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0(목) 맑음
☆ 먼 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감잎 물들이는 가을볕이나 노란 망을 터뜨리는 생강 꽃의 봄 날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수숫대 분질러 놓는 바람 소리나
밭 안치듯 찰싹대는 강물의 저녁 인사를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미워하던 사람도 용서하고 싶은
그립던 것들마저 덤덤해지는
산사의 풍경처럼 먼 산 바라보며
몇 번이나 노을에 물들 수 있을까
산빛 물들며 그림자 지면
더 버틸 것 없어 가벼워진 초로의 들길 따라
쥐었던 것 놓아두고 눕고 싶어라
내다보지 않아도 글썽거리는
먼 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 시 전 집 * 중에서 / 김 재 진 글
♤ 에 필 로 그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 선들 좋아하지 않으리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 ~ 아 ~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야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의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우리가 물이 되어 / 강 은 교
☆* 시 전 집 * 중에서. ♡
같은 사무실에서 십여년간 근무했던 동료들과 잔을 부딪히며 소주잔에서 추억을 끄집어냈다.
나는 이들과 어울리며 지난날들을 반추해 본다. 당시 주류라고 여겼던 이들은 나를 찾지 않는다. 비주류라고 여겼던 이들이 십여 년 전부터 아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나 그래도 같은 지역에 살면서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얼굴 보고 살자는 그들의 제안에 따라 모임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경비를 주로 내가 부담을 하다가 후배들이 소임제로 하자고 제안을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는 반사경이나 마찬가지다.
고맙다!.
이들을 만나면 최근 경찰관서가 돌아가고 있는 그림을 연상해 볼 수도 있다. 나이는 띠동갑 정도다. 젊은 사람들의 사고를 접할 수 있어 내개는 정말 유익한 만남이다.
#1
[김창균 칼럼] '민주 패악질' 심판할 열쇠, 尹이 손에 쥐고 있다
정략과 가식 범벅 된 탄핵 정국 악취 맡은 국민, 근원 추적하다
野 횡포가 계엄 촉발 알게 돼 尹 지지 반등했지만 과반 미달
중도층 손잡아야 정권 재창출 지지층 설득 역할 떠맡아야

작년 12월 갤럽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이 75%, 반대는 21%였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선 찬성 57%, 반대 38%로 격차가 35%p 줄어들었다. 민주당 48%, 국민의 힘 24%로 더블 스코어까지 벌어졌던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 힘 40%, 민주당 39%로 몇 주째 엎치락뒤치락한다. 계엄 사태 후 두 달 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민주당은 이런 수치를 못 믿겠다며 ‘검증 특위’까지 만들겠다고 했다. 민심 변화를 초래한 게 야(野) 자신이라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탄핵했는데, 윤 대통령 파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헌재 재판관 증원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정치인 사살’을 모의했다는 유혈 음모설을 살포하는가 하면,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총 맞더라도 밀어붙이라”며 유혈 충돌을 부추겼다. 국회 탄핵 표결을 앞두곤 내란죄 마케팅을 하더니, 헌재 탄핵 심판으로 넘어가자 내란죄를 빼라고 했다. 양쪽 다 대통령 파면 속도전을 위한 것이었다. 계엄 지휘부 군 장성에게 민주당이 원하는 진술을 연습시킨 정황도 드러났다. 이 모든 무리수가 이재명 판결보다 윤석열 파면 앞당기기 정략 때문이었다.
민주당은 전매특허인 자신들만 ‘정의로운 척’ 위선 쇼도 빼놓지 않았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첫 번째 탄핵 표결 때 집단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돌아오십시오”를 외쳤다. 상대 당 의원들을 정치적 망자(亡者) 취급하며 초혼 의식을 벌이는 제사장 흉내를 냈다. 서영교 의원은 국회에 출석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계엄 사태에 대해 사과하라고 시켰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성 교육을 지도하는 모습이었다.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의원은 자신이 미는 음모설에 정부 관계자와 군 장성이 동조하지 않자 고함을 지르고 훈계질을 했다.
