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산행

대마도-1-

버팀목2 2011. 10. 12. 11:48

대마도(對馬島)

 

 

⊙ 출발일시 및 장소

    2011. 10. 8.(토) 05:00

    통영시 무전동 롯데마트 앞

⊙ 일정

     1박 2일

⊙ 인원

     47명

⊙ 요금

     333,000원

⊙ 산행 주관

    통영사랑산악회

 

 

대마도로 떠나면서,

내 머리에는 작년에 읽었던,

소설의 허구성도 있겠지만 덕혜옹주의 슬픈 삶을 조명한 

권비영의 장편소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로 온통 어지렵혀 있었습니다

 

 

1912년 5,25 고종과 양귀인 사이에서 고종의 막내딸로 덕수궁에서 태어나

1931.5월 대마도백작(다케유키)과 강제 정략결혼을 하여

1956년. 8월 외동딸 정혜(마사에)를 낳았으나,

 

정혜로 살아 가기를 바라는 덕혜와

마사에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다케유끼 사이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결혼후 산 고마카다케에서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쓰 놓고 종적을 감췄고

 

딸의 자살도 모른 채 정신병동에 감금되어 살면서

해방후에도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이승만 정부에서 왕실재산을 국유화하고 왕족들을 천대하여,

 

이씨 왕가의 자손들은 해방이 되고도 영친왕을 비롯하여 아무도 조국의 외면으로 인하여

돌아오지 못했고,

 

1962년 1월 37년간의 유랑생활 끝에 옹주의 내정된 약혼자 였던 김장한의 동생,

신문기자였던 김을한의 도움으로 박정희의 재가를 받아 조국으로 귀환하여 창덕궁 낙선재에 살면서

가끔 정신이 들때마다 썼다는 글귀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나의 마지막 소원은 오로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 났지만 한 번도 황녀로 살지 못했던 여인,

누구보다 귀한 존재였지만 모두가 외면했던 그 여인은,

1989. 4. 21. 77세의 나이로 영원한 자유를 향해 먼 길을 떠났습니다.

 

 

해향(다케유끼의 시집)

호호데미는 생각한다.

그 사자가 보낸 신은 어쩌면 해신이었을까

그리운 아내여,

해궁의 회랑에도 바닷물 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당신은 외딴집 붉은 서까레 아래

내가 준 하얀 진주를 걸어 놓고 홀로 한숨짓고 있는가

 

한회(閑懷)

-한가한 날의 그리움-

바람불지 않는 계수나무 가지에

파도 치지 않는 선창의 바깥

구름은 바닷속을 파고들고

물살도 급히 흘러가는데

 

사랑스런 아내여, 울려요

수많은 새들이 날갯짓을 하는구려

(중략)

사랑스런 아내여

떠나지 말아줘요

사랑하는 자식들을 우리가 품어야 되리.

 

다케유끼의 시집 "해향" 중에 있다는 한회를 음미해 보면 

다케유끼도 일본 황실에서 정해 준 덕혜옹주와의 결혼 생활에서

덕혜가 정신적 성장을 거부하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보면서

자신도 수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소설속에 나오는 다케유끼의 시의 내용을 보면,

덕혜를 마지막으로 정신병동에 입원시키고도,

인간적으로 내심 사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니면 연민의 정인지...  

 

  

 

09:00경 일본국 선적 비틀호를 승선하여 부산항을 출발하면서,

옛날 하루 두번 대형선박 통과를 위해 들렸다는 영도다리 모습을 담았습니다  

 

 

우리 일행이 승선한 쾌속선 비틀호입니다

 

부산항에서 출발한지 1시간만에 76km를 달려 도착한 대마도의 북쪽에 위치한 히타카츠 항의 평온한 모습을 보면서

통영의 조용한 섬마을 포구를 연상시킵니다.

 

방파제의 안과 밖이 조류가 흐를 수 있도록 구멍이 뚤린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통영의 강구안도 저기에 착안해서 정량만과 연결하면 각종 생활하수가 쏟아져 내려 구정물이 된 바닷물이

정화가 되지 않을 까도 싶네요 

 

여객선 터미널안에서 통관절차를 거치는데 1시간여가 걸렸습니다

얼굴 사진 찍고, 양손 시지 지문 찍고, 소지품 검색에... 

 

보조 의자를 펼치면 60인승, 접으면 47인승 버스를 타고 중식을 위해 식당으로 5분정도 이동합니다

 

우리 일행의 식사 예약장소인 요정 천학 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허술해 보입니다

 

입구는 한국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인데 내부에 들어 서니 아주 깨끗하게 미리 우리 일행의 식사가 차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1인용 식단

 

우리 일행의 여행 가이드인 부산 레드캡 여행사 소속의 엄순영씨가 자필로 A4 용지에 행선지를 적어 버스안에 붙여 놓고 안내를 시작합니다 

1900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러시아 함대를 맞아  대마도를 상도와 하도를 인공적으로 잘라 수로(만제키바시)를 만들고 수로를 이용하여 대승하였다는 이야기와 상도와 하도를 연결한 다리를 관광하고,

이후 아리아케산(유명산) 산행이 예정되어 있답니다.

