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1.07.27(화)

버팀목2 2021. 7. 27. 08:57

2021.07.27(화) 맑음

 

 

가슴에 못다 한 말 / 양 애 희

 

이마

맞대고

이별이 눕고 간 자리마다

추억만, 눈물만, 슬픔만의 흔적만 있진 않을 거야

 

사랑하여 가슴 설렌 시간도

사랑하다가 미워져 밤새 잠 못 이룸도

사랑하다가 하늘 가버린 운명도

바람 편에 건넨 사랑도

 

눈물겹도록 꽃 피고 꽃 진자리마다

터벅거리는 그리움에 향기 필지도 몰라

 

어찌 잊혀 지겠어

어찌 지원 지겠어

 

네가 오고

내가 가는 

침묵의 행복이거늘

아니라고, 아니라고 다짐하면서 들어와

눈물 한 방울의 늪인 걸

 

맺히고 엉킨 사연 들

가슴에 못다 한 말 되어

어느 곳 어디에 피더라도

화장 곱게 한 그리움

 

꽃처럼 피어 방울방울 살다가

문득, 너도 나처럼 내가 보고 싶을지도 몰라

 

가슴에 못다 한 말

내 삶의 전부는 너.

 

 

소설 '남부군' 연구

 

저자 이태의 「남부군」은 6.25 전란 중 남한 빨치산을 대표하던 '남부군'을 주제로 한 체험적 수기이다. 북한 정권에게 마자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소멸되어간 가...

 

소설 남부군을 인터넷에서 구매하려다가 회원 등록하고 어짜고.. 

복잡해서 포기하고 내일 강남서점으로 달려갈 거라고 마음을 정했는데...

 

인터넷 검색과정에서 '나무 위키'에서 이태가 쓴 '남부군'의 실체를 올려놨는데 '별로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제 시간 내서 정지아의 소설 '빨치산의 딸'을 구해 읽어야겠다고...

 

대신 이현상에 대해서만 잠깐 열독

 

 

地異風雲堂紅洞 (지리풍운당홍동)

伐劍千里南州越 (벌검천리남주월)

一念向時非祖國 (일념향시비조국)

胸有萬甲心有血 (흉유만갑신유혈)

 

지리산의 풍운이 당홍동에 감도는데

검을 품고 남주를 넘어오길 천리로다

언제 내 마음속에 조국이 떠난 적이 있었을까

가슴에 단단한 각오가 있고, 마음엔 끊는 피가 있도다

 

이현상이 사살되었을 때 품속에서 나온 한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1948년부터 시작된 빨치산은 6년 동안 1만 회가 넘는 교전을 벌였고,

죽은 사람만 해도 2만여 명이 넘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게릴라전이었다.

이런 활동에는 여러 걸출한 인물이 있었는데,

김지회, 박종하, 박영발 같은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남부군 총사령관으로 빨치산 활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현상을 빼놓을 수 없다. 

 

이현상은 1906년 충남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에서 4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아났다.

 

지역에서 대를 이어온 전주 이 씨 양반가였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고창고보를 다니다, 서울로 전학하여 중앙고보를 졸업했다.

 

중앙고보 재학 중이던 1925년 박헌영과 함께 공산당 운동을 했고, 1926년 6.10 만세  사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다시 보성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조선공산당, 고려 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27년에는 휴학을 한 뒤 상해로 건너가 망명 청년들의 모임인 '한인청년회'에 활동했고, 학교로 돌아와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1928년 8월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일제 치하에서 총 12년 간의 옥살이를 했다. 

 

그 뒤 조선공산당이 해체되자 경성 컴을 만들어 활동했고, 해방 직전 일본 경찰을 피해 지리산으로 입산했다.

해방 후 산에서 내려와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하여 남로당 연락부장, 간부부장을 맡았다.

미군정 때문에 공산당 활동이 어렵자 월북했다가 모스크바 유학을 떠났다.

