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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4(월) '내가 데리고 있었다'

버팀목2 2024. 3. 4. 07:10

'내가 데리고 있었다'

                                                                                                                          김봉은

 

  '내가 너를 데리고 있었다'  공직사회에서 흔히들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쓰는 말이다. 더 나아가 퇴직 후에도 그 말을 곧장 사용한다. 이 말은 부정적인 언어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옛날 내가 처음으로 수사과 형사계에 입문해서 수사업무를 선배들로부터 배우기 시작할 때는 업무상 사용하는 용어부터가 낯선 용어들로서 굳이 그 언어들을 사용해야만 태(態)가 나고 형사스러움에 적응해 나갔다.

 

 대표적인 용어가 '일응'이라는 말이 있었다. 일응이란? 한글사전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고 인터넷 검색결과 간접사실로 주요사실을 추정하는 일, 갑이라는 사실로 을이라는 사실을 추정하는 방법, 일본식 한자로 일단, 우선, 어쨌던 의미로 법조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였다. 검사가 사법경찰관에게 수사지휘를 할 경우 많이 인용한 단어이기도 했다. 

 

 모든 수사 기록은 수기로 작성했다. 그러다가 자력으로 구입한 전동타자기가 도입됐다. 수사서류 결재과정에서 검토라인에서 굵은 사인펜으로 사선을 쫘악 긋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대부분 수사전문용어로 함축되어 있지 않고 일기체로 늘어 썼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요즘 돌이켜보면 권위주의 발로였다. 그럴 땐 서투런 타자 솜씨로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는  어려움을 겼곤 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너를 데리고 있었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였다고 보여진다.

 

 타자기를 대신 해서 사비(私費)를 들여서 조립식 컴퓨터가 도입되었다. 시대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나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결재과정에 종이서류에 사선을 그어도 금세 수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는 전자서류 시대가 도래되었다. 고졸이 대세였던  공직사회가 대학을 졸업하고 신 지식을 익힌 후배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이제 후배들에게 전자서류 작성방법과 컴퓨터 작동 기능을 되물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쯤에서 나의 사고가 전환점을 맞았다. 부하를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고 모시고 있는 격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는 상하관계가 아니고 서로 협력하는 동료관계가 된 것이다.

 

  며칠 전 경우회 이사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경우회에 최근 퇴직한 후배들이 들어오지 않는 사실에 대해 토론이 벌어졌다. 어느 선배 '왈' 요즘 경찰서에서는 청장이 순시를 온다고 해도 당직 근무를 마친 직원이 그대로 퇴근을 하는 시대라고 하면서 옛날에는 야간 당직을 마치고도 쉬지 못하고 행사장에 아무 불평 없이 동원이 되고 했는데 요즘 세대는 청장이 오든지 말든지 내 휴무시간이면 집에 간다는 식으로 개인주의로 탈바꿈했다며 젊은 세대를 탓하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그런 선배님을 탓할 수도 없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통용되는 시절이었고, 지금은 정상화로 가는 길이지 싶다. 

 

 내 가까운 친구가 행정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했는데 거기에도 '행정동우회'라는 퇴직공무원 친목단체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은 그 친목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가 처음 입문했을 당시 주무계장 내지는 사무관 과장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선배들이 후배인 자신도 승승장구해서 사무관으로 퇴직을 하였고 자식들을 길러 출가시켜 손자, 손녀를 키우고 있는데 옛 직장 선배는 지금도 만나면 자기를 '말단 서기'로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그때 그 시절 내가 너를 '데리고 있었고 키웠지 않느냐?' 는 식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안 만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사 어디를 가나 이런 모순이 도사리고 있는 모양이다. 옛말에 '개구리 올챙이 적 일을 잊고 산다'는 말도 있고,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도 한 번쯤 새겨보아야 후배들에게 대우받는 선배로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우선 내부터 제대로 후배들로부터 선배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몸소 언행을 가려서 실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