 

 

어쩌면 엄순영씨에게 조선의 아픈 역사를 이곳을 찿는 한국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는 공로로 훈장이라도 정부에서 수여해야 될것 같은 역사탐방 시간이 계속 됩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에 강물처럼 바닷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 수로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승리하게 만든 일등공신 이었답니다. 

 

 

 

 

대마도주와 강제결혼을 위해 조국을 떠나기전의 덕혜옹주 사진입니다

  

 

덕혜옹주의 남편 다께유키(宗武志)

다께유끼는 영국으로 유학가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고 하며, 그림, 시 등 예능에도 탁월한 능력을 가졌고,

쓰시마 도주(島主)였으며, 아소만을 바라볼 수 있는 카미자카 전망대에 오르면 그의 시비도 있었습니다.

 

대마역사민속자료관에서 조선통신사 특별사료전이 개최중이라는 입간판이 자료관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자료관 진입로이며 아리아케 산(유명산) 산행 진입로이기도 합니다

 

 

 

 

 

 

조선통신사란 조선과 일본사이의 선린우호를 위한 국가외교 사절단으로 조선에서 일본으로 12회 파견되었고

500여명에 이르는 장엄하기 이를데 없는 행렬이었다는 안내문. 

 

 

게이트볼의 원산지가 일본이지 싶은데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는 풍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독도가 한,일간의 영유권 분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후,

여행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1995년부터 "대마도는 우리 땅" 구호를 외치며 한국 여행객이 대마도를 찿기 시작한 이래,

요즘 토요일 하루 약1,200여명의 한국사람이 대마도를 찿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등산시 주의할 점도 일본어와 한국어로 안내문을 게시하여 놓은것 같습니다  

 

 

아리아케 산의 진입로는 대나무 숲을 지나고 다시 히노키(편백나무) 숲을 지나게 되며,

그 다음 잡나무 숲을 지나고 정상부에는 억새밭입니다.

 

대마도의 농경지는 총면적의 4%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산림으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인공조림한 것으로 보이는 히노키 숲이 어딜가나 쉽게 눈에 띄며,

대마도 전체의 히노키를 벌채하여 재목으로 사용한다면 일본 전체 인구가 4년 동안 먹고 살수 있을 정도의 재산적 가치를 지니고  있답니다

 

 

 

 

 

아리아케 산을 등산하는 동안 만난 단체 등산객이 4팀 정도 있었는데 모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이를 미루어 보아 이 반질반질 하게 닦여진 등산로도 모두 한국사람들이 밟아 만든 길 인것 같습니다.

 

 

 

 

 

 

아리아케 산 정상목 입니다

먼저 다녀 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극기를 꽂아 놓고 갔습니다.


 

 

 

 

 

 

대마도에서 산행시간이 제일 긴 5시간이 소요된다는 시라다케 산이 보입니다

 

 

 

하산하면서 올려다 본 아리아케 산 입니다

 

 

대마도의 시청 소재지 이즈하라 입니다

 

 

 

 

거제에 있는 왜성과 구조가 흡사합니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단면입니다

통영의 미륵산이라면 벌써 누군가에 의해 없어 졌겠지요.

자연을 보호하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 인것 같습니다

 

 

 

등산로 입구

 

일본에는 전기줄이 없다더니,

이곳 대마도는 낙후지역이라서 그런지 한국의 풍경과 흡사합니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입니다

조선의 이씨 왕가와 대마도의 소(宗) 씨 가문의 결혼을 봉축하는 비석이 하늘을 찌를듯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덕혜옹주와 다케유끼의 결혼식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 같습니다 .

 

 

 

 

 

 

결혼봉축비 참관을 끝으로 온천으로 이동하여 우리동네 목욕탕 보다 못한 해수온천을 하고

온천 옆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

 

대마도에 온 우리나라 여행객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식당 크기이고,

온천과 삼겹살, 조개구이 식당 코스는 우리나라 여행객을 위해 만들어 졌고 거쳐야 할 코스인 것입니다.

 

 

 

 

 

 

 

 

 

 

 

유일한 젊은 커플입니다.

대마도의 밤은 이렇게 찿아 오고

이후 숙소로 이동하여 각자 개인 시간을 가집니다.

끼리끼리 모여 한국에서 가져 온 술을 먹든지, 택시를 불러 가라오케로 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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