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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아래 백양사 쌍계루정자와 주변 단풍이 일광정 연못에 반영된 풍경.
☆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조용히 손 내밀었을 때.....
내 마음속에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내가 가장 외로울 때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손을 잡는다는 것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일인 동시에
서로의 가슴속 온기를
나눠 가지는 일이기도 한 것이지요......
사람이란
개 개인이 따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지만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부터
두 사람은 하나가 되기 시작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그때 이미 우리는 가슴을 터놓은 사이가 된 것입니다
☆* 시 전 집 * 중에서 / 이 정 하 글
♤ 에 필 로 그
한 처음 말이 있었네
채 눈 뜨지 못한
솜털 같은 생명을
가슴속에서 불러 네네
사ㆍ랑ㆍ해ㆍ
아마도 이 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가
괜히 나뭇잎만 흔들고
후미진 내 가슴에 돌아와
혼자 울겠지
사ㆍ랑ㆍ해ㆍ
남몰래하는 이 말이
어쩌면
그대도 나도 모를
다른 세상에선 꽃이 될까 몰라
아픈 꽃이 될까 몰라
☆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 정 희 성
☆* 시 전 집 * 중에서 ♡
내가 헬스장 다닐 때 들고다니는 가방이 겉은 멀쩡한데 속은 헤졌다. 아들이 신어보고 발이 편하다고 내게 사준 운동화와 아끼던 운동화 등 두 켈레를 세탁해서 신발장에 넣어두고 꺼내 신지를 않는다. 어쩐지 내게는 발이 불편해서 매일 신는 낡은 나이키 운동화가 편해서 좋다. 그런데 어제 물목문학회 총회에 가면서 보니 나이키 운동화가 때가 많이 묻었고 밑창이 다 닿았다는 것을 알고는 세탁해 놓은 신발을 신고 갔는데 역시 불편했다.
이 둘을 동시에 목격한 K가 가방과 운동화를 새 걸로 바꾸어 가지고 왔다. 답례로 저녁이나 먹자고 해서 수경찜 식당에 갔는데 거기서 팬을 만났다.
식사를 하러 왔던 팬 밥값까지 내가 낼려고 하고 있는데 식재료가 떨어져 팬은 동거녀와 식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갔고 결국 밥값도 맥주 한잔 먹지않은 K가 지불했다.
오늘은 공짜로 살은 셈이다.
살아남았다는 건
강하다는 것
☆필사
부끄럽지만 나는 아빠가 참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밥보다 술을 더 좋아했던 사람으로 술 없이는 삼시 세끼를 먹지 못하는 술고래였다. 하지만 아무리 술이 좋기로서니 수능 전날 자고 있던 아들의 방문을 열고 술 냄새 가득한 입으로 노래를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마 그때쯤 확신했던 것 같다.
"나는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아빠는 일찍부터 동네 친구들을 잃었다.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오직 덕팔이 아저씨 하나로, 아빠의 불알친구 중 대부분은 불혹이 채 되기도 전에 이승을 졸업했다. 물론 그 이유조차 술 때문이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래서 아빠는 힘든 날이면 유독 더 과음을 했다.
IMF로 잘 나가던 사업이 망했을 때,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때, 딸의 결혼식에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빠는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술은 말없이 아빠를 위로해 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 꼴을 무려 35년이나 본 나는 솔직히. 내가 아빠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 됐다. 아빠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했음에도 집안의 별 도움도 없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큰 집을 구했다. 그것도 모자라 아이 두 명을 너끈히 키워내는 기염까지 토했다. 나는 자식 한 명 없는 지금의 삶도 버거운데 아빠는 가장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걸맞은 듬직한 삶을 살아냈다.
그렇기에 서른다섯, 나는 약 25년을 돌고 돌아 다시금 알게 된 것이다. 아빠는 슈퍼맨이었다. 여전히.
소년의 인생은 즐겁다. 청년의 인생은 힘겹고 아빠의 인생은 무겁다. 내 인생이 제일 힘겹다고 생각한 시절을 지나 누군가의 아빠가 되려 하는 지금, 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나는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고되다. 나 하나 책임지기도 힘든 이 세상에서 나를 넘어 아내와 자식, 그리고 양가 부모님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 인생을 아빠만큼 살아낼 자신이 도저히 없다. 그렇다.
살아남았다는 건 강하다는 뜻이었다.
이 멜랑꼴리한 기분을 도저히 그냥 둘 수 없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말했다. "아빠! 이제 술 좀 그만 마셔." 속마음을 힘껏 숨긴 아들의 걱정에 아빠는 "술 없으면 누구랑 노냐." 하고 퉁박을 놓았다. 통화는 그 뒤로도 5분간 이어졌다. 옥신각신. 여느 때처럼 치고받다 급 조용해진 틈을 타 이 말만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아빠,
고마워."
인생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멜랑꼴리 : 우울 또는 비관주의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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