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23.12.30 계묘년(癸卯年) 마지막 산행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버팀목2 2023. 12. 31. 09:08

계묘년(癸卯年) 마지막 산행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2023년 마지막 날오랜만에 지리산 천왕봉(1,950m)을 오르기로 했다천왕봉을 오르는 중산리~칼바위~망바위~천왕봉(5.4km) 코스는 최단코스인 만큼 급경사이다산을 자주 오른다 해도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쉬운 코스인 중산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자연학습원 입구(3.0km)까지 가서 거기서 로터리 대피소(자연학습원~로터리대피소)로 올라가면 안전하고 수월하다나름 그 코스를 머릿속에 그리며 갔다.

문제는 천왕봉 산행을 제안한 구대장은 분명 칼바위 코스로 작정하고 있을 터이다원래 그 코스가 자기 스타일에 딱 맞다며 그리로 가자고 할 것이 분명하니 셔틀버스를 탈 구실을 생각해 보았다.

오전 6시 30분 무전동에 있는 24시 콩나물국밥집에서 만나 조식을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약속 시간 20분 앞당겨 집을 나섰다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동짓달 열여드레 하현달이 길을 비춰주었다.

약속장소에서 동행할 박태도 씨를 만나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히말라야 트레킹에 대장으로 동행했던 김종진 씨가 콩나물국밥을 먹고 있었다.

박 선생은 산행하는 날에는 집사람이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준다며 은근슬쩍 아내 자랑을 했다지인 중에는 건넌방에서 자는 아내가 깰까 봐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집을 빠져나온다고 한다나는 잠이 깨자마자 밥을 먹을 수가 없어 아내에게 잘 다녀오마고 인사만 건네고 집을 나선다장거리 산행에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편이다.

조금 후에 도착한 구대장도 콩나물국밥을 주문해서 같이 식사했다오늘 산행 참여 인원은 셋이라 했다같이 가기로 했던 한 명은 사정이 생겨 못 온다는 것이다.

7시에 통영에서 출발해서 중산리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플래카드에 중산리 국립공원 주차장 내부 공사로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고 되어 있었다아스팔트 포장길로 1km를 오르막길로 걸어서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2~300m를 차를 타고 올라가니 국립공원 직원이 나와서 신호봉을 들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통제소 옆에 약간의 공간이 있어 그곳에 주차하고 도보로 이동하면서 일행에게 이야기를 꺼냈다저녁에 딸내미 가족과 연말 식사 모임이 있다며산행 시간을 단축하자고 했다마침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셔틀버스를 타고 자연학습원 종점에서 내렸다조금 올라가다 보니 비구니 여섯 분이 올라가고 있었다법계사에 가는 스님들이라고 여겼는데 법계사를 지나쳐 천왕봉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스님들의 차림새가 천차만별이었다등산용품점에서 파는 스틱을 짚고 가는가 하면 나무작대기를 짚고 가기도 하고아이젠도 2구짜리 또는 4구짜리 각양각색이었다고급 승복을 입은 스님과 낡은 목도리를 둘둘 목에 감고 있는 스님도 있었다내 생각엔 속가에서 재정지원을 받거나 재산을 가지고 출가한 스님과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로터리대피소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데 박태도 씨가 20년 전 이곳 화장실에서 내가 카메라 빠뜨린 이야기를 꺼냈다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생일선물로 딸아이가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캐논 디지털카메라를 목돈을 들여 사주었다산행 시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했는데화장실에서 방한복 상의에서 휴지를 꺼내다가 그만 카메라를 재래식 화장실에 빠뜨린 것이다겨울이라서 변소 안이 얼어있어 카메라가 모로 꽂혀 있었다상의를 벗어 화장실 문에 걸어 두고 뛰어가서 스틱을 가져와서 다행히 건졌다물티슈로 몇 번씩 닦아서 수년간을 더 사용하다가 고장이 났다제품이 단종되어 쓰지는 못해 몇 해를 애지중지하던 물건이라 지금껏 보관하고 있다.

로터리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2km. 급경사 오르막으로 제일 힘든 구간이다개선문을 지나고 천왕샘 못미처 마지막 쉼터에 당도했다그 장소가 수년 전 부상자를 수송하러 갔던 119 구조대 헬기가 구조 중에 추락한 곳이다그날 사고로 부러진 구상나무가 고사목 되어 등산객들에게 조심하라며 무언의 속삭임을 주는 듯했다.

