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023.02.19(일) 결혼 40주년 기념 여행

버팀목2 2023. 2. 20. 11:54

2023.02.19(일)

결혼 40주년 기념 여행  구례  화엄사

 

   

 

   운정(雲頂)은 아침공양을 마치자 바랑을 챙겼다. 바랑을 챙긴다고 해

보았자 누더기승복 한 벌과 밥그릇 · 국그릇으로 쓰는 바리때 두 개, 금

강산 박달나무를 손수 깎아 30년 가까이 사용해 오고 있는 숟가락과 젓

가락, 광목수건 한 개가 전부였다. 또 다른 소유물이 있다면 입고 있는

승복과 나무단주(短珠) · 고무신이었다. 길을 나서 걷기에 지치면 버려진

막대기로 지팡이를 삼았고, 어느 절에든 머물게 되면 그 막대기는 땔감

으로 보태었기에 지팡이는 일정한 소유물이 아니었다.

  

   각황전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운정의 가슴에는 공허한 바람이

맴을 돌고 있었다. 삭발한 지 40여 년, 어느 길을 돌고 돌아 여기에 와

있으며, 깨닫고 이루었음이 그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의 허망한 그림

자를 보아야 하는 고뇌스런 신음이었다. 각황전 앞에서 그 회한이 더 깊

어짐은 무슨 연유인가. 각황전을 이루어낸 그 어느 이름 모를 목수의 금

강석같이 견고한 신심과 원력 앞에 삭발승의 부끄러움이 새롭게 도지는

탓일 것이었다.    열아홉 나이에 불사에 참여한 그 목수가 각황전을 다 짓

고 났을 때는 일흔아홉이 되어 있었다 한다. 실로 60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고, 그는 그동안 각황전 언저리를 한 번도 벗어난 일이 없었다. 완

공과 함께 머리에 동여맨 수건을 푼 그는 각황전 돌계단을 걸어 내려와

뒷개울로 사라졌다. 그는 한나절이 넘도록 몸을 씻었다. 그리고 그날 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자 어둠에 묻혀 있던 경내가 갑자기 

휘황한 빛으로 밝아졌다. 놀란 대중들이 밖으로 나와 보니 한 마리의 백

학이 현란한 빛을 뿜으며 각황전 위를 너훌너훌 날고 있었다. 그 백학은

각황전 위를 세 번 돌고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목수를 어찌

기술자라고만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각황전이 어찌 솜씨로만 이룩되었

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솜씨 뛰어난 기술자였을 뿐이라면 그 목수가

어찌 60년의 세월을 견디고 참아낼 수 있었을 것인가. 매시(每時)가 차

가운 인내로 채워졌음이고, 하루하루가 뜨거운 신심으로 타올라 마침내

시공계(時空界)를 초월하는 경지에 들어 60년 세월이 하루같이 된 것이

아닐 것인가. 인간의 시간으로 그 긴 60년을 하루로 초월한, 청정한 영

혼이 빚어낸 솜씨는 또 어떠했으랴. 이미 범상을 벗어난 그 솜씨로 빚어

낸 것이기에 각황전은 저리도 빼어나고 신비로운 불전이 된 것인가. 일

찍이 선암사로부터 발길을 시작해 지리산을 돌아 경상도로 건너가 태백

산맥의 긴긴 줄기를 거슬러오르며 금강산에 이르기까지 대소 사찰을 거

의 빠뜨리지 않고 들렀고, 다시 그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서 살펴보았지

만 각황전만  한 불전을 찾지 못했음이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었음은

백학으로 환생한 그 목수의 넋이 깨우치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이 독특한 문 창살 하나, 기와지붕, 그 목수의 넋은 각황전 부

분부분에서 역력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일찍이 깨달음을 이룩하신 세

존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녹슬지도 썩지도 않을 순금의 말씀을 남기시었

고, 신심 뜨거운 목수는 세월을 따라 변하는 인간의 간사한 눈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도록 빼어난 모습의 불전을 남겼는데 삭발하여 4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어는 번뇌의 샛길만 방황하다가 이제 또 그 허허로운 

발길을 어디로 돌리려 하고 있음인가. 운정은 점점 세차게 일어나는 부

끄러움의 물결에 떼밀리듯 각황전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주지는 굳이 일주문까지 배웅을 나왔다.

  「인연의 바람에 실리면 또 뵈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운정은 깊이 허리 굽히며 합장을 했다.

  「원로에 부디 평안하시고,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시기를······.」

   주지도 이별의 합장을 했다.

