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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를 읽고...

버팀목2 2022. 1. 23. 18:55

토    지

 

□. 작가 소개

    박경리 1926.10.28(음) 생

통영시 명정리 박수영의 장녀
본명 박금이

1945. 진주 고등여학교 17회 졸업
거제 출신 김행도와 결혼
1950. 수도여자 사범대학 가정과 졸업

황해도 연안 여자 중 교사
6.25 전쟁 중 남편과 사별

딸 김영주 1946년생
사위 김지하

1953년 서울에서 신문사, 은행 등에 근무하며 습작
1955년 현대문학 단편 <계산> 김동리 추천
1962년 김약국의 딸들 출간
1969년 9월 대하소설 「토지 1부」 집필 시작 26년 만인 1994년 완성.

 

대하소설  토지


제1부 1897년 한가위 시작
~1908.5 하동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 가

제2부 1911.05 간도 용정촌 대화재,
1917 여름 경술국치
1910 간도 한인사회 삶의 모습 초점

제3부 1919.03.01 3.1 운동~ 1929 원산총파업

제4부 1930~1937 중일전쟁, 남경학살

제5부 1940~45.08.15 광복


48년간 이야기
26년 걸쳐 집필


1994.08.15 집필 26년 만에 [토지] 탈고 전 5부 16권 완간
2008.05.05. 타계

 

□. 등장인물 소개


1. 윤 씨 부인

   하얼빈에서 연해주를 거쳐 집으로 돌아온 길상은 서희를 강가 횟집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구천이 별당아씨를 부정녀로 만들었고, 서희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간 그는 구천이 아니라 김환이라고 했다. 서희의 할머니 윤씨부인이 그를 낳은 어머니라고 했다.

 

  △. 할머니와 할아버지

     1843년 남원 윤익로의 딸로 태어났다. 할머니가 하동 평사리 영천(永川) 최 씨 집안으로 나이 스물이 되기 전에 시집을 왔고, 시집올 때 친정에서 자신의 몫으로 많은 전답을 가지고 왔다. 평사리 최 씨 집안은 서희의 할아버지의 증조부가 {서희의 현조(5대조)} 참판 벼슬을 했기 때문에 최참판댁으로 불렸다.

 

윤씨부인은 결혼 후 첫아들을 낳아서 잃었고, 두 번째로 낳은 아들이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다.

태어나자마자 약골이라 골골거렸고, 첫아들을 잃은 뒤라 온 집안이 그의 건강을 위해 신경을 썼다.

막 돌을 넘긴 때 윤씨부인과 시어머니가 절에서 치수의 수명장수를 비는 불공을 드리고 왔다. 그날 밤 대숲에서 개들이 죽는 소리를 내며 짖었다. 

 

지난밤에 산에서 노루가 내려왔고, 뒤채에서 집안의 하인들이 개가 사냥한 노루를 잡아먹고 있었다. 진주에 나갔다가 돌아온 윤씨 남편은 부인과 모친이 불공을 드린 일을 몰랐고, 안채에서는 남편이 돌아온 사실도 몰랐다. 하인들이 노루를 잡은 일도 모르고 있었다.

하인들이 권하는 노루 고기를 먹은 남편은 그날 밤 급사했고, 스물한 살 나이에 세상을 떴고, 윤씨부인은 청상이 되었다.

 

  △. 할머니의 친정

   조선의 천주교는 1831년 교황청이 독립 교구로 설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파되었고,

흥선대원군은 프랑스 신부를 통해서 프랑스의 힘을 빌려 조선에서 위협적인 러시아 세력을 막아보려고 천주교에 온건한 입장이었다가, 조선의 지배층은 천주교를 서양 침략세력을 끌어들이고 제사를 거부하는 등 기존의 통치질서를 무너뜨리는 이단으로 규정했고,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불안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1866년 9명의 프랑스 신부와 수천 명의 조선인 천주교도가 처형되었고, 이 여파로 윤씨부인의 친정 남원의 윤씨 집안에도 이듬해 일가 몰살의 비극을 맞았고,

친정아버지 윤익로는 반죽음이 되어 판술이 등에 업혀 하동으로 탈출해 왔으나 곡기를 끊어 숨을 거둔다.

 

  △. 그날

    이로부터 10여 년 뒤 30대 중반의 나이에 윤씨 부인은 남편의 명복과 아들의 수명장수를 위해 '천은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그때 천은사에 연곡사 주지 우관스님 동생 김개주가 요양을 와 있었다.

훗날 동학을 이끄는 김개주는 중인 출신의 야심만만한 청년이었다. 그는 망부의 명복을 비는 윤씨부인을 범했다.

 

대노한 형 우관선사에게 "지아비를 잃은 여인을 사모하였기로 어찌 죄가 된다 하시오. 하늘이 육신을 주었거늘, 어찌 육신을 거역하라 하시오."라며 항변했다. 그리고 원한의 눈물을 뿌리며 쫓기듯 산을 떠났다.

 

윤씨 부인은 그때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산에서 목을 매었다.

 

바우 할아범과 그의 처 간난 할멈으로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고,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서 몸져누웠는데 윤씨부인을 진맥한 문 의원이 태맥으로 진단했고,

무당 월선네가 '영신의 힘이 부족하여 원귀들이 떠나지 않으니 절로 가서 가셔야 한다고 시어머니에게 아뢰었다.

 

윤씨부인은 바우 할아범과 간난 할멈과 함께 그해를 절에서 보냈다.

 

이듬해 이월  윤씨부인이 집으로 돌아왔고 그해 동짓달 최치수가 할머니의 친정인 서울의 신부와 결혼했다.