그 너머 촛대봉이 눈에 들어왔다내 젊은 날 지리산 종주 산행(성삼재~천왕봉~중산리 34km)을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저기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서쪽 하늘로 기울어져 있었다다리는 천근만근인데 장터목 대피소 지나 천왕봉은 까마득히 멀어 보였다. ‘눈은 게으르고 다리는 부지런하다’라며 우리를 스쳐 지나간 선배의 말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던 그 날들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오늘은 겨울 날씨치고는 천왕봉 가는 길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남강 발원지 천왕샘 바위틈새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샘물을 한 바가지 떠서 목을 축였다천왕봉 오르는 마지막 철계단 35계단을 지나 나무계단 110계단도 세어가면서 올라갔다먼 훗날 언젠가 천왕봉 등반하던 이 날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1,915m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에서 인증사진도 찍고올랐던 길로 되돌아오면서 쉼터에서 스마트폰을 열어 블로그에 적혀있는 지리산 산행기를 꺼내 보았더니 벌써 50회나 되었다 지리산 둘레길 22구간을 걸으면서 적었던 지리산 둘레길 산행기 19회까지 합치면 지리산 이야기는 69회 차를 기록한 셈이다.

하산하면서 로터리대피소에 잠시 들렀는데둘이서 망바위를 거쳐 칼바위 쪽으로 하산하자고 한다급경사로 3.4km를 내려가야 하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구간이다산악사고는 대부분 하산 시에 발생하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자칫 상처를 입기 일쑤다산행이 종료되고 나니 중산리에는 비가 내리고 뒤돌아본 천왕봉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무사히 7시간에 걸쳐 중산리까지 산행을 마치고 나니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아직 통영에 도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나 없이 가족 식사를 하라고 당부했다.

셋이 식당으로 가서 생갈비 5대와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2023년 계묘년 마지막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아직 천왕봉을 오를 수 있는 체력과 용기에 서로를 위로하며 송년회를 겸한 식사를 했다.

건강이 허락되는 날까지 계속 등반을 할 것이다새해에는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마음의 양식도 섭취해야겠다틈틈이 독서하고 글을 쓰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양미경 선생님 첨삭본

 

 

 

 

 

 

 

 

계묘년(癸卯年) 마지막 산행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지리산 천왕봉(1,915m)

 

 

2023.12.30(토)자 정말 오랜만에 지리산의 천왕봉을 오르기로 했다.

사실 천왕봉을 오르는 중산리~칼바위~망바위~천왕봉(5.4km) 코스는 최 단코스인만큼 그 대신 급경사이다 그러니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변칙 코스인 중산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자연학습원 입구(3.0km)까지 가서 거기서 로터리 대피소(자연학습원~로터리대피소 2.7km)로 올라갈 거라고 내 나름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로터리대피소~천왕봉 2.0km, 로터리대피소~칼바위~중산리 3.4km)

그런데 천왕봉 산행을 제안한 구대장은 분명 칼바위 코스로 갈 거라고 작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 코스가 자기 스타일에 딱 맞다며 그리로 가자고 할 테니 미리 내 나름대로 셔틀버스를 탈 구실을 머릿속에만들었다.

 

06:30경 무전동 소재 세무서 앞 24시 콩나물국밥집에서 만나 아침밥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으니까 06:10경 집을 나섰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고 서쪽 하늘에는 동짓달 열여드레 하현달이 떠 있었다.

이윽고 콩나물국밥집 앞에서 오늘 같이 동행할 박태도 씨를 만나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지난번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장으로 동행했던 김종진 씨가 콩나물국밥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었다.

 

박태도 씨와 같이 콩나물 국밥을 주문하려 하자 그는 산행을 가는 날에는 아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준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내 지인 중에는 건넌방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잠을 깰까 봐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빠져나온다고 하는 이도 있는 반면에 나는 그래도 잠이 깨자마자 밥이 속으로 넘어가지 않아 아내에게 잘 다녀오마고 인사는 건네고 집을 나서고 요즘은 장거리 산행에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편이다. 

 

조금 후에 도착한 구대장도 식사를 주문했고 소주 한 병이 주량에 못 미쳤는지 종진이는 한 병을 더 시켜 나더러 한잔만 거들어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척 동의를 했고 종업원이 가져온 소주를 반주삼아 두 잔을 마셨다.