   운정은 4개월 남짓 머물렀던 구례 화엄사를 떠나고 있었다. 목적지는

순천 선암사였다.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지난달 하순에 접어들면서

들었다. 구례가 쫓기는 반란군에게 장악되었다는 사실을 월말에 이르러

전해져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절에는 아무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 조정래의 태백산맥 - 2 -

 

새가 창공에 그 발자국을 새기지 못하듯이

인간사 그 무엇이 영겁 속에 남음이 있으랴.

 

 

구례군 마산면 마산리 소재 송이식당

 

11시 방향 노고단에는 백설이 덮여 있다

 

 

 

한 달포 전에 집사람이 넌지시 오는  2.20일이 결혼 40주년(결혼 1주년 : 지혼식, 25주년 : 은혼식, 30주년 : 진주혼식, 40주년 : 벽온혼식, 녹온혼식 : 푸른빛이 나는 고운 옥 에메랄드, 에메랄드는 행운과 행복을 뜻하며 또 치유의 보석, 50주년 : 금혼식)인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제안을 했다.

 

결혼기념일이라고 여태껏 달리 여행을 가 본 일도 없었고 어디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집사람은 통영시청사회복지과에서 시행하는 아이 돌봄 지원사업인 유아돌보미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출근을 한다.

 

그래서 휴일인 19일(일요일)에 떠나기로 했다.

물론 가는 곳은 나에게 일임했다.

 

아침 일찍 나는 떠날 준비를 마쳤는데 집사람은 오전 내 장가도 안 가고 따로 혼자 죽림에서 살고 있는 아들 동완이가 일주일 동안 밀린 빨랫감을 갖다 놓았기에 세탁기를 돌리고 집안 정리를 하느라 낮 12시가 되어서야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오후 1시경 출발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갈 곳을 인터넷으로 여러 곳을 검색해 보았지만 딱 마음에 와닿는 곳은 떠 오르지 않았다.

 

돌아올 시간까지 염두에 두면 당일치기로는 멀리 가지도 못할 것 같아 남해 보리암구례 화엄사 둘 중에 선택하라고 했다.

 

무릎 상태가 불량한 집사람이 먼저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인지를 묻는다.

 

남해 보리암도 산꼭대기에 있지만 셔틀버스로 올라가기 때문에 두 곳 모두 접근이 용이하다고 했더니 셔틀버스 말에 보리암은 언젠가 한번 가 본 것 같다고 화엄사로 가자고 한다.

 

1시간 30분이 걸려서 화엄사 입구에 도착하니 시장기가 온다.

진행방향 맞은편에 있는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유턴해서 송이식당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으로는 늦은 시간이지만 손님이 꽉 차 있었다.

 

돌솥밥 정식(19,000원)

고택 찹쌀생주(알코올농도 12도, 시가 1만 원) 병을 구매했다.

 

   

1인분에 19,000원짜리 돌솥밭 정식을 주문했다.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집사람은 반찬 가짓수가 많은 것을 억수로 선호한다.

그래서 새터 시락국집에 갈 때면 반찬 가짓수가 제일 많은 훈이시락국집을 손가락으로 꼽는데 거기는 토, 일요일은 객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이 와서 줄을 서기 때문에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리산대화엄사 일주문을 지나니 문화재 관람 입장료를 징수하는 곳을 카드로 결제하고 통과했다.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화엄사 홍매화를 검색했더니 3/20경 만개한다고 하면서 입장료가 성인 3,500원이라고 돼 있었는데 가스비 등 모든 물가가 인상되었다고 난리 더니 화엄사 문화재구역입장료도 500원이 인상되어 4,000원을 징수하고 있었다.

 

   

화엄사 대웅전(보물 제289호)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본존 불상으로 모신 절의 중심 법당이지만 화엄사 대웅전 법당에는 목불인 삼신불이 모셔져 있다. 화엄사 대웅전은 본래 지붕 전체가 청기와로 이루어진 대홍상적광전 법당이었다. 정유재란 때에 다 없어져 인조 8년(1630)에 백암 스님이 문묘와 함께 중건하였다. 삼존 불상은 인조 10년(1632)에 안치하였다. 대웅전 편액은 인조 14년(1636)에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이 쓴 것이다.

▣ 출처 : 구례 화엄사 대웅전 안내문에서 

 

구례 화엄사 東 오 층 석탑(보물 제132호)

 

각황전(覺皇殿)

 

각황전(국보 제67호)은 조선 숙종 28년(1702)에 계파 대사가 중건한 증층의 대불전이다. 원래 이 터는 장육전(丈六殿)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 타 없어졌다. 장육전 중창 불사는 영조의 모친 숙빈최 씨도 동참하여 숙종 25년(1699)에 시작하여 숙종 28년(1702)에 완공하였고, 연잉군(영조)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1703년에는 삼존불, 사보살상을 완성하여 일주일에 걸쳐 대법회를 열었으며 장육전 중건 불사를 회향 하자 조정에서는 각황전이라고 사액하였다.