열세 살 신랑과 열네 살의 신부는 사이좋게 십이 년을 보냈다. 하지만 혈육도 보지 못한 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집안에서 재취를 서둘렀고 새로 들어온 신부가 서희의 어머니 별당아씨였다.

 

  △. 장암과 최치수

      최치수는 장암 선생에게서 사사(師事) 했다. 장암은 현 권력구조를 비판하고 저항해 온 학자로 평생을 향리에서 은둔하며 책에 묻혀 지냈다. 그렇다고 민란이나 동학란과 같은 민중 봉기를 긍정하지도 않았다. 백성을 어리석은 존재로 치부했고, 잘못 배운 권력자들을 배부른 돼지라고 했다. 장암의 이런 성향은 돌 무렵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정서적인 단절 속에 성장했던 최치수에게 장암 선생에 대한 믿음은 학문적, 정신적으로 절대적인 것이었다.

 

문 의원이나 우관선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윤씨부인과는 반목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백성을 사랑한 문의원은 장암 선생을 '양반의 폐단이 골수에 사무친 위인'으로 치부했으며 '제아무리 학식이 깊어도 사람을 금수로 보는 편협한 언행이 모범이 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장암과 문의원 간의 생각 차이만큼 치수와 윤씨부인 사이에도 골이 깊어 갔다.

 

1891년 서울의 조준구가 내려와 윤씨부인에게 적지 않은 돈을 변통해 갔고 이듬해 최치수는 김서방을 데리고 서울로 갔다. 조준구는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서방님으로 생각하고 치수를 적당히 구슬려 그 재물로 자신의 출세길에 이용하려 했다. 조준구를 따라 기생방을 드나들다가 갈보 집이나 청인 상대 천기 방까지 데려가 욕보였다.

서울에서 반년 동안 완전히 몸을 망친 것을 문 의원이 살려 냈지만 더 이상 생산은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 동학란

      1894년 동학란이 전라도 고부에서 일어나 전라도 일대를 휩쓸었다.

조선 전 시대에 걸쳐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농민들은 지배 권력과 양반에 대한 불신에 가득 차 있어 동학의 무리가 지나간 곳은 쑥대밭이 되었다. 최참판댁에도 동학당 무리가 들이닥쳤다.

윤씨부인은 일가 몰락을 각오한 채 안방에서 사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리는 행랑에서만 득실거릴 뿐 별당과 사랑, 안채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자정이 넘었을 무렵 기골이 장대한 사십 대의 사내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김개주'이고 '부인의 아들 환이가 헌연 장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끝까지 침묵하는 윤씨부인을 향해 자조의 웃음을 머금고 '도도한 양반의 피에 경의를 표한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날 밤 최치수는 독기를 가득 품고 사랑에 앉아 있었다. 협상이 아니면 상당한 살육과 약탈이 있으리라 각오하고 기다렸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늦은 밤 윤씨부인의 방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치수는 그가 행랑에 진을 친 동학의 우두머리임을 짐작했다. 남자의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날의 풀리지 않는 의문은 윤씨부인이 절에서 돌아와 보였던 행동과 함께 최치수에게는 불쾌하고 둔중한 아픔으로 남았다.

 

최치수의 친구 이동진이가 찾아와 읍내의 피해를 알렸다. 이동진은 김개주를 따라다니는 아들 이야기를 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아들이 똑똑하고 관옥같은 인물이라고 떠도는 소식을 전했다. 치수는 낯빛이 변했다. 치수가 서울로 올라가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은 그 일이 있은 후였다.

 

△. 김환

   동학란이 있었던 이듬해 겨울날 남루한 차림의 한 청년이 최참판 댁을 찾아왔다. 스물한두 살쯤 청년은 김서방에게 최참판 댁의 머슴살이를 부탁했다. 타관 사람은 붙이려 하지 않은 윤씨부인의 성미도 있고, 일손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 윤씨부인에게 말을 전했더니 그 젊은이를 유심히 보다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그 젊은이에게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최참판댁에 머물도록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김가라는 말 이외에 내력이나 부모 형제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주 구천동에서 왔다는 것으로 그를 구천이라고 불렀다.

 

구천이는 삼 년을 최참판댁 머슴으로 지냈다. 어느 날부터 그는 한밤이 되기만 하면 산속을 헤매다 돌아왔다. 수동이만은 사연을 조금 아는 듯 분복대로 살라고 타이르곤 했다. 수동은 구천이와 별당아씨의 상상할 수 없는 관계를 가장 먼저 눈치채고 있었다. 

구천이와 별당아씨의 죄 많은 애정은 귀녀와 삼수를 통해 퍼져나갔고 소문은 윤씨부인의 귀에도 들어갔다.

 

어느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 최치수는 장암 선생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기별을 받고 집을 나섰다.

그날 밤 윤씨부인은 구천이와 별당아씨를 고방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날 밤 구천이와 별당아씨는 종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갑오년 동학란의 비극이 막을 내렸을 때 용케 살아남았던 김환은 추적의 눈을 피해 최참판댁으로 왔던 것이다. 그때 김환은 자신을 버린, 양반의 피가 흐르는 생모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 위해 최참판댁에 발을 디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자신도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도주하게 될 것을 예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치수에게 치욕을 안기고 서희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음으로써 이 집안에 복수를 하기 위함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 사냥

    구천이와 별당아씨가 떠난 다음 해 그들이 지리산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아낙 강청댁이 친정에 다녀오는 길에 구천이가 별당아씨를 등에 업고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똑바로 앞만 바라보고 지나갔다고 했다. 두 사람의 행색은 거지 중의 상거지였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간난 할멈은 자신의 손으로 받은 환이 도련님의 생각에 안타까워 가슴을 졸이다가 윤씨부인에게는 차마 이야기할 수없어 문 의원에게 환이 도련님 소식을 알렸다.