우리 일행의 밥값까지 종진이가 카드로 결제했다.

 

오늘 산행은 구대장이 참여 인원이 셋 뿐이라고 했다. 애당초 가기로 했던 다른 한 명은 이전에 수술한 무릎 핑계로 빠졌다고 한다.

 

07:00경 통영을 출발해서 중산리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플래카드에 중산리 국립공원 주차장 내부 공사로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고 되어 있었다. 아스팔트 포장길로 1km를 오르막길로 걸어서 가야 한다니 짜증부터 났다. 그래도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하여 2~300m를 차량을 타고 올라가니 역시나 국립공원 직원 둘이 나와서 신호봉을 들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통제하고 있는 그 장소 옆에 약간의 주차할 수 있는 노견이 있어 그나마 거기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이동하면서 일행 둘에게 오늘 저녁 죽림에 살고 있는  딸네미 가족들과 연말 식사모임이 있다는 핑계 삼아 산행시간을 단축을 위해 셔틀버스를 타고 가자고 제안을 했고 마침 도착시간이 08:40 경이 었는데 09:00경 셔틀버스 출발시간이라고 하니 적절한 타임이었다.

 

자연학습원까지 3km를 차비 1인당 2,000원을 주고는 타고 가서 종점에서 하차하여 10여분을 걸어서 올라가는데 셔틀버스를 같이 타고 온 사실이 없는 비구니 스님 대여섯 분이 같은 방향으로 앞서 올라가고 있기에 로터리대피소 위에 있는 법계사에 가는 스님들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법계사를 지나쳐 천왕봉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스님들의 차림새가 천차만별이었다.

 

시중 등산용품점에서 파는 스틱을 짚고 가는 스님이 있는가 하면 나무작대기를 짚고 가는 스님이 있었고, 아이젠도 2구짜리 또는 4구짜리 각양각색이었고, 승복도 고급스러운 고어텍스 승복도 있었고, 누더기 같은 목도리를 둘둘 목에 감고 있는 스님도 있기에 내 나름대로 속가에서 재정지원을 받거나 재산을 가지고 출가한 스님과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잠시 후 도착한 로터리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고 있는 동안 일행인 박태도 씨가 20여 년 전 내가 대피소 화장실에서 카메라 빠뜨린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내 생일선물로 딸아이가 손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케논 디지털카메라를 38만 원인가 목돈을 주고 사주어서 산행 시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했는데 그날 대피소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에 용변을 보러 갔다가 방한복 상의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다가 그만 같이 들어 있던 카메라가 튕겨 나와 재래식 화장실에 빠졌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동계라서 변이 얼어 있어서 카메라가 모로 꽂혀 있었다 그래서 건너편에 있는 등산 스틱을 가져와야 하겠는데 내가 화장실을 비운 사이 다른 사람이 입장해서 그 위에 용변을 볼까 봐서 안절부절못하면서 큰소리로 건너편에 있는 우리 일행들을 불렀으나 워낙 많은 등산객이 몰려 있다 보니 내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았다. 잠시 머리를 굴려 아이디어를 낸 것이 상의를 벗어 화장실 문에 걸어 두고 뛰어가서 스틱을 직접 가져오는 방식을 취했다. 다행히 통했다.

 

물티슈로 몇 번씩 반복해서 닦아서 사용했고 그 이후 수년간 사용해 오다가 카메라 렌즈캡이 고장 났고, 제품이 단종되는 통에 부품 교체가 안 돼도 그래도 내 손때가 묻어 있고 당시 등산객이 소지한 카메라 중에는 고급품이고 내 몸의 일부인양 애지중지하던 물건이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로터리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2km 거리다 그런데 급경사 오르막으로 제일 힘든 구간이다 개선문도 지나고 더디어 천왕샘 못 미쳐 마지막 쉼터에 당도했다, 그런데 그 장소 바로 눈앞에 수년 전 부상자를 수송하러 갔던 119 구조대 헬기가 구조 도중에 헬기가 추락한 사건 현장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았던 곳이다. 아직도 그 옛날을 상기할 수 있는 추락하는 헬기에 부딪혀 부러진 구상나무가 고사목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촛대봉이 눈에 들어왔다. 내 젊은 날 지리산 종주산행(성삼재~천왕봉~중산리 34km)을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저기쯤 도착했을 때에는 해는 이미 등뒤에서 서쪽 하늘로 기울어져 있었고 다리는 천근만근인데 장터목 대피소 지나 천왕봉은 천 길 만 길 멀어만 보이지만 눈은 게으르고 다리는 부지런하다는 우리들 먼저 지나갔던 선배들의 말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던 그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늘은 겨울 날씨치고는 천왕봉 가는 길이 이렇게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예상외다 마침 날씨가 포근한지라 남강 발원지 천왕샘 바위틈새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샘물을 한 바가지 떠서 목을 축일 수 있었다.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철계단 35 계단도 세어보고 그다음 나무계단 110 계단도 세어가며 옛날을 추억하는 마지막 천왕봉 등산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젖어 보기도 했다.

