어느 시인은 교수로 재직 당시 유부남이었음에도 제자와 사랑에 빠져 제주도로 도피여행을 떠났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떠날 만한 용기가 없었기에, 별을 보면서 결혼했다고 말해주었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K는 어쩌면 그 어떤 사랑을 기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나란 인간은 그럴 만한 용기가 없는 졸장부였음은 시인한다.
다음 날 점심 무렵 동백 숲으로 안내했던 것 같다. 그녀가 그 붉은 터널을 캠퍼스에 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는 사실이다. 국어 교사가 되었는지, 미술 교사가 되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동백이 피는 계절이면 가끔 생각이 난다.
베란다로 시선을 돌리니, 접시 위의 동백이 고요히 물 위에 떠 있다. 시들지도 않는 채, 가장 빛나는 모습 그대로. 비진도의 겨울도, 붉은 숲도, 하얀 원피스의 얼굴도 모두 선연한 색채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비진도의 초소와 관사는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동백 분재는 여전히 베란다에서 겨울을 난다.
꽃은 왜 떨어졌는지 묻지 않는다. 다만 피어있었던 시간으로 자신을 증명할 뿐이다. 어쩌면 사람의 인연도 그러한지 모른다.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백처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한 번 피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 또한 동백처럼 피었다가 통째로 내려놓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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