 

바우 할아범과 간난 할멈은 평생 자식도 없이 할머니를 가까이서 모셨다. 그들에게 할머니는 지켜야 할 대상이었고,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존재였다. 윤씨부인은 간난 할멈의 청에 따라 제후답을 내려주었다. 이들은 자식이 없어도 제사상을 받게 되었다.

 

서울에서 가산을 탕진한 조준구는 평사리로 내려와 무위도식하고 있던 중 최치수에게 엽총 사냥을 제안했고, 조준구에게 엽총을 구입할 돈을 주어 서울로 보냈고, 서고에서 화약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지리산을 제집 마당처럼 훤히 꿰뚫고 있는 강포수를 불러들였다.

 

최치수는 강포수와 수동이를 데리고 산으로 떠났다. 연곡사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최치수 일행은 산속에서 구천이와 맞닥뜨렸다. 구천이를 쫓는 강포수를 수동이가 저지하였고, 그 틈에 구천이는 별당아씨를 업고 도망쳤다.

 

△. 바우 할아범과 간난 할멈의 죽음

    자식이 없었으나 윤씨부인으로부터 제후답을 하사 받아 죽어서도 제삿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구천이가 별당아씨가 사라진 날 바우 할아범은 숨을 거두었다. 초상을 치르고 간난 할멈은 봄 한철을 자리에 누웠다 일어났다 하면서 큰 탈없이 지내다가 초여름에는 제법 기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치수가 사냥을 떠나기 전에 할멈이 죽었다.

 

△. 최치수의 죽음

    1898년 그믐날 최참판댁은 온 집안이 분주했다. 시끄러운 집안을 피해 최치수는 초당에서 잠을 잤다. 그날 밤 초당에 불이 났다. 불을 지른 또출네도 무너진 누각과 함께 타 죽었다. 최치수의 사인은 삼끈을 이용한 교살이었다.

 

윤씨부인은 범인이 또출네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미친 여자가 과연 삼끈을 준비했다가 살해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봉순네는 귀녀가 애를 밴 것을 알아차렸다. 귀녀는 뜻하지 않게 또출네가 뛰어들어 죽음 완벽하게 묻힌 뒤 거리낄 것 없이 뱃속의 아이가 자라기만 기다리고 있으면서 윤씨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연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봉순네는 귀녀의 이런 행동들에 주시하고 있었다.

 

윤씨부인은 최치수의 죽음에 대한 의문의 심중을 봉순네에게 드러냈다. 봉순네는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귀녀를 추달해 볼 것'을 권했다.

 

귀녀를 추궁한 결과 아이의 아비는 칠성이고, 김평산이 공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귀녀는 물론 공모관계에 있던 김평산도 최치수가 생산을 하지 못하는 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김평산에게 이 무서운 계획을 흘려준 조준구의 악람함은 영원히 묻히고 말았다.

 

  △. 윤씨부인과 최참판 댁

       1901년 어느 날 윤씨부인은 겨우 아홉 살인 서희를 데리고 나들이를 결정했다. 최참판 댁 소유의 전답을 찾아서 실정을 살피러 나가겠다는 것이다. '너의 땅을 눈여겨 보아 두라' 고 일렀다. 머지않아 최참판 댁의 역사가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 농발

      1902년 온 나라에 수천 명이 호열자라는 괴질로 죽어나갔다. 평사리에는 김서방이 첫 희생자였다. 김서방이 죽자 윤씨부인은 몰래 서희 방으로 와서 장롱을 괴어 놓았던 농발을 빼고 막대기 하나를 받쳐 놓았다. 후일 어려움이 있을 때를 대비해 마련해 주는 거라고 했다. 막대기 속의 금은 훗날 거금 삼천 원에 거래되었고, 그 돈은 용정에서 부(富)를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됐다.

 

  △. 죽음

      김서방이 죽은 뒤 돌이와 봉순네가 동시 발병하여 죽었다. 그다음 희생자는 윤씨부인 이었다. 길상이 읍내에 문 의원을 데리러 갔지만 문 의원도 죽고 없었다. 길상이 혼자 임종을 지켰다. 그때 윤씨부인은 짐작이나 했을까? 김길상이 최서희와 결혼하여 최길상이가 되고 환국과 윤국의 아비가 될 것을...

 

 △. 윤씨부인의 사람들

     친애했던 사람들은 누구? 문 의원, 월선네, 바우 할아범, 간난 할멈, 우관스님, 아들 김환, 김환의 아비

김개주가 전주 감영에서 효수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윤씨부인과 서희

     윤씨부인이 평사리 농민을 대하는 태도에는 연민과 애정이 있었지만 그들은 두려움과 존경으로 대했고,

소작인이나 마름들도 두려워했다. 윤씨부인은 곧 양반이 지배하는 사회가 무너질 것으로 생각했다.

윤씨부인은 서희가 준수한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한 삶을 살기를 꿈꿨다. 하동 이부사댁의 큰아들 이상현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2. 최치수(崔致修)

   호는 석운(昔雲),  최참판 가의 당주(사당을 지키는 주인). 신경질적이고, 잔인하며, 방약무인한 젊은이로 성장. 어린 시절 장암 선생에게서 이부사댁 이동진과 같이 사사(師事)했고, 작인의 아들 용이는 골목 동무

 

'냉랭하기가 섬진강 겨울바람"같은 사람이 된 연유는, 어머니 윤씨부인께서 백일기도를 드리러 갔던 절에서 우관선사의 동생이자 동학 장수인 김개주에게 겁탈당하고, 그로 생겨난 아이를 비밀리에 낳고 돌아온다. 그 이후 윤씨부인은 살아도 사느게 아닌 듯이 지내게 되고,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정경 속에 최치수는 어린 소년 시절을 보낸다.

