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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는 날의 단상(斷想)

버팀목2 2024. 4. 6. 07:04

 

 

 

봄비가 내리는 날의 단상(斷想)

 

김봉은

 

 봄비가 초박초박 내리고 있단다. 봄비가 창문을 적시고 있는 아침에 유튜브에서 비 오는 날에 딱 들어맞는 분위기의 노래 한곡을 지인에게 복사해서 카톡으로 보냈더니 ‘초박초박 봄비 내리는 날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라며 답신으로 보내 온 말이다. 비가 초박초박 내리고 있다는 말은 처음 접하는 언어다. 그런데 낯설다고 하기보다는 어째 정감이 간다. 앞으로 초박초박 비가 내린다는 말을 자주 써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햇빛이 쨍쨍 내리쪼이는 날 보다는 아무래도 비가 내리는 날이 감성에 젖기 쉽다. 오늘처럼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베란다로 나가서 창문을 열고 아파트 7층에 자리 잡은 우리 집 앞에 떡! 버티고 섰는 안개가 약간 걸쳐 있는 장골산 언저리를 말없이 바라보며 내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본다. 이 나이 되도록 잊지 못하고 있는 그 사람들 이름들···.   이제는 얼굴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름만은 잊히지 않는다. 대부분 먼저 간 사람들이다. 그들과 살아오면서 오갔던 대화나 다찌집 혹은 한때 통영지역에서 유행했던 카페라는 주점에서 마주 앉아 나누었던 대화며 눈을 마주했던 그림들이 그 옛날 보았던 활동사진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런데 궁금하다. 내가 그 사람들 이름을 기억하고 가끔씩 떠올려 보듯이 그 사람들도 내처럼 저승에서라도 나를 추억해 주고 있을까? 다. 한편으로는 내처럼 그들도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짝사랑하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어쩨 불공평하다고 여겨진다. 어떤 이들은 이런 날 주로 못 이룬 첫사랑이나 짝사랑했던 여인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다. 단도직업적으로 말한다면 내가 좋아했던 그들이 나름대로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하고 일찍 요단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인 사람도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떠나간 사람들도 있다. 뒤돌아 보면 가슴 아픈 일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거나 당시에 주위에 인공호흡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었더라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다른 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들은 참으로 운(殞)이 좋지 않았다고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서 2000년경 당시 우린 가까운 사람들끼리 다이버스쿠버 동아리가 있었다. 나는 당시 격일제 근무부서에서 종사했기 때문에 휴무일에는 보트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서 욕지 근해로 갔는데 가는 도중에 보트 안에서 야간근무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는 스쿠버다이버를 즐겼다. 스쿠버다이버는 안전사고를 대비해서 짝다이버(2人1組)가 기본이다. 즉 둘이서 짝을 이뤄 잠수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버 강사로부터 기초교육을 받을 당시 만일 수중에서 활동 중 둘 중 하나가 산소가 떨어졌거나 기기고장을 대비해서 수중 10미터에서 둘이서 마우스 1개로 번갈아 가며 호흡하는 과정도 있었다. 수중에서 계기판을 수시로 확인하여 산소잔량을 확인하고 여유 있게 부상(浮上)해야 됨에도 초보 다이버가 40여 미터에서 단독 잠수를 하다가 산소탱크가 고갈되어 폐부종으로 사망하는 사고로 절친을 하나 잃었고, 지인들과 카드놀이가 하다가 볶음밥을 시켜 먹다가 급체로 호흡곤란 증세를 느끼고는 옆에 있는 침대에 들어 누웠는데 일행들은 카드게임에 몰입되어 그런 위중한 상태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으나 이미 강을 건너고 말았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는데 나는 가까운 사람들 둘을 잃는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그 당시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하고 미워했는지 모른다. 그들을 증오심에 몇 날을 폭음에 젖어 울부짖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었다. 참으로 애달프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어둑한 어둠이 내릴 즈음 전화기 저편에서 '형님 퇴근시간인데 다찌나 한잔 하입시다'라는 음성이 들려올 것 같다. 이 대목을 적는 순간 내 눈시울에는 굵은 이슬이 맺힌다. 이제 나도 그들을 놓아주려 한다. 영원한 안식을 빈다. 초박초박 대지를 적시는 봄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 양미경 선생님 첨삭본

 

봄비 내리는 날의 단상(斷想)

 

                                                                                                                 김봉은

 

봄비가 창문을 적시고 있는 아침이다. 유튜브에서 비 오는 날에 딱 들어맞는 노래 한 곡을 복사해서 지인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색시비가 내리는 아침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라며 답신을 보내왔다. 비가 새색시처럼 내리고 있다는 단어를 처음 접하지만 예쁘고 정감이 간다. 빗줄기가 세지 않고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소리 없이 내린다는 뜻인가 보다.

햇빛이 쨍쨍한 날보다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감성에 젖기 쉽다. 오늘처럼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베란다로 나가서 창문을 열고 우리 집 앞에 버티고 선 장골산을 바라본다. 중턱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며 내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본다. 이 나이 되도록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이제 얼굴은 떠오르지 않지만 이름만은 뚜렷하게 기억하는 후배들.