 

예조는 한 격 높여서 올려 선교양종대가람이라 하였다. 화엄사 각황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하고 있다.

 

각황전의 각황은 부처님이 깨달은 왕(성인 중의 성인)이라는 뜻과 숙종 임금에게 불교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육전 중창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계파 선사가 장육전을 중창하려고 백일기도를 한지 99일째 '물과 밀가루가 들어 있는 두 항아리에 손을 담가 손에묻지 않는 자가 화주승化主僧이라'는 꿈을 꾸었고, 이에 따라 백일기도 회향廻向날 공양주 스님이 화주승으로 뽑혔다. 그 후에 공양주 스님이 대웅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첫 번째 만나는 자가 시주자'라고 말하였다. 스님이 새벽 일찍 걸망을 메고 산문을 나섰는데, 산사에서 잔심부름하는 거지 노파를 만났다. 하지만 노파는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고는 화엄사를 향해 합장하며 다음 생애는 왕궁에 태어나길 기원하고 소(沼)에 몸을 던져 헌신공양(獻身供養)을 하였다. 6년 뒤에 손을 펴지 못하는 숙종의 공주가 공양주 스님을 만나 손이 펴졌는데, 공주의 손바닥에 장육전이라 적혀 있었다. 이를 보고 스님은 시주 노파가 공주로 환생하였음을 알았고, 숙종은 스님의 원력에 감탄하며 장육전 중건 불사를 지시 하였다.

 

1. 화주승 : 인가에 다니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법연(法緣)을 맺게 하고, 시주를 받아 절의 양식을 대는 승려

2. 회향 :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자기 자신에게 돌림. 여기선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을 의미함.    

 

▣ 출처 :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안내문에서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홍매화 : 

 

홍매화는 조선 숙종 때 계파 선사께서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홍매화를 심었다.

일명 장육매(丈六梅)이라고 하며, 또는 각황매(覺皇梅), 각황전 삼존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다보불)을 표기하여 삼불목(三佛木)이라고 한다.

 

홍매화의 붉은 꽃빛은 시주할 돈이 없어 애태우며 간절한 헌신 공양한 노파의 마음이런가, 환생한 공주의 마음이런가,

언제나 위태로운 왕자를 보며 애태운 숙빈최 씨의 마음이런가. 홍매화는 그들의 피 끓고 애타는 마음의 빛깔처럼 붉고 또 붉었다. 홍매불자는 향긋한 향기를 불보살님 전에 올리고 아름다운 자태를 참배객에게 보여주어 환호심을 불러일으키니 고색창연한 가람 화엄연화장법계와 화엄동천에 홍매화 향이 가득하네   

 

▣ 출처 :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홍매화 안내문에서

 

출처 : 인터넷에서 펌

 

출처 : 인터넷에서 펌

 

     

 

 

 

 

 

 

올해 홍매화 개화시기는 대충 3/20로 추정한다고 한다.

 

 

 

 

대웅전 지붕 사이로 보이는 노고단에는 아직 눈으로 덮여 있다.

 

 

 

 

사자탑(보물 제300호)

 

 

 

 

 

 

 

 

화엄사 옆 도랑 건너 저 길로 10여 년 전 화대종주를 하러 올라가던 길이다.

 

 

돌아오는 길에 하동 화개장터에 들러 화송고 버섯을 2통 5만 원을 주고 샀고,

죽림 이마트에서 한우 부채살 포장육을 사서 가져왔다. 

 

 

 

 

 

 

 

저녁시간에는 결혼 40주년 기념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화개장터에서 사 온 버섯과 이마트에서 산 부채살을 굽어 구례 송이식당에서 사 온 알코올농도 12도인 고택 찹쌀생 주로 사는 날까지 실컷 행복을 즐기기로 하면서 축배를 들었다.

 

 

▣ 국보와 보물의 차이점 공부하기

 

문화재보호법 제23조 (보물 및 국보의 지정) : 
①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다.
② 문화재청장은 제1항의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
③ 제1항과 제2항에 따른 보물과 국보의 지정기준과 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한국에서는 건축물을 비롯한 유형 문화재 가운데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을 보물이라고 하며, 이 보물 중에서 특히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크다고 인정받은 유산을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사하여 별도로 국보로 지정한다.

국가 차원에서 관리를 받는 문화재를 보물이라고 하며 그중에서 특히 뛰어난 것들을 국보로 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보나 보물 뒤에 따라오는 숫자는 그 가치에 따라 순위가 결정된 것이 아니고 문화재로 지정된 순서에 따라 매겨진 것이라고 하며, 국보는 332호 보물은 2078호까지 지정되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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