 

어른이 된 이후 아비 다른 그 동생이 집으로 찾아들었다. 생모를 찾아와, 하인을 자처하고 살아간다. 심지어 아내 별당아씨와 불륜을 저질렀다. 그네들은 '사랑'을 했답니다. 그네들은 어머니 윤씨부인이 도망치게 했답니다.   

조준구가 김평산에게 계획을 흘려주고,
귀녀가 칠성이의 씨를 빌려 최치수의 아이를 임신한 것처럼 속이고, 김평산에게 교살되었다.

 

3. 별당아씨

   가난하지만 엄한 가풍을 가진 서울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서 하동 평사리 시집을 왔는데 그녀의 외모는 매우 아름다웠고 딸인 서희의 외모 역시 어머니를 닮은 것으로 나와 있고, 남편인 최치수는 첫 부인과 사별하고 별당아씨와  두 번째 결혼을 한 것인데 어머니에 대한 깊은 상처로 인해 별당아씨에 대한 아무런 애정이 없다. 차가운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나고 자란 서울의 환경과 너무나 달랐을 평사리 최참판댁에서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하인이자 이부(異父) 시동생인 구천과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의 과정은 소설 속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귀녀가 구천을 꾀어 별당아씨와 만나게 하고 그것을 윤씨부인에게 고해바쳤다고 말하는 삼월의 이야기를 통해 상상해 볼 수밖에...묘향산 북변에 묻혔다.

 

 4. 구천이

    김환은 불륜으로 태어나 비운의 삶을 살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마감하는 인물로 1872년 출생으로 윤씨 부인이 천은사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우관스님의 동생이자 동학 장수 김개주(해월 선사)에게 겁탈을 당하여 낳은 아들이다. 삼 년 전 몹시 추운 겨울날 최참판댁에 괴나리봇짐을 든 남루한 젊은 사내가 찾아왔다. 스물한두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는 차림이 누추하고 허기진 것 같았으나 준수한 용모였고, 알맞은 몸집이 어딘지 슬기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저녁 상을 대접받은 그는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도 베푸는 음식을 생각 깊은 자세로 천천히 들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한참을 묵묵히 앉았던 그는 하룻밤의 잠자리를 청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머슴살이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김서방이 윤씨부인에게 말을 건네 보았는데 한마디로 거절할 줄 알았던 김서방은 그 젊은이를 한번 보자는 분부를 받았다.

 

윤씨부인은 젊은이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아무 소리없이 눈을 감았다. 젊은이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눈만 내리깔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던지 윤씨부인은 한참 만에 "있고 싶으면 있어보라"하고 젊은이의 이력이나 근본 같은 것은 묻지를 않았다. 그가 구천이다.

 

△. 불륜의 애정과 비련(悲戀)의 운명

    윤씨부인-김개주, 별당아씨-구천이(김환), 귀녀-칠성이(김이평. 강포수), 이용-임이네. 공월선, 최서희-이상현, 옥이네-김길상, 이상현-봉순이(기화), 조준구- 향심이. 삼월이, 김거복-공송애. 심금녀, 김두만-쪼깐이(서울네). 월화, 송영광-이양현. 강혜숙, 이홍-염장이

 

《토지》에서 김환이 맡고 있는 역할은 동학 장수인 아버지 김개주로부터 물려받은 민중을 위한 사업이자 나라를 위한 사업으로서 동학운동에 가담하여 따라다니거나, 지리산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일이다.

 

《토지》3부는 몇 개의 공간을 중점적으로 활용하여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상현을 매개로 한 서울, 서희 등이 거처를 정한 진주와 평사리, 길상과 공노인이 남아 있는 간도, 그리고 김환과 강쇠의 활동무대인 지리산이다. 

 

구천이 최치수에게 쫓기다 별당아씨가 지리산에서 죽은 이후 만주로 건너가지만 마적단에 잡혀 그들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고 상해거리를 아편쟁이 거지처럼 헤매기도 하고 연해주에서 권필응도 만나고 이후 국내로 돌아온 김환은 과거 아버지의 심복이었던 운봉 양재곤을 만나 지리산을 중심으로 윤도집, 지삼만 등 동학 잔당을 규합하여 혁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동지들과 노선을 두고 갈등한다.

 

지삼만이 김환을 배신하고 청일교라는 사교를 만들어 교주가 된 후 권력의 힘을 누리다가 김환이 나타나자 그를 밀고하여 체포된 후 진주경찰서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을 매 삶을 마감한다. 

 

5. 최서희

  ▽. 저주받은 아이, 西姬

"오냐 믹일 기이 없어서 자식새끼 거나리고 나는 저승길 갈 기다마는 최가 놈 집구석에 재물이 쌯이고 쌯이도 묵어줄 사램이 없을 긴께, 두고 보아라!"  

 

하루를 돌아도 그 경계를 다 돌 수 없을 만큼 넓은 토지의 주인 최참판 가. 가뭄이 든 어느 해, 최 씨 집안의 여자가 고방에 곡식을 쌓아두고도 나눠주지 않아 자식들이 굶어 죽었으며, 그 과부의 저주와 그 자식들 원귀 때문에 최참판댁에는 자손이 내리 귀하다는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다. 이것을 증명이나 하듯, 사냥해 온 노루고기를 먹고 최치수의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비명횡사하고, 이 일로 몰매를 맞아 죽은 삼수 할아버지의 원혼이 최참판 가의 불안한 그림자가 된다. 여기에 윤씨부인의 비밀과 노비들의 부조리한 욕망, 마을에 연속되는 죽음, 絶孫의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을의 '어둠의 발소리'가 되어 다가온다.