그들과 주고받던 대화나 다찌집과 카페 주점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가 활동사진처럼 펼쳐진다. 내가 그들 이름을 기억하고 가끔 떠올려 보듯이 그들도 혹 영혼이라도 있어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긴 줄 안다. 하지만 그들도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들을 짝사랑하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다.

어떤 이들은 이런 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나 짝사랑했던 여인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남성이 많다. 내가 좋아하던 이들이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하고 요단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인 사람도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떠나간 사람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거나 당시에 인공호흡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었더라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지 않나 싶다.

1993년경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스쿠버다이버 동아리 모임이 있었다. 나는 당시 격일제 근무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에 휴무일에는 보트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서 욕지 근해로 갔다. 보트 안에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는 스쿠버다이버를 즐겼다.

스쿠버다이버는 안전사고를 대비해서 짝 다이버(21)가 기본이다. 둘이서 짝을 이뤄 잠수해야 한다. 다이버 강사로부터 기초교육을 받을 당시 만일 수중에서 활동 중 둘 중 하나가 산소가 떨어졌거나 기기고장을 대비해서 수중 10에서 둘이서 마우스 1개로 번갈아 가며 호흡하는 과정도 배웠다. 계기판을 수시로 확인하여 산소 잔량을 확인하고 여유 있게 부상(浮上)해야 한다. 그런데 초보 다이버인 후배가 수심 40여 미터에서 단독 잠수를 하다가 탱크에 산소가 고갈되어 폐부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또 한 후배는 카드놀이 중 볶음밥을 시켜 먹었는데 급체로 사망하고 말았다. 일행들은 카드 게임에 몰입되어 그런 위중한 상태를 몰랐던 것이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 둘을 잃는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몇 날을 폭음하고 울부짖었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참으로 원통했다.

해거름이 내릴 즈음이면 전화로 '형님 퇴근 시간인데 다찌나 한잔 하입시다'라는 음성이 들려올 것만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눈가에 굵은 이슬이 맺힌다. 이제 나는 그들을 놓아주려 한다. 영원한 안식을 빈다. 대지를 적시는 봄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오늘따라 야속한 봄비다.

 

 

 

 

 

 

 

 

 

 

 

 

색시비 :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소리 없이 내리는 비라는 뜻으로, ‘이슬비’를 이르는 말. 

 

 

봄비 내리는 날의 단상(斷想)

 

김봉은

 

봄비가 창문을 적시고 있는 아침이다. 유튜브에서 비 오는 날에 딱 들어맞는 노래 한 곡을 복사해서 지인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색시비가 내리는 아침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라며 답신을 보내왔다. 비가 새색시처럼 내리고 있다는 단어를 처음 접하지만 예쁘고 정감이 간다. 빗줄기가 세지 않고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소리 없이 내린다는 뜻인가 보다.

햇빛이 쨍쨍한 날보다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감성에 젖기 쉽다. 오늘처럼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베란다로 나가서 창문을 열고 우리 집 앞에 버티고 선 장골산을 바라본다. 중턱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며 내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본다. 이 나이 되도록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이제 얼굴은 떠오르지 않지만 이름만은 뚜렷하게 기억하는 후배들.

그들과 주고받던 대화나 다찌집과 카페 주점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가 활동사진처럼 펼쳐진다. 내가 그들 이름을 기억하고 가끔 떠올려 보듯이 그들도 혹 영혼이라도 있어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긴 줄 안다. 하지만 그들도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들을 짝사랑하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다.

어떤 이들은 이런 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나 짝사랑했던 여인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남성이 많다. 내가 좋아하던 이들이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하고 요단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인 사람도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떠나간 사람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아픈 일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거나 당시에 인공호흡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었더라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지 않나 싶다.

1993년경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스쿠버다이버 동아리 모임을 했었다. 나는 당시 격일제 근무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에 휴무일에는 보트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서 욕지 근해로 갔다. 보트 안에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는 스쿠버다이버를 즐겼다.

스쿠버다이버는 안전사고를 대비해서 짝 다이버(21)가 기본이다. 둘이서 짝을 이뤄 잠수해야 한다. 다이버 강사로부터 기초교육을 받을 당시 만일 수중에서 활동 중 둘 중 하나가 산소가 떨어졌거나 기기고장을 대비해서 수중 10에서 둘이서 마우스 1개로 번갈아 가며 호흡하는 과정도 배웠다. 계기판을 수시로 확인하여 산소 잔량을 확인하고 여유 있게 부상(浮上)해야 한다. 그런데 초보 다이버인 후배가 수심 40여 미터에서 단독 잠수를 하다가 탱크에 산소가 고갈되어 폐부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또 한 후배는 카드놀이 중 볶음밥을 시켜 먹었는데 급체로 사망하고 말았다. 일행들은 카드 게임에 몰입되어 그런 위중한 상태를 몰랐던 것이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 둘을 잃는 현장에 같이 있던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몇 날을 폭음하고 울부짖었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해거름이 내릴 즈음이면 전화로 '형님 퇴근 시간인데 다찌나 한잔 하입시다'라는 음성이 들려올 것만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눈가에 굵은 이슬이 맺힌다. 이제 나는 그들을 놓아주려 한다. 영원한 안식을 빈다. 대지를 적시는 봄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오늘따라 야속한 봄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