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5.12.09(화) '미륵산의 가을'

버팀목2 2025. 12. 10. 07:17

2025.12.08(화) 맑음


승용차 두 대가 내 명의로 되어 있는데 12월 23일이 보험 만기다. 갱신을 위해 차량번호와 계기판 사진을 촬영해서 보험설계사에게 전송했다.




(커피잔)
♤《지금이 참 좋다》

환하게 웃어주는 햇살의 고마움으로 아침 창을 열면  흐릿하게  미소 짓는 바람이 있어서 참 좋다.
흩어진 머리카락 쓸어 올리며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처럼 비틀거리는 하루지만 걸을 수 있다는 고마운 두 다리가 있어서  참 좋다.
땀방울 방울방울 이마에 맺혀도 열심히 살아가는 얼굴에 미소가 넘쳐서 참 좋다.
힘들고 고달픈 삶이라지만 내 곁을 지켜 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더욱 좋다.
시간이 멈춘다 해도 오늘이라는 성적표에 부지런히 살았다는 표시로 밤하늘 달님이 친구가 되어주니 참 좋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지금이 참 좋다.

"나는 지금이 가장 좋아요"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인권 사회운동을 펼쳤던 '대지'의 작가 펄벅여사가 일흔 살 됐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신가요?"
그런데 그녀는 전혀 고민 없이 아주 단호하게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치룬값이 얼마인데요.
나는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이 가장 좋아요'
지금을 누리기 위해서 살아온 겁니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힘들고 서글퍼질 때가 있다는데요.
"나는 지금이 가장 좋아요"라는 말로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의 가치를 가장 높이 평가했던 펄벅여사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참 좋습니다...
오늘 행복을 위해서 파이팅!!!

※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


 

 


미륵산의 가을

김봉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다. 가족 모임을 어제저녁 본가에서 했다. 아침식사를 하고 숙취도 풀 겸 혼자 미륵산으로 가을맞이 하러 나섰다.
  나는 마을 뒷산 북포루나 천암산을 오를 때도 오십 리터 배낭에 생수와 과일, 여벌 옷을 챙긴 다음 메고 간다. 오늘도 큰 배 한 개와 생수병에 스포츠음료를 가득 담아 여느 날처럼 여벌 옷을 챙겼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전광판을 보니 용화사 행 버스는 아예 뜨지 않아 택시를 탔다.
 나는 택시를 타면 마음이 편치 않다. 1987년에 교통경찰로 근무한 적 있기 때문이다. 근무 중 택시나 시내버스를 타면 정복을 입은 경찰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았다. 그것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작은 도시다 보니 오래된 기사들은 나를 알기에 지금도 택시비 받기를 꺼린다. 나는 그것이 편치 않아 아는 얼굴이라도 모른 척하며, 택시비를 내고 내린다.
 그래서인지 택시를 탈 때 기사 얼굴부터 본다. 오늘 내가 탄 기사도 잘 아는 분이다. 얼굴 가리개를 눈 밑까지 끄집어 올리고 모자챙에 올려놓은 선글라스를 내려썼다. 택시비를 결제하고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고는 용화사광장에 내렸다. 코끝에 진한 꽃향기가 전해져 온다. 금목서 꽃향기다. 사방을 둘러보니 광장 주변이 금목서 천지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금목서 향기를 맡고는 미수동 띠밭으로 올라갔다. 세 갈래 갈림길 앞에 놓인 평상에는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쉬고 있다. 맞은편 평상으로 가서 음료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목이 된 나무에서 떨어진 밤송이들이 그득했다. 싸락 밤인데 발 빠른 사람들이 알밤은 주워가고 빈 껍질만 남아 뒹굴고 있다.
 찬 기운을 담은 바람 한 줄기 지나가는데 아직 푸름을 잊지 않는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을이 익어 가고 있음이다. 나는 평소처럼 우측길로 올랐다. 난도가 제일 높은 코스다. 봄에 얼레지꽃이 지천으로 피었던 곳인데 지금은 내년을 위해 땅속에서 휴식하고 있나 보다.
 미륵치로 향한다. 미륵산 둘레길로 미래사와 바다 백 리 길 출발점인 미륵불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바람이 먼저 와 나를 반긴다. 이곳에서 전망하는 경치는 사철 내내 풍경이 다르다. 봄의 산은 연초록 향이 부드럽고, 여름 산은 푸른빛을 삼켜 더 푸르게 빛난다. 가을에는 섬 사이로 스미는 해 질 녘의 금빛이 나를 잠시 멈추게 하고, 겨울엔 말수가 적어진 바다의 고요함과 산의 적요에 마음이 절로 낮아진다.
 지금, 이 가을에 느껴보는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격정을 내려놓은 채 잔잔한 청색으로 누워있다. 바람마저도 가을의 온기로 눅눅해져, 산정의 사람을 조심스레 감싸 안았다. 누군가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사진첩을 천천히 펼쳐 보이는 듯했다. 내 추억의 앨범에 간직하기 위해 곳곳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는 등산로를 누군가가 말끔히 제초 작업을 해 두었다. 오고 가는 사람을 위해 깔끔하게 다듬어준 그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미륵치에서 물총 샘터로 향한다.
 정상에서 남평리 쪽은 암반이 이어져 있는 너들 지대이다. 그런데 이 길을 지나간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허벅지 높이의 돌탑을 중간중간 열두 개나 쌓아 놓았다. 누군가의 불심(佛心)이 느껴졌다. 나도 그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얹었다.
 이전에 이 길을 지날 때면 짙은 숲으로 주변 경관이 조망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구망산이 조망되고. 남평리 벼가 익은 벌판도 눈에 들어왔다. 미륵산에 올라 유일하게 가을을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 발아래에 있는 남평리 황금벌판이다. 산 아래 신봉 소류지도 보이고, 서쪽 바다에 일직선으로 떠 있는 곤리도, 추도, 두미도가 구름 아래 떠 있다. 쾌청한 날씨가 아닌데도 주변 경치는 뚜렷이 잘 보였다. 등산로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던 개복숭아도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 채 가로질러 누었는데, 지면과 닿은 부분에 바윗돌을 받쳐 놓아 나무가 다치지 않게 배려해 두었다. 산 구석구석에 보이지 않는 가슴 따뜻한 이들의 손길이 느껴졌다. 산에 오르면 이래서 좋다.
 고로쇠나무 군락지를 지나 도착한 물총 샘 위에, 도솔암 둘레길과 미륵산 정상, 미래사로 가는 이정표 앞에 안내표지판이 하나 더 생겼다. 붉은색 글씨로 쓴 멧돼지 출현 주의 표지판이다. 그 주변에는 멧돼지가 먹이활동을 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주변에 인적이 없이 고요하다 보니 숲 속에서 나 여기 있소, 하고 멧돼지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다.  경고문을 읽어 보니 ‘새끼를 동반한 멧돼지를 건드리지 말고, 멧돼지에 돌을 던지거나 비명을 지르지 말고, 갑자기 등을 보이고 뛰지 말라.’고 적혀있었다.
 물총 샘으로 다가갔다. 물총 샘 아래로는 붉은색 물봉선화 군락지에 꽃이 만개했다. 물봉선화꽃은 시어머니 학대에 못 이겨 죽은 며느리 무덤가에 피었다는 전설을 가진 며느리밥풀꽃을 닮았는데 꽃술에 밥풀을 닮은 하얀 점 두 개가 없는 것으로 구별된다.
 생수통에 샘물을 가득 채우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미륵산의 봄은 각종 야생화가 반기지만 올가을은 이렇게 푸르딩딩하고 밋밋하게 있다가 떠날 모양이다. 울긋불긋한 가을 풍경을 기대하며 올랐던 미륵산의 가을은 아쉽지만, 금목서 꽃향기를 위로로 삼고 서운함을 달래야 했다.
 
