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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날의 해프닝

버팀목2 2024. 5. 15. 23:46

 

제사 날의 해프닝

 

                                                                                                                김봉은

 

  오늘은 음력 이월 열엿새 날 부모님 기일이다, 원래는 부친 기일이었고, 모친은 동짓달 초엿새였는데 추세에 따라 부친의 기일에 합동으로 모시기로 했다.

 우리 지역에서는 제사상에 오르는 제물은 주로 생선 위주다. 지난 3월 중순에 제물로 사용할 건어를 사들여서 형수에게 전달해 주고는 다음날,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올레길 탐방을 떠났다.

 오늘은 청과점으로 가서 과일을 집사람이 사서 우리 집으로 배달을 보내고는 출근을 했는데, 밤과 대추와 과자류가 빠졌다는 게 아닌가. 나는 마트로 가서 과자류와 명태포, 밤, 대추 그리고 제주(祭酒)로 쓸 경주법주 1병을 사서 큰집에 전달해 주었다.

  저녁 무렵 큰 집으로 가기 전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저녁 8시경 어머니가 퇴근하니 모시고 오라고 할 요량이었는데 통화를 하면서 근무부터 물었다. 마침 휴무라고 해서 잘되었다 싶었는데, 조부모님 기일이면 진작 일러 주어야지 지금 전화해서 이야기하면 어쩌냐고 쉬는 날이라고 약속을 잡아놨다고 한다. 순간 화가 나서 ‘그럼 너 계획대로 하라.’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 내가 일러두어야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이런 실수도 하는구나 싶다.

 예전에는 칼같이 며칠 전에 아들 녀석에게 전화해서 몇 월 며칠이 조부모님 기일이니 근무를 조정해서라도 참석해야 한다고 일렀을 텐데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내 혼자만 참석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안은 밤 10시경에 제사를 시작한다. 원래는 자정 무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객지에서 오는 사람도 있고,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니 편의상 그 시간에 지내기로 한 것이다. 어떤 이웃은 저녁밥 먹을 시간대에 제사를 올리는 집안도 있다고 한다.

 큰집 조카 둘이서 제사상을 차려 놓은 것을 확인해 보니 제사상에 감이 빠져 있었다. 집사람이 장을 보면서 빠뜨린 모양이다. 그래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순간적으로 임기응변으로 밀감도 감이니까 밀감을 감 대신으로 치자고 하고는 넘어갔다. 얼굴에 열이 확 났다. 넘어가긴 했지만 이런 실수를 하다니 망신살이다. 문중 총무 일을 보고 있고 집안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는 내가 이런 실수한다니! 제사상을 둘러본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배달되어온 과일상자 포장지를 뜯어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야 했는데.

 

 예부터 제사상에 올리는 과일로는 조율이시가 기본이다(대추나무 조棗, 밤나무 율栗, 배나무 이梨, 감나무 시枾). 대추나무는 암수가 한 몸이고 꽃 하나에 반드시 열매가 맺히고 나서 꽃이 떨어진다고 한다. 즉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추는 통씨여서 절개를 뜻하고 순수한 혈통과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 대추는 붉은색으로 임금님의 용포를 상징하고 씨가 하나이고 열매보다 씨가 큰 것이 특징이므로 왕을 뜻한다고 한다. 왕이나 성현이 될 후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의미와 죽은 혼백을 왕처럼 귀히 모신다는 자손들의 정성을 담고 있다고 한다.

 밤나무는 땅속에 밤톨이 씨 밤(생밤)인 채로 달려 있다가 밤나무가 자라 밤의 열매가 열리고 난 후에 씨 밤이 썩는다고 한다. 그래서 밤은 자신의 근본을 잊지 말라는 것과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이런 이유로 위패도 밤나무로 쓴다. 밤은 한 송이에 씨알이 세 톨이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뜻하기도 한다고 한다.

 배는 껍질이 누렇기 때문에 황인종을 뜻하고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을 나타내며 흙의 성분이다. 이것은 바로 민족의 긍지를 나타내고 배의 속살이 하얀 것으로 우리 백의민족의 순수함과 밝음을 나타내 재물로 쓰이고, 배는 씨가 6개여서 육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판서를 이미 한다고.

 감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이 천지의 이치인데 감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감의 씨앗을 심으면 감나무가 나지 않고 고욤나무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3~5년쯤 지났을 때 기존의 감나무를 잘라서 이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 그다음 해부터 감이 열린다. 감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이고,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는 생가지를 잘라 칼로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의 예지를 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감나무는 아무리 커도 열매가 한 번도 맺지 않은 나무는 꺾어보면 속에 검은 신이 없고, 감이 열린 나무는 검은 신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데 그만큼 속이 상하였다고 하여 부모를 생각해서 놓는다고 한다. 감은 씨가 8개여서 8 방백(8도 관찰사, 8도 감사)을 뜻하기도 하고 8도 관찰사가 후손에 나오라는 의미라고 전해온다.

 조율이시, 즉 대추, 밤, 배, 감은 상스러움, 희망, 위엄, 벼슬을 나타내는 전통적 과일이다. 부모님 기일을 보내면서 예전에 문중 총무 일을 맡으며 필요할 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메모해 두었던 내용을 복기해 보았다. 반면교사로 삼아서 다음에는 이런 실수가 없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