 

1,915m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에서 인증샷도 촬영하고 올랐던 길로 되돌아오면서 쉼터에서 스마트폰을 열러 내 블로그에 적었던 지리산 산행기를 꺼내 보았더니 딱 50회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리산 둘레길 22구간을 걸어면서 적었던 지리산 둘레길 산행기 19회까지 합치면 지리산 이야기는 69회 차를 기록한 셈이다.    

 

하산 시에도 올라갈 때 들렀던 로터리 대피소에 잠시 들렀는데 거기서 일행 둘의 눈치를 살폈다. 결국 둘이서  망바위를 거쳐 칼바위 쪽으로  하산하자고 했다. 급경사로 3.4km를 내려가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가야 한다 모든 산악사고는 하산 시에 발생한다. 다리에 힘이 빠져 자칫 잘못하면 부상을 입기 일쑤다.

 

무사히 7시간에 걸쳐 중산리까지 산행을 마치고 나니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직 통영에 도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내 빠진 가족 식사모임을 진행하라고 당부했다.

 

일행 셋이서 목욕하고 저녁식사하기로 했다가 시간부족으로 목욕은 각자의 집에 가서 하기로 하고 청도소갈비 식당으로 직행해서 생갈비 5대(1대 35,000원)와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2023년 계묘년 마지막 산행을 마치고 아직 그래도 천왕봉을 오를 수 있는 체력과 용기에 서로를 위로하는 막연회 식사자리였다. 

박태도 씨가 구대장은 차량을 지원했기에 우리 둘이서 밥값 반반씩 분담하자고 했다. 내심 반가운 희소식이었다. 밥값을 내가 낼 거라고 당당하게 소 생갈비 5대를 주문했었는데... 

 

        

 

집을 나서면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동짓달 열 여드레 하현달이 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중산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3km를 와서 자연학습원 앞 종점에서 하차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통과 의식을 치렀다.

 

법계사를 0.7km 앞두고 앞서가는 비구니 스님들을 발견했다.

 

 

 

 

 

 

 

 

법계사 산문이다.

 

 

 

저쪽은 천왕봉에서 대원사 쪽으로 하산하는 길인데 논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농기구인 써레를 닮았다고 하여 써래봉이다. 

 

개선문이다.

 

수년 전 부상자 구호를 위해 출동했던 119 구조 헬기가 추락했던 장소의 고사목이 된 구상나무. 

 

천왕샘 위 고드름

 

 

 

 

 

남강 발원지 천왕샘에서 바윗틈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샘물 한 바가지로 갈증을 삭이다.

 

3시간 만에 천왕봉에 올랐다.

 

 

 

 

 

 

품앗이 

 

 

 

 

 

12시 방향이 촛대봉이다, 십수 년 전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당일 종주 시 촛대봉에서 서쪽으로 기울고 있는 해를 뒤돌아 보면서 천왕봉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던 내 젊은 날을 추억해 본다. 

 

 

중봉에서 칠선계곡으로 흘러내리는 저 능선이 수년 전 산사태 지역이다. 

 

칠선계곡을 당겨 보았다. 소지봉에서 흘러내린 마지막 지점이 창암산이다. 4년 전 우리 통영시산악연맹에서 동계훈련으로 백무동에서 창암산을 넘어서 칠선계곡으로 스며 들어섰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구상나무 고사목.

 

 

 

 

 

 

정면에서 바라본 개선문

 

 

지리산 국립공원 내 음주금지 장소 : 전 대피소, 산정상(천왕봉, 노고단, 반야봉, 만복대 정상 일원)

 

써래봉

 

망바위 

 

산행이 종료되고 나니 중산리에는 비가 내리고 뒤돌아 본 천왕봉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