 나는 용화사 절 아래에 있는 배수지에 미륵산의 반영(反影)된 모습을 기대했다. 마치 백양사 주변의 단풍과 쌍계루와 백학봉의 아름다운 풍광이 일광정 연못에 투영된 모습을 상상하며 왔었다.
 실망하고 있는 내 모습을 심연의 거울에 비춰보았다. 정년퇴직 후 마음을 비우고 몸을 가벼이 하며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아직도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유명 고승의 말씀처럼 비우고 또 비우리라 다짐하며 가을, 미륵산을 내려왔다.

 


 지난 추석뒤에 썼다가 양 선생님 메일주소로 핑퐁 되어 오가길 대여섯 차례다.
오늘 최종이라고 바탕화면 글쓰기 모음집에 안착했는데 내일모레 다시 꺼내 읽으면 또 첨삭할 곳이 보일 터이다.
 생장점이 보이는 식물과 달라서 글은 어디로 뛸지 가늠하기 어렵다 솔직히.

 어제는 오후 2시경 헬스장에서 돌아와서 식곤증을 느끼고는 다급하게 라면을 끓여 먹고는 3시부터 시작되는 수영강습 갔더니 속이 불편해서 제대로 강습에 임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어제는 강사가 보기에 수강생 전체가 속칭 '흠~파'가 잘되지 않는다면서 집중 호흡법을 숙달시켰는데 처음에는 25m를 끊어서 시도했는데 숙련을 한답시고 4바퀴를 돌았는데 즉 200m인 셈인데, 그렇게 세 번을 반복했다. 죽는 줄 알았다.
 결국 일행들보다 한 바퀴씩 쉬어가는 식으로 임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점심 식사는 건너뛰기로 하고 강습을 다녀왔더니 배가 고파 5시에 성포회집에 갔더니 마침 예약손님이 주문한 감성돔을 잡아놓았기에 반마리를 썰어달라고 해서 지인 두어 곳에 전화를 했으나 결국 혼자서 혼술을 즐겼다.
 물메기 탕까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해서 배를 채웠다.
 아 ~ 아침에 카톡으로 받은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펄벅' 여사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저녁이다. 지금 이대로가 행복이다.

