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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하말라야(랑탕) 트레킹 4일 차

버팀목2 2024. 4. 6. 00:25

 

네팔 히말라야(랑탕) 트레킹 4일 차

 

                                                                                                                        김 봉 은

 

 오늘의 코스는 라마호텔(2,470m) - 고리타벨라(2,970m) - 탕샵 - 랑탕 마을(3,430m) 트레킹 거리는 14km, 6~7시간 소요되며, 고도차가 960m 상승한다 했다. 그래서 <고산병 요주의> 구간이다.

 라마 호텔에서 조식 후 오전 8시 롯지를 출발하여 랑탕 마을로 향했다. 고도가 하루에 약 1,000m 상승하니까 이틀 전부터 고산병 예방약 아세티 졸을 아침과 저녁에 2알씩 복용해 왔고 구구정(10mg)1정씩 복용해 왔다.

 라마 호텔 롯지에서의 밤은 악몽 같았다. 차라리 여인숙이라고 하지 왜 호텔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2층 좌측 맨 끝방을 배정을 받았는데 방 앞이 하필이면 공동 화장실이었다. 서울 근교에서 트레킹 온 팀 한 명이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나갔다.   배수가 되지 않는 샤워 금지 공동 화장실에서 화장실용 물을 받아 놓은 것을 그 물을 사용하여 샤워했던 것이다. 다음 타자로 내가 샤워할 수 있는지 기웃거리다가 공동 화장실 바닥에 물이 가득 찬 상태에서 주인 남자에게 그만 들켜버렸다. 내가 샤워한 것으로 오인을 받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네팔 말로 얼마나 꾸지람을 들었던지.

 게다가 2층 투숙객들이 밤새도록 화장실 들락거리며 화장실 양철 문을 여닫는 소리에 잠을 설쳤고, 변기 뚜껑까지 닫지 않아 분변 냄새가 우리 방에 스며들어 기절초풍할 정도였다. 이러니 아무리 피곤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을 못 잤다 한들 일정을 또 소화해내야 한다.

 그렇게 날이 밝아 식사하고는 라마 호텔을 떠났다. 랑탕 마을을 향해 가다 보니 높은 산꼭대기에서부터 곳곳에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높은 능선엔 온갖 키 큰 나무들과 풀들이 무성했고, 하늘엔 먹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있었는데 아슴푸레하게 보이는 산들이 산수화처럼 신비로워 보였다.

 

 트레킹 중간에 처음 만난 강변의 롯지에서 '럭시' 술을 맛보고 출발했는데 조금 가다 보니 자그마한 롯지가 나타났는데 한글로 쓴 글이 보였다. '막걸리와 소주 어서 오세요 ^^ 감자전도 있시오'라고 건물 벽에 적혀 있어 한글을 보고 반가워서 들어갔더니 가짜였다. 이런 곳에서도 사기를 치다니!

 이어서 야생화 군락지를 만났다. 야생화 천국이다. 꽃 이름을 다음 꽃 검색창으로 검색해 보려고 했지만, 인터넷 불통 지역이었다. 구절초를 닮은 꽃도 있었고, 들 현호색 닮은 꽃도 있었다. 한없이 넓은 야생화밭과 구름이 감싸 안은 산은 신의 걸작품 같았다. 탄복이 절로 나왔다. 얼마 안 가서 산정호수도 보았다. 아프리카 어느 밀림 지역으로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산행 대장 김종진 씨의 추억담을 들었다. 7년 전 이곳 롯지에서 동갑내기 롯지 운영자 친구를 사귀었다며 안부를 궁금해하며 도착했는데, 그 친구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미망인이 롯지를 지키고 있었다. 거기서 점심과 현지식 소주 '럭시'를 마셨다. 약간 취한 대장은 저승 간 친구를 대신해서 미망인과 회포를 풀고 가겠다며 우리더러 먼저 출발하라는 너스레에 한바탕 웃었다. 단체 촬영을 하고 출발했는데, 대장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친구의 죽음이 그를 슬프게 하나 보다. 랑탕마을을  향해 가는데 고도는 점점 높아만 갔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한 사람도 낙오자 없이 잘 견뎌냈다.

 한참 후 20154월 25일 8.1 진도의 지진이 발생하여 243명의 목숨과 가옥들이 묻혀 있는 산사태 지대를 통과하게 되었다. 아직도 저 돌무더기 밑에서 영면하고 있을 영혼들. 지진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랑탕 마을은 현수교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현수교도 없어지고 마을이 묻혀 있는 그 위로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야생화 한 송이를 꺾어 돌무더기 위에 놓고는 묵념으로 그들을 추모하고 지나갔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재의 랑탕 마을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했다.

 라마 호텔에서 랑탕 마을까지는 고도 약 1,000m 올라가기 때문에 최대한 물을 많이 마시고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고산병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아휴! 죽겠다! 연발이다. 여기는 고도 3,250m인데 2,400m에 올라서면 고산병 위험 구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날씨가 맑아져서 하늘은 파란 물감과 흰 물감으로 맘껏 색칠하고 있었다. 라마 호텔에서 랑탕 마을로 가는 트레킹 구간에 4번째 롯지이다. 랑탕 마을에 도착하여 현지인 가이드 머던에게 부탁하여 롯지 주인이 사용하는 세면장에서 찬물로 간단한 샤워를 하고는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놓은 식당에 들어가서 몸을 녹였다. 그래도 이곳엔 수세식 화장실이 객실 내에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우리 일행이 투숙한 3층 식당 벽면에 걸린 지진으로 매몰된 현장에서 기도하는 모습의 사진 속의 인물은 우리나라의 전 대통령으로 2015년 지진 이후 이곳 주민들이 트레커들이 오지 않아 생계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국인 현지 가이드의 요청으로 2016년 네팔 랑탕계곡을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korea president visit in). 방문 당시는 대통령이 되기 전이니까 이후에 쓴 글이지 싶었다. 정말 자랑스러운 한국이고,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