민주당의 정략과 가식이 뒤범벅 된 탄핵 정국에 역겨운 악취가 진동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도대체 어디서 이런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민주당의 국정 운영 훼방이 대통령 계엄 선포를 부른 전말을 많은 국민이 공유하게 됐다. 탄핵 반대 일타 강사로 떠오른 전한길 씨는 “나도 처음엔 12·3 계엄을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거대 야당이 29번 반민주적 탄핵을 한 사실을 알게 됐고 계엄령이 계몽령이었음을 깨달았다”라고 했다. “민주당 패악질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대통령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탄핵 소추안 통과 이후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40%까지 치솟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실제 국정을 운영할 때의 두 배가량 높은 수치다. 직무 정지 이후 위상이 오히려 상승하는 이 역설적 상황은 윤 대통령에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20년 12월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중징계를 내렸다. 문재인 정권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윤 총장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더불어 대선 주자 3강으로 떠올랐다. 그것이 문 정권의 권력 재창출을 막은 결정적 디딤돌이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동력이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왜 계엄 선포 전에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쩌면 윤 대통령은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쪽보다 부당한 권력에 탄압받고 맞서는 상황에서 더 힘을 발휘하는 운세를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윤 대통령의 탄핵 기각을 바라는 여론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파면 찬성 여론보다 20%p가량 부족하다. 문 정권과 민주당이 추천한 재판관이 상당수 포진한 헌재 여건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직무 복귀가 무산된다고 해서 윤 대통령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체포 영장 집행 직전 만난 국민의 힘 의원들에게 “나는 가지만 정권 재창출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 소망을 스스로 성취할 기회가 주어졌다. 탄핵 기각을 외치는 대통령 열렬 지지층끼리만 똘똘 뭉쳐서는 어림도 없다. 탄핵은 불가피했지만 민주당은 대안이 아니라고 믿는 중도층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윤 대통령 한 사람뿐이다. 야(野) 자충수로 재충전해 준 에너지로 야 패악질을 되갚는 것이 인과응보다. 윤 대통령 자신의 명예를 궁극적으로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2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을 부른 시인 윤동주(1917~1945). 그를 따라가 보면 별 헤듯이 만나는 그리움이 있다. 그는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이지만 생전 시집을 출간하지 못한 채, 조국 광복을 앞둔 6개월 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스물일곱 살에 옥사했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기념하며 한글 시집을 내려 했으나, 은사의 염려와 엄정한 시대 상황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육필 원고 세 부를 만들었다. 그중 친우인 정병욱(1922~1982)이 광양 고향 집에 보관한 한 부만 남아 1948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윤동주를 알렸다.
원래 시집 제목은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앓는 사람을 고치듯 일제강점기 시대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고자 했다. 시집 제목이 바뀐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지운 흔적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지난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의 순국 80주기였다. 그가 체포될 당시 다녔던 일본의 대학에서는 지켜주지 못했던 미안함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윤동주의 흔적이 깃든 곳곳에서 기념식이 열렸고, 그를 기리는 마음과 발길이 이어졌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시구처럼 그가 내어준 길이 열린 셈이다. 그의 하숙집 터로 알려진 곳엔 작은 안내 문구가 걸려 있고, 산책했다던 인왕산에는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문학관’이 자리하게 됐다.
그의 ‘친필 원고’와 유고를 보존한 ‘정병욱 가옥’,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시절 시를 쓰며 생활한 기숙사 건물인 ‘연세대학교 핀슨관’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그를 기억하는 공간인 ‘윤동주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아름다운 시로 시대에 저항한 윤동주 시인은 조국을 사랑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떠오르는 별 하나에 조용히 이름을 불러 슬픈 사람의 뒷모습을 따스하게 보듬어 본다. 그 시를 품어준 섬진강 끝자락 망덕나루에는 봄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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