 

1948년 다시 서울로 내려온 그는 11월 지리산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사령관'으로 치열한 빨치산 투쟁을 이끌면서 골짜기마다 수많은 전설을 남겼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남한 곳곳에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다시 입산하여 1951년 7월 '남한 6개 도당 위원장 회의'에서 남한 빨치산의 사령관 자리를 맡았다.

1953년 휴전이 되면서 북한에서는 박헌영, 이승엽에 대한 숙청이 이루어졌고, 그해 8월 6일 지리산 빗점골에서 열린 제5지구당 조직위원회에서 제5지구당은 해체를 맞고, 평당원으로 내려앉았다.

 

또, 남부군의 핵심부대였던 제5지구당과 김지회 부대를 여러 지역에 분산시키면서 그는 모든 권한마저 박탈당하고 말았다.

1953년 9월 18일 (혹은 15일, 17일), 이현상은 빗점골 합수내, 너덜겅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의문의 총탄을 맞고 죽음을 맞았다. 이때 그 나이 48세, 화개장터 앞 섬진강변에서 화장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남부군'

신문 기자 출신으로 남부군 사령부 편집지도원으로 종군한 이태(본명은 이우태, 1922~1997)가 쓴 빨치산 수기다.

이태는 태평양 전쟁 말기 학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그당시 드문 대학 (국학대학) 졸업자로서, 흔치 않았던 인텔리다. 남한 출신의 좌익 인사로서 빨치산에 참여했는데, 이 책은 남부군의 활동에 치중하고 오히려 남한에서 투쟁 중인 빨치산을 나 몰라라 했던 북한의 높으신 분들을 비판하는 경향이 많다.

사실 이태는 빨치산 생활 겨우 17개월 한 것이 전부다. 빨치산 역사를 제주 4.3사건, 혹은 여순사건부터 시작해서 54년 남도부체포까지로 본다면 약 5년 반인데 이태는 그중 정말 일부만 보았다. 게다가 작가가 의도한 이 책의 제목도 애초에는 〈남부군〉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작가는 짧은 빨치산 활동 중에서도 절반만 남부군에서 있었고 나머지는 전북도당에 있었다. 남부군의 거의 처음과 끝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지아의 소설 〈빨치산의 딸〉 2권의 주인공인 남부군 정치지도원 이옥자에 비하면 체험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태가 체포된 후 군경의 제2차 대토벌 작전 등의 큰 사건이 빠져있는 등 부족한 부분이 많다. 또한 이태가 고의적으로 잘못된 내용을 적은 것도 있다고 한다. 분명 본인이 정확히 알 사실인데 사실과 다르게 표시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인데, 이 수기 때문에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서 그렇게 처리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태는 9.28 서울 수복으로 북한이 후퇴할 때 입산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딱히 공산당 지하당 활동을 한 것도 아니다. 소설 〈빨찌산의 딸〉, 〈장군의 후예(마지막 빨치산 사단장 황의지)〉, 〈실록 남도부〉의 주인공들은 6.25 이전부터 활동한 구빨치들로 도당 유격대의 확실한 간부들이었다. 그들에 비해 비당원에 하급 간부였던 이태가 접한 정보들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책에도 빨치산에서는 시간 관념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나온다. 초판 때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은 개정판이 나오면서 지속적으로 고치고 있으며, 당원/간부와 비당원/평대원의 중간적인 입장에 있던 그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내용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같은 전북도당 유격대에서 활동했던 황의지의 책과 비교해보면 유격대 사령관과 소대장의 입장과 시선 차이가 많이 보이니 비교해보면서 읽는 것도 좋다.

 

를 들어 이태가 빨치산에 막 들어가자 마자 탈영병 때문에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는데, 이태는 이에 매우 충격을 받는다. 황의지의 책에서는 그 탈영병을 지키던 보초가 자신의 부하였고, 형집행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등 자세한 배경 설명이 나와 있다.

