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2.08.12(금)

버팀목2 2022. 8. 11. 22:35

2022.08.12(금) 맑음

 

 

 

☆       마음의 감기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고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참 희한한 마음의 감기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그 걸 보고 시련당했냐 묻고
또 어떤 이는 우울증이냐 묻는다

뭐냐고 , 왜냐고 묻지 말고 그냥 안아주길
토담 토담 쓰담 쓰담
이유를 묻는다는 건 알려 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 같은 것이다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게 마련이고
남의 걸린 암보다 자신의 감기가
더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뻥 뚫린 마음 한편 메우기가
상처에 후시딘 바르듯 그리 쉬우랴

때론
우리가 살면서
다 알지 못하고 겪게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럴 때 이해하지 말고 그냥 마음으로
안아 주라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마음 나눔이
아니겠는가

☆* 마음의 감기 *  중에서 /  루 이 제  레 더 만      글




♤      에        필        로      그

초대하지 않은 비바람이
불현듯 불어와 꽃밭을 쓸어갈 수도 있고
애지 중지 여긴 글 밭에 뽀얀 먼지만 쌓여
휴지로 버려질 수도 있고
가장 소중하다고 여긴 보석도
새로운 상품에 밀려 별거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내 욕을 할 수도 있고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어쩌면 신의 세계도 절반은 예수
절반은 부처를 찾는데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아파하지 말자

한 때는
심장을 쿵쿵 뛰게 하던 더없이 곱던
장미도
툭 툭 꽃잎 떨어지듯 곱게도 적어가던
사랑 시가
백지가 될 수도 있다

더러는 쌓이고 
더러는 흐르는 그것이 세월이다

☆ 아파하지 말자   /     이     민   숙  ☆* 오선 위를 걷다 *     중에서

 

 

 

 

[불교] 음력 칠월 보름날. 승려들이 () ()하여 부처를 공양하는 날을 명절로 삼은 것이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고려 시대에는 이날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사찰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餓鬼)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3보(寶)에 공양하는 의식이다. 우란분(盂蘭盆)은 ⓢullamban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도현(倒懸)이라 번역한다.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다. 우란분재(盂蘭盆齋)는 《우란분경(盂蘭盆經)》에서 유래한다. 목련(目連)이 신통력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아보니, 아귀가 되어 굶주리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목련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어머니를 구제하려 했으나 어머니의 죄가 너무 무거워 구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목련이 부처님에게 간청하니, 부처님이 여름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에 여러 승려들에게 갖가지 음식과 과일을 정성스럽게 공양하면 어머니는 아귀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했다. 목련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해서 어머니를 구제했다고 한다. 이 재는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의 양 무제가 동태사(同泰寺)에서 처음 행한 후, 역대 왕들이 개최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고려 때 여러 차례 개최했고, 조선 때는 불교가 탄압을 받았으므로 서민들이 행했다.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우란분재에 대해 ‘장안의 사찰에서는 7월 15일에 백 가지 꽃과 과일을 모아서 우란분재를 베푼다. 가정집에서는 돌아가신 부모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고, 승려들은 거리로 나가 탁발하였다’고 했다.

또한 이능화(李能和,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에는 ‘7월 15일 백중날(百中-)에 각 사찰에서는 죽은 이를 위해 불단에 위패를 세우고 재를 지낸 뒤 그 위패를 불사르는데, 이 의식은 가정집에서 제사 지내는 의식과 똑같았다’고 했다. 현재 사찰에서는 여름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을 백중날이라 하고 그에 따른 법회를 행하고 있으나 민간에서는 소멸되었다.

 

▣출처 : 인터넷 '우란분절'

 

우연히 인연이 되었다.

절을 찾아갔다가 시주를 하면서 주소를 남긴것이 스님과의 인연의 시작이다.

 

우란분절 초재 전날 꿈에서 만났던 먼저 간 지인의 모습을 보고는 미래사를 찾아갔었다.

대웅전 영가들을 모셔 놓은 단 앞에 그날따라 활짝 핀 난들이 유난히 많았다.

영가 사진들 속에서 내가 꿈속에서 만났던 사람의 사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날이 우란분절 입재날이었다.

 

종무소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스님 말로는 그분의 처가 영가를 집으로 모셔 갔다고 했다.

  

그날 미래사 종무소에서 만났던 스님이 자신도 그분과의 인연을 들먹이며 말재(백중)에 재를 올려주마라고 해서 시주(기도비)를 하려고 했는데 스님은 이를 거절하면서 다가오는 백중 이후에 다시 꿈에 나타나면 그때 다시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홀연히 절문을 나섰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소지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죽림 홀리골 제석봉 아래 천왕사에서 온 백중 기도 안내문 생각이 났다.

노트북 밑에 넣어 두었던 우편물을 꺼내 읽어보고는 빈칸을 채워 넣고는 봉투에 기도비를 넣어 무작정 천왕사로 갔다

 

종무소와 같이 쓰고 있는 내실로 들어갔는데 거기 달마대사가 계셨다.

밀양 여여정사(如如精舍)에서 본 달마대사 상과 똑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천왕사 스님과의 첫 인연이었다.

 

올해 네 번째 백중 천도재 행사에 참여했다.

 

달 마 대 사 

 

달마대사는 원래 인도 남부의 팔라바 왕국의 왕자였는데, 중국에 건너가 불교를 전파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인도 28대 조사(祖師),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반야 다라 존자의 법을 이어 인도에서 크게 법을 펴다 서기 520년

중국으로 왔다. 양무제와의 문답 후 인연이 맞지 않음을 알고 숭산

소림사에 가서 9년간 면벽(面壁) 수행하였다. 신광이 달마대사의

가르침을 사모하여 찾아와 밤새도록 눈을 맞고 섰다가 팔을 잘라

구도의 정성을 다하니 입실을 허락하고 '혜가'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일설에 달마대사의 가르침에 시기 질투하는 무리들이 독살하였다고

하나 위나라 대신 송운이 사신 갔다가 총령 고개에서 신 한 짝을 들고

인도로 돌아가는 달마대사를 보았다 하여 무덤을 열어 보니 빈 관속에

신 한 짝만 있었다고 한다.

수행으로는 '이입 사행론'을 가르쳤고 저서로는 「혈맥론」 한 권을 남겼다. 

 

▣ 출처 : 밀양 삼랑진 여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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