 

 

#1 오피니언칼럼

[김대중 칼럼] 이재명과 트럼프의 '기이한 궁합'

미·중 병행으로 포장해 '미국 없는 한반도'로 가려는 게 좌파의 속셈
트럼프도 돈타령이지만 美 대체하는 게 中이라면 미국 쪽에 남는 게 현명

입력 2025.12.08. 23:55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정권은 들어선 지 6개월도 안 돼 북한에 대한 우리의 빗장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대북 전단을 금지하고 전방의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더니 민간의 대북 접촉과 개별 관광을 허용하는 등 이제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대치(對峙) 국가가 아닌 것으로 가고 있다. 거기다 북한 인권 보고서 비공개, 국가보안법 폐지, 마침내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시킬 뜻을 비쳤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태도도 너무 게임적(的)이다. “대북 방송을 왜 합니까? 쓸데없이 그런 바보짓이 어디 있어요? 그것도 돈 들잖아요.” 군사훈련 대목에서도 “북한이 가장 예민해하는 것이 한·미 군사훈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별로 안 좋아하는, 돈 드는 합동 군사훈련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등의 표현은 국가 대사를 논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세계에 없다. 전쟁만 없다면 지금 당장 군대고 훈련이고 미사일이고 없어도 된다. 그 돈 국민 복지에 쓰면 얼마나 행복한가. 문제는 상대방이다. 북한은 매일 미사일을 쏘아대고 인민 전부를 군대화(化)하다시피 하면서 무기 개발에 온 국력을 쏟고 있는 판인데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장해제해야 하는가. 돈 아끼려고?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적대적 두 국가론’의 방점은 두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이라는 데 있는데 왜 좌파 사람들은 편리하게 ‘두 국가’만 부각시키는 것인가.

반미(反美)는 우리나라 좌파 세력의 정체성이고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지난 수십 년 간 좌파의 데모는 반(反)제국주의, 주한 미군 철수, 한미 동맹 파기로 점철돼 왔다. 오늘날 이재명 정권의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과거 운동권 시절 미국 문화원과 미 대사관저 침공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전과자라는 것도 오늘날 이 정권의 대미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트럼프의 미국도 어제의 미국은 아닌 것 같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은 언제까지나 ‘공정하고 자애로운 미국’이 아니며 어쩌면 ‘약탈적 일방주의’의 나라인지도 모른다고 했다(한겨레신문). 적어도 지금 트럼프가 대표하고 있는 미국은 그래 보인다. 문 교수는 ‘미국 없는 한반도’를 언급하며 한·미 동맹 파기나 주한 미군 철수를,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다자 기구를 희망 사항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없는 한반도’로 가려면 반드시 ‘중국 없는 한반도’를 전제로 해야 한다. 미국을 대체하는 것이 중국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미국 쪽에 남는 것이 현명하다. 적어도 미국은 한반도에 영토적 욕심이 없다. 반면에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토적, 제국주의적 군림은 수백 년, 수천 년을 이어온다. 중국은 21세기 지금도 한국을, 한반도를 저들의 속국이었다고 공공연히 자랑하고 또 자만하고 다닌다(시진핑 주석).

우리가 6·25 전쟁 이후 미국의 안내로 민주주의와 세계 경제에 눈떠 오늘에 이르렀다는 보은의 입장에서가 아니더라도 중국보다는 미국이다. 중국은 선린의 ‘이웃’ 이외에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다자기구도 기만적이다. 그 어떤 상대적 관계도 지난 2000년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역사를 잊은 한국에는 ‘중국’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 땅의 좌파는 중국을 추종하며 반미가 곧 민족 자주인 양 하는 사고에 빠져 있다. 다만 지금의 이재명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탈미(脫美)로 가는 것보다 중간 단계로 미국과 중국을 병행하는 전략을 포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군사 동맹에서 첨단 기술 동맹 등을 포괄하는 복합 동맹으로 발전”시키고, 중국과의 경제 협력도 병행하는 쪽을 천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트럼프의 미국이 한몫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언제나 돈타령이다. ‘우리가 도와줘서 한국이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안보 값을 내라’는 식이다. ‘분쟁 해결의 명수’라는 허망한 타이틀에 집착하는 트럼프는 한국의 안보는 자기가 김정은과 만나면 모두 해결되는 것이고, 한국과 주한미군의 가치는 대(對)중국 전선의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믿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 좌파의 헌법파괴 전횡이나 민주주의 가치의 무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지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저 입만 열면 한국 잘 살고 자기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라는 말만 반복할 따름이다.

이 정권은 그것을 100% 이용하고 있다. 한국의 이 정권과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이해가 다르면서도 잘 맞는 궁합(odd couple)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