 

▽. 1897년 한가위, 이제 다섯 살 난 서희는 앙증스럽고 고집 세며 할머니를 닮아 기상이 강했다.

▽. 어머니 별당아씨가 사라졌다. 중놈이라고 놀리던 그 구천이도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최 씨 가문의 마지막 사내였던 아버지 최치수는 삼끈에 교살되어 세상에 마지막을 고했다.

어린 서희는 만 이년만에 상복을 벗었다.

 

최치수의 재종형 조준구는 최치수가 살아 있을 때부터 서울과 최참판댁을 몇 번 드나들더니 아예 눌러앉았다. 서울에서 부인 홍 씨와 아들 병수까지 데리고 내려온다.

 

▽. 조준구의 행동에 불안을 느낀 윤씨부인이 겨우 아홉 살이 된 서희를 데리고 최참판댁의 농토를 둘러보러 길을 떠난다. 그때 호열자가 돌기 시작하여 첫 희생자는 최참판댁의 김서방이었다, 이어서 봉순네도 병이 났다. 윤씨부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서희의 장롱 발 대신 금과와 은괴를 괴어 놓았다. 급기야 윤씨부인마저 발병하여 죽는다. 결국 서희는 길상과 김훈장, 월선과 용이 일가, 영팔 일가의 함께 간도로 떠난다.

 

▽. 1908년 칠월 서희 일행은 회령 가도를 지나 용정촌에 도착했다. 윤씨부인이 남긴 금,은을 밑천으로 월선의 삼촌 공 노인의 주선과 길상의 노력으로 삼 년만에 자본을 두배로 늘렸다. 용정촌의 대 화재로 잿더미로 변하자 서희는 길상에게 회령에 있는 재목을 모조리 사라고 주문한다. 윤씨부인이 서희의 남편으로 점찍어 두었던 이 부사댁 이동진의 아들 이상현이 간도행에 동행했지만, 서희가 상현에게 결의 남매를 제의하고 길상을 지아비로 맞겠다고 공표함으로써 상현은 서희 곁을 떠나고, 길상이 연민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던 옥이네를 길상을 앞세워 찾아간다.

 

▽. 서희의 몸종이자 혈육처럼 친한 친구였고 한때 길상과 혼인하기로 약조까지 했던 봉순이가 간도행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서희와 길상이 혼인 후 봉순이가 기생 기화가 되어 혜관을 따라 간도로 와서 만나게 된다. 

 

▽. 윤씨부인은 서희가 준수한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한 삶을 살기를 꿈꿨다. 하동 이부사댁의 큰아들 이상현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서희도 이상현에게 눈길이 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희에게는 할머니와 다른 자신의 길이 있었다. 조준구가 빼앗아 간  최참판댁을 찾아야 했다. 최참판댁은 아들 최환국, 최윤국에 의해 이어져 나가야 한다고 여겼다.

 

▽. 착하기만 한 큰아들 환국이 종의 자식이라는 말을 듣고 순철과 싸움을 벌인다. "순철아 그랬다면 환국이 잘못은 없구나. 네 잘못이야. 왜냐하면 환국이 아버님은 종이 아니었거든. 그리고 나라는 위해 몸 바친 분이었단다."

 

이상현의 딸 이양현이 최서희의 아들 윤국이와 결합하는 일은 서희의 오랜 꿈일지도 모른다. 이상현과 이루지 못한 인연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는 자신의 욕망. 이 욕망은 꿈속, 길상의 말로 되돌아온다. 

"최서희는 이상현과 이루지 못한 연분을 윤국이 양현이 그 아이들을 통하여 이루려 하는 거요.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소! 

 

▽. 간도에서 축재

    1908년 윤씨부인 막대기 속 금 공 노인 주선으로 판매 3천 원, 1909년 회령 가도 무역 콩, 목재 매점, 1910년 청 상부국 토지 매입에 편승 시가지 요지에 오백 평을 평당 육 원으로 사서 그것을 상부국에 십삼 원으로 전매하여 3천5백 원 이득.

 

 

6. 김길상

    1885년 출생, 구례 연곡사에서 자라 11살 때 윤씨부인을 따라 최참판댁으로 왔다. 구천이도 몇달 후 그해 겨울에 최참판댁 머슴살이 시작했다. 1897년 토지 1부 시작되고 구천이에게 글을 배우고 섣달 그믐에 최치수 피살된다.

1902년 호열자로 윤씨부인 사망. 별당아씨 사망(1898.2.16). 1903년 보리 흉년. 1904년 러일 전쟁.  

1905년 을사보호조약(1905.11.07)

 

1908년 간도로 이주

1909년 서희의 축재, 회령 가도 무역(콩과 목재 매점)

1911년 용정 대화재, 12월 마차 전복  결혼

1922년 양현 출생, 이동진 사망

1123년 관동 대지진

1945년 길상 나이 61세

 

△. 임명희가 본 길상

    키는 컸지만 다소 마른 편 투사형보다 명상적.

 

△. 임명빈이 본 길상

    인간의 존엄성이랄까 멈치 못할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더군.

△. 환국이 본 길상

    그 나이에 소년 같은 면모가 남아 있다는 것이 신비롭기도 했다. 그것은 혁명가보다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 길상이 본 길상의 일생

     젊은 날, 상전으로서 어린 서희를 지켰고, 간도까지 그를 수행해 갔으며 타국, 사고무친한 그곳에서 절치부심, 조준구에 대한 복수와 최 씨 가문의 잃은 것의 탈환을 맹세하는 서희를 길상은 도왔다. 회령에서 돌아오는 길, 학성 부근에서 마차가 굴러 서희가 부상을 당하는 일로 인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서희가 뜻을 이루고 귀국하는 날까지 결정적 역할을 했던 길상이. 그러나 그는 가족과 동행을 포기하고 간도에 남아서 그곳 조직에 합류했다. 

