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5(금) 비 ☆ 당 신 의 먼 자 리 가을비 오시는 날을 습자지 같은 눈시울로 바라봅니다 이런 날은 조금 앓아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당신은 오랜 음성의 무게와 기억으로 내 이마를 어루만지시겠지요 옛 편지 아직 푸르고 무성하여 내겐 돌아갈 상처가 이토록 환합니다 물 이파리에 든 송사리처럼 절룩거리며 나는 어디로든 흘러가 앓아내고야 말 것 같습니다 눈을 감고도 당신의 먼 자리에 깃들여 한 계절을 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어느 빗방울 아래 우산 없는 나날을 건너가고 계신가요 어느 음악의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 나오고 계신가요 나는, 아직도 비 내리는 시절에 갇혀 어떤 슬픔의 문장에도 귀 기울이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의 부재가 남겨둔 자리 너무 깊어서 빗소리조차 여기에 닿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