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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바위 가는 길에 만난 각시붓꽃

버팀목2 2024. 5. 2. 10:54

매바위 가는 길에 만난 각시붓꽃. 

                           김봉은

 

 

 벽방산 정상에서 홍류마을 쪽으로 약 400m 내려가면 매의 형상을 한 돌기둥이 고성만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바위를 일컫어 벽발팔경(碧鉢八景) 중 이경(二景)인 옥지응암(玉池鷹岩)이라고 부른다.

 옥지응암 찾아가는 길에 각시붓꽃 한 무더기가 있었는데 평상시 같았으면 아! 언제 봐도 예쁜 각시붓꽃이 여기 사람 발길도 닫지 않는 곳에 피었네! 하면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했을 것인데 오늘은 눈길도 주지 못하고 그냥 불쑥 지나치고 말았다. 이유인 즉, 산에 대해서는 나를 달인 정도로 알고 있는 지인을 데리고 벽방산 숨은 명소를 보여주겠다고 나섰는데 옥지응암 접근로를 찾지 못해 여긴가 저긴가 하는 통에 꽃이 반가울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솔직히 없었다. 나중에 되돌아갈 수 없을 만치 발걸음을 했을 때 아차! 싶었다. 내가 들어갈 때 눈여겨보았었고 되돌아 나올 때 먼바다를 항해할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댓불 같은 역할을 내게 해주었던 고마운 꽃이었는데 그 고마움을 가벼이 넘기고 지나쳐 왔다는 자괴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길잡이가 되어준 각시붓꽃을 찾아 무심했노라고 인사말이라도 나누고 왔더라면 이렇게 후회스럽지는 않을 것인데 옛 만리암(萬理庵) 절터에서 앉아 벽발팔경중 1 경인 만리창벽을 바라보며 애꿎은 내 심사만 탓하고 말았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파워블로그나 개인적으로 전국 산에서 비경을 찾아서 인증샷을 올리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 중에 벽방산의 옥지응암을 찾아왔다가 접근로를 찾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다가 헛걸음을 하고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는 글을 다수 읽었다. 실제 접근로를 아는 사람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산행지도만으로는 쉬이 찾기 힘든 곳에 접근하는 길이 숨은 듯이 있다. 심지어 한번 답습했던 길인데도 두어 번 알바를 하고서야 접근로를 찾을 수 있었다. 되돌아 나오는 길도 낮은 잡나무 숲으로 인해 아심아심했다. 그때 들어갈 때 보았던 각시붓꽃 무더기를 나올 때도 이 길인가 저길 인가 헷갈리다가 만난 그 꽃 무더기가 내심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오늘 벽방산에 숨어 있는 명소를 지인에게 알려주겠다며 의기양양하게 나섰다가 길을 못 찾고 헤맸다면 얼마나 쪽팔리고, 체면을 구겨겠는가를 떠올려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날 그 자리에서 길 안내자가 되어준 각시붓꽃에게  그 자리에 있어 주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소 별 도움도 안 된다고 여기며 주변 사람을 얕잡아 보고 괄시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어느 날 그 사람이 갑자기 내게 은인처럼 다가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평상시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하라는 말이 생겨난 듯하다.   

 

 

 

※ 벽발팔경(碧鉢八景) : 벽방산의 자락에 경치가 좋은 여덟 곳의 비경.

一景 : 만리창벽(萬利蒼壁) 옛 만리庵터 뒤 병풍처럼 둘러선 천애벼랑.

二景 : 옥지응암(玉池鷹岩) 정상에서 홍류마을 쪽으로 400m 아래 고성만을 바라보는 매의 형상 돌기둥 모습.

三景 : 은봉성석(殷奉聖石) 은봉암 사찰 내 7m 높이의 성석.

四景 : 인암망월(印岩望月) 인암바위 위에 뜬 보름달을 바라보는 즐거움.

五景 : 가섭모종(迦葉募鐘) 가섭암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빠지는 즐거움.

六景 : 의상선대(義湘禪臺) 의상대사가 참선하여 천공을 받았다는 좌선대.

七景 : 계족약수(鷄足藥水) 은봉암 경내에 기력을 솟게 하는 여덟 가지의 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물. 

八景 : 한산무송(寒山舞松) 안정사를 감싸고 있는 소나무들이 겨울철 찬바람에 춤을 추는 듯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