 

△. 도솔암의 관음 탱화 제작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전적인 부정 그것이었다. 길상은 자신의 삶의 진실한 의미를 물었던 것이다. 우관이 생존 시 천수관음을 조성하여 도탄에 빠진 이 나라 백성의 원을 걸어라 하고 길상에게 당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수관음 조성은 대역사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관음보살의 탱화를 착안했다. 

 

7. 봉순이

   △. 유년시절 서희의 몸종이었지만 길상이와는 동급이었고, 그를 흠모하고 있었다. 간도행에 앞서 봉순이는 길상이의 마음을 다시 한번 떠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간도에 가믄."

"가믄 별 수 있을라꼬? 나 같은 것."

침묵이 계속된다. 결국 봉순이 쪽에서 말을 건다. 자포자기한 어투로

"거기는 언제꺼정 머리꼬릴 늘이고 있일 참인가?"

"상투를 틀든지 아니믄 부산 나가서 머리를 짤라부리든지 하지 머."

"장가도 안 가고 상투를 틀 기든가?"

"애기씨만 아니라믄 중 될 몸이제."

봉순이는 모랫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결국 간도행을 포기하고 만다. 혜관은 봉순이 길상을 사모하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진주에서 권번 다니믄서 배울 것 다 배우고 또 소리가 명창 될 만하다고 하고...

△. 용정촌에서 해후

    "서방님 오랜간만이오."

조용한 음성, 조용한 몸가짐, 역시 봉순은 기생이었다. 봉순이 끊어내지 못한 미련을 그리움으로 착각하여 혜관을 따라 용정으로 서희와 길상을 찾아가 '봉순으로서' 품었던 그리움의 실체를 '기화로서' 냉정하게 확인하고 더 이상 봉순이 아니 기생 기화의 부평초 같은 신세와 운명을 뼈저리게 자각한다.

△. 진주에서 화류계에 입문한 뒤 서울로 올라와 명창으로 거듭난다. 서울에서 만나 서의돈, 그리고 서희 연모하고 구애했다가 거절당한 상현의 딸 양현이를 낳아 기른다. 

△. 봉순이가 서희의 몸종으로 서희를 돌보며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을 보냈다면, 봉순의 최후를 돌보는 것은 서희이다. 서희는 상현과의 사이에 난 봉순이의 딸 양현을 거두고, 아편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봉순이의 심신을 거두고, 끝내 섬진강 물에 투신한 봉순의 시신을 거둔다.

 

8. 조준구

  △. 최치수의 재종형, 최참판 가의 불행한 사건을 이용 재산 차지하지만 광산에 투자하였다가 몰빵.
간도에서 재기한 서희에게 복수당하여 재산 잃고 부인 홍 씨와도 헤어진다.
마지막 남은 평사리 집을 서희에게 되팔아 전당포와 고리대금업을 하여 사오만 원의 재산 모으나 홍 씨가 죽은 후 미식 미복을 탐내며 함께 사는 파주댁에게 욕설, 매질을 퍼붓고 말년에 아들 병수를 찾아가 몸을 의탁하나 고통스럽게 죽는다.

  △. 욕망대로 살다가 요지경이 된 인생 

      최치수의 재종형 몰락 양반 후예, 간교하고 음험하며 교만하다. 먼 친척 최참판 가에 유의하면서 김평산에게 최치수의 살해 넌지시 암시하여 간접 관여하며 윤씨부인 죽자 재산 차지.

  △. 부인 홍 씨도 먼저 갔고, 마지막엔 최참판댁을 서희에게 단돈 5천 원에 넘기고 중풍이 걸려 통영에 소목장으로 살고 있는 장애인 아들 병수에게 의탁한다. 그래도 병수가 아들 남현이가 할아버지 악행을 잊어주는 것이 효도라며 산소를 돌보지 않겠다며 화장을 주장하지만 병수는 "목련존자는 악모를 천도하기 위하여 지옥에까지 찾아가셨다" "애비 뜻에 따라랏" "그 뜻만은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 너 이놈! 아비를 능멸하는 거냐!" " 아닙니다 아버님! 아버님 서러운 세월을 어찌 저더러 잊으라 하십니까!" 결국 남현은 지고 말았다. 미리 마련해 둔 장지에 조준구는 묻힌 것이다. 끝내 사천에서 교사로 있는 종현과 출가한 딸 내외는 나타나지 않았다. 

  

9. 조병수

  △.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이 참 오묘합니다. 제가 악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받은 고통과 불구인 아버지를 둔 제 아들 남현이가 받은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클까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저도 제 아들에게는 떨쳐 낼 수 없는 인생의 화두였겠지요. 인간의 인연이라는 것이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저도 제 아들에게 버거운  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 다 상대적인 것이고 내 편에서 본 것과 저쪽 편에서 보이는 모양새가 다르겠지요. 그래서 내 마음만 옳다 말하기 조심스럽고 너만 그르다 말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 "옛날에 내가 살던 동네에 목수 한 사람이 있었다. 못 생긴 곰보였지. 처자식도 없는 혈혈단신. 몇 번밖에 본 일은 없었지만 얘기는 많이 들었어. 나는 그 사람이 부러웠어. 연장 망태 짊어지고 발 닿는 대로 떠다니는 그의 팔자가 부러웠네. 자유인이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이."

 

10. 이상현

    △. 일제 식민 치하의 나약하고 무기력한 지식인의 전형이다. 윤씨부인과 김개주가 토지의 1세대에 속한다면 상현은 최치수, 이동진에 이어 3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다. 1891년생인 상현은  서희보다 두 살 위이고, 길상보다는 여섯 살 아래이다. 작품 속에 상현은 54세까지의 삶이 그려진다. 