이처럼 한 사건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기도 하는 반면에, 한 사건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군경에게 쫓길 때 700명의 부대를 둘로 쪼개서 300명이 변산반도 쪽으로 갈라져 나가는데 황의지는 작전상 전라북도를 북쪽과 남쪽으로 나눠서 통제하기 위한다는 지도부의 계획을 써 놓았는데 비해, 이태는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도당지휘부와 반대 반향으로 간 부대는 시선을 끌기 위한 총알받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위에서 언급한 책들의 주인공인 구빨치 등은 자신들이 여순사건 이후 2년간 거의 대부분이 죽어가면서 빨치산의 맥을 이어 놓다가, 6.25가 터지자 자체적인 조직으로 각 도시, 기관들을 접수하여 인민군을 환영 하였는데 노동당 중앙당에서는 남한 좌익계인 남로당계가 아니라 듣도 보지도 못한 인물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 요직을 죄다 차지하게 만들어 충격을 받는다. 이태는 이 시점으로부터 3개월 뒤에 입산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학 관계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감지만 하고 있었다. 즉 남부군만 읽고 빨치산에 대해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것이다.

6.25 전쟁도 학술서 외에 수기류로 조망하려면 사단장→군단장이었던 백선엽의 〈군과 나〉를 봐야지, 김용배 대대장→연대장의 일대기인 〈세월의 이끼에 가려진 보석〉이나 이무호의 〈어느 졸병이 겪은 한국전쟁〉을 읽어서는 6.25 전쟁 전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특정 전투 또는 병사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실감나게 다가갈 수 있는데, 이태의 〈남부군〉은 후자에 가깝다.

이태 자신은 1952년 생포되어 처벌 후 사상 전향하였고, 이후 정계에 입문해서 6대 국회의원도 지내는 등 야당에서 활동하였다. 1980년대 민추협과 YS의 민주산악회 간부도 역임했다. 전쟁 중 틈틈이 쓴 수기와 나중에 가필한 부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일부는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에 그대로 수록된다.

87년 민주화 이후 두레출판사에서 초판이 발간되었고 이후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을 결합해서 개정판이 나왔다. 초판을 낸 후 위에서 언급한 전북도당 간부 황의지등과 연락이 되면서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많이 고칠 수 있었다.(남부군 간부 이옥자와는 그녀의 딸인 정지아가 〈빨치산의 딸〉을 출판한 후에 연락이 된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실록 정순덕(빨치산), 실록 남도부, 빨치산의 딸, 마지막 빨치산 사단장 황의지 등 빨치산 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리산 등지의 민간인 학살 사건도 새롭게 조명받았다.

이태는 일관되게 민중운동으로서의 빨치산 활동을 탄압한 이승만 정권을 비판한다. 또한 빨치산을 내팽개친 김일성 정권에 대해서도 매섭게 비판하면서, 이현상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이태의 이현상 전기는 북한의 이현상 암살설을 심도있게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과 이 책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종종 친북적이라고 오해 받지만 사실 매우 반북적이고 반김씨일가적인 책이다. 이 책은 해방정국의 우익들의 횡포를 고발하고는 있지만, 지리산 빨치산을 버린 자식 취급하여 그들이 남한 땅에서 의미 없이 죽도록 내버려둔 북한 체제를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다. 이태는 만약에 북한 측이 이념적 동지애, 아니 휴머니즘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전선 뒤에 남겨졌던 빨치산들도 귀환하게 할 방법을 강구했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대부분 죽음으로 끝장난 이들과, 이를 토벌하기 위한 남한 군경의 전몰자를 고려한다면 김씨 일가나 북한 체제는 나쁜 놈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이현상이나 남한 출신 빨치산은 매우 영웅적이고 지사적으로 나오지만, 북한 출신의 빨치산들은 마치 정복자처럼 굴면서 사상성도 매우 낮으며, 토벌전이 가열되자 제일 먼저 투항하는 비겁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이 책은 결코 종북주의자들이 좋게 볼 수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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