 

△. 토지에서 가장 많은 이동 거리를 가진 인물이다. 평사리→간도→연추→경성 →평사리→진주→경성→일본→경성→전주→경성→상해→하얼빈→연추

△. 서희가 간도로 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후 이 부사댁의 상현은 동행할 결심을 굳혔다. 염 씨는 집 나간 지 십 년. 그동안 한번 다녀갔을 뿐 소식조차 확실치 않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아들 또한 그러한 길로 가는가 싶어 매우 근심하였다. 상현이 말하는 간도행의 이유는 부친 이동진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상현의 간도행은 아버지의 안부보다는 서희와의 동행으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만약 서희의 간도행이 기획되지 않았다면  상현의 간도행은 없었다. 

△. 봉순이의 흐느끼는 울음소리에 성욕을 느낀 상현은 봉순의 침소로 들어간다. 상현은 봉순에게서 "여태껏 어느 여자에게서도 체험한 일이 없는 환희"를 느낀다. 상현이 봉순이를 탐하고, 봉순이는 그런 상현을 받아들인다. 길상을 사랑했으나 결국 이루지 못한 봉순이나, 서희를 사랑했으나 우물쭈물 퇴짜를 맞은 상현은 어쩌면 동병상련을 느꼈는지 모른다. 상현의 "바보같이, 바보'라는 "헛소리"는 봉순이를 향한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다. 이제 기화는 상현을 '서방님'이라고 호칭한다.

 

"서방님?"

"음."

"다음에 쓰는 소설에는 신여성이 나오겠지요?"

"뭐라구?"

기화를 뻔히 쳐다보는데 상현의 눈빛이 흔들린다. 얼마 전에 상현이 발표한 《헐벗은 나무 밑에서》, 소설은 타락하여 친구와 부모한테까지 버림받은 지식청년과, 소꿉동무였던 기생과의 사랑을 쓴 것인데 그 기생은 기화가 모델이다. 기화는 양품점에서 만난 명희를 두고 상현의 마음을 타진한 것이다.

△. 상현은 기화에게서 딸 양현을 낳고, 서의돈을 따라 만주로 건너간다. 그는 송장환, 이홍의 배려와 심수앵, 윤광오 부부의 도움을 받아 하얼빈에 정착하여 항일조직에서 내는 간행물이나 지하신문을 내는 데 일조한다. 하지만 그 일조차 "열정적이었다기 보다 이성적이며 기계적"이었다. 결국 그는 자기혐오와 자책감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로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

  

11. 송관수

    △. 아비는 보부상으로 대다수 보부상이 동학란 때 관군으로 활동하였으나 관수의 아비는 동학당으로 어디서 죽었을 것이라고만 추측하고, 

가을걷이를 앞둔 그 어느 날 평사리 아래, 윗마을에서 낫, 도끼, 쇠스랑, 대창 등 각기 연장을 든 장정들이 최참판댁 습격을 위해 모였을 때 거기 합류하였다. 최참판댁에서 조준구의 행방을 찾았으나 양다리를 걸친 삼수의 배신으로 결국 찾지 못하고 삼수는 결국 조준구와 일본 헌병에게 죽임을 당하고 김훈장, 길상들과 산으로 들어가 의병 항쟁에 참여한다. 정신적 지주였던 윤보의 죽음은 의병 조직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고, 양반에 대한 증오 때문에 김훈장을 싫어해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길상과도 갈라져 화적 떼를 따라다니다가 진주로 내려왔고,

진주에 사는 백정 집으로 숨어들었다가 백정의 딸과 결혼하여 백정의 가족으로 변신한다.

오랜 유랑생활과 의병활동 그리고 백정의 사위로 살아가면서 사랑을 핵심 교리로 내세우는 기독교에서마저 백정과 그 가족들을 교회에 못 다니게 하거나 따돌리고 멀리하는 것을 보고  천대받은 것에 대한 자긍책으로 진주에서 형평운동에 가담하고,

△. 김평산의 작은 아들이고 거복이가 김두수로 변신하여 일본 밀정으로 간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점에 착안하여 한복이를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하여 군자금을 전달케 한다.

△. 마누라 영선네, 아들 영광이가 진주에서 학교 다니면서 강혜숙과 교제를 하는데 그녀의 부모가 백정의 자식과 교제할 수 없다며 물의를 일으켜 영광이는 퇴학을 당하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강혜숙이 따라가 동거가 시작되고 거기서 영광이가 야쿠자와 싸우다가 절름발이가 되고 나중에 만주에서 유랑극단 트럼펫 연주자로 변신하고, 관수는 만주로 가면서 딸 영선이를 지리산 강쇠의 아들 휘와 결혼식을 올린다.

 

△. 끝내 만주에서 영광이를 만나지 못한 채 하얼빈에서 콜레라에 감염되어 숨을 거두고 홍이 앞으로 유서를 남긴다.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가 갔다고 할 기고 특히 영광이가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장돌뱅이로 장바닥을 돌믄서 투전판이나 기웃거릴 놈이, 하늘 밑의 헐헐단신 계집이나 어디 하나 얻어걸리겄나. 그렇다믄 많이 출세한 거 아니가. 세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 넘한테 큰 실수 안 하고 이렇게 가는 것도 다행 아니겄나. 이것은 진정이다. 여한이 없다. 자식들은 제 갈길을 갈 것이고 다만 내 모친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자식된 도리, 시신이 어는 산천에 묻혔는가 모리고 가는 것이 나한테 남은 응어리다. 고향산천이 보고 싶고 작별하고 싶은 얼굴도 많다마는 어차피 사람은 혼자 가는 거 아니겄나." 

 

△. 장돌뱅이와 과부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부모 잃고 의병과 화적패를 거쳐 또한 백정의 사위로서 신산삶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윤보, 용이, 길상, 석이, 홍이 같은 좋은 선배, 친구, 후배를 만나 이로운 길로 들어섰고 마지막까지 조국과 동포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뜻있고 면목 서는 일을 하다가 죽었으니 여한이 없다

 

△. 일본 순사의 뺨을 인분 묻은 손으로 냅다 후려친 것, 한복으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물지게꾼 정석을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 것, 조준구를 혼내 준 것, 친일파 김두만의 금고를 털어 독립군 군자금으로 보낸 것 등은 토지 등장인물 중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멋진 면모였다.

 

  

12. 이용

    △. 조상 때부터 평사리 최참판댁 충직한 작인이고 상민. 월선, 강청댁, 살인자(칠성) 아낙 임이네 세 여자를 데리고 살았고, 마을 여자들이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남자였다. 임이네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자 연민과 동정으로 돌보아 주다가 임신시키고, 강청댁이 죽고 월선과 재회하나 아들 홍이를 낳아준 임이네에 대한 도리를 지키기 위해 두 여자를 거느린다. 평사리 대흉년 때 최참판 가 습격에 합류, 이 일로 산으로 피신했다가 서희 일행과 간도행. 

  △. 월선은 그녀의 무당 어미 월선네가 어떤 떠돌이 바람잡이와 눈이 맞아 생겨난 애였다. 월선네는 최참판 집의 신임이 두터워 굿 일로 참판 집에 자주 드나들고 그런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던 월선은 어린 시절부터 용이를 오라비같이 따라다녔다. 용이 부모는 둘이 혼인을 반대했다. 용이네는 최참판 댁 작인이기는 하지만 하나 엄연한 상민 신분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월선의 애비라는 자는 알 수도 없는  떠돌이고 어미는 무당이다. 

 

" 나 시집간다. 신랑은 봇짐장수라 카더라. 나보다 스무 살이나 더 묵고 다리가 벵신이고. 어메는 젊은 남자에게 가서  무당의 딸이라고 천대받는 것보다 늙고 벵신이믄 니를 버리지는 않을 기다 하믄서...아무 데 가믄 어떻노.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어매는 한탄하지만."

 

그러나 눈에는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용이 눈에 역시 울컥 뜨거운 것이 솟았지만. "어디든 가서 잘 살아라"는 당부를 뇌일 수밖에 없었다.

 

△. 용이는 부모가 정해준 함양 땅 강청의 어린 산골 색시와 혼인하였다.

    월선이가 시집간 지 한 십여 년 만에 '가랑잎같이 마을 굴러 들어왔다' 그녀의 어미 월선네도 죽어버려 잡초가 우거진 빈집에 보따리 하나 겨드랑이 끼고 울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최참판 댁 윤씨부인이 얼마간의 돈을 주어 읍내 삼거리에 주막을 차렸다. 그 뒤 장날이면 오가며 월선의 얼굴이나 바라보던 중 오광대가 열리던 날 그녀와 살을 섞었다. 

 

'예로 만난 가숙을 박대하믄 못쓰네라" 강청댁에게 장가들어 정을 못 붙였을 때 모친이 타이른 말이었다.

강청댁의 강짜로 염치 바른 월선은 상처를 입고 또다시 고향을 등지고 떠난다.

 

용이 월선이가 종적을 감춘  후 허공에 뜬 연처럼 이태의 세월을 보냈다. 그 와중에 용이는 절망적 욕정으로 임이네를 범하게 된다. 용이의 상전 최치수의 살인에 공모한 죄로 처형당한 칠성이 아내 임이네가 남편의 일로 개처럼 마을서 쫓겨났으나, 굶주림에 시달리며 아이 셋을 앞세우고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용이는 보리타작이 끝났을 때 어느 날 밤 아내 몰래, 굶주리고 있는 그녀에게 겉보리 한 말을 갖다 주고, 어떤 때는 감자도 갖다 주기도 했다. 남편이 살아 있을 적 얼굴 반반한 그녀가 노골적으로 용이를 유혹했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웠던가! 그러나 그렇게 당돌했던 임이네의 처지가 그때는 너무도 안되었기에...윤보형님 말처럼 정이 많은 게 탈인가?

 

한편으로 숙부 뻘 되는 이를 쫓아 간도로 가 국밥 장사를 하여 돈을 얼마 간에 손에 쥔 월선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용이의 초취인 강청댁은 호열자 통에 죽었지만 자식 없던 용이는 임이네로부터 아들 홍이를 얻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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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네가 아이를 낳은 것도 니 탓이다! 와 한마디 원망도 없노! 천치가! 소나무 구신가! 무당 딸이다 그 말이가! 니, 니 또 도망가믄 그때는 직이부리 기니 명념하겄나(···) 내가 잘못했다. 안 그럴라고 하믄서도, 백 가지 중 한 가지도 못하는 내 처지가······."

이후 간도로 이주하고 나서 용이네 식구는 월선이 하는 국밥집에 매달려 산다.

용이는 한 개인으로 볼 때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정인(情人)이다. 첫사랑의 여인, 부모가 정해준 여인, 자신의 아들을 낳아준 여인 그 어느 누구도 내칠 수가 없었다.

△용이의 행적

1867년 하동 악양면 평사리 출생.

1874년(8세) 누이 서분이 천연두로 죽다.

1887년(21세) 정인 월선이 멀리 시집을 갔다.

1888년(22세) 함양 땅 산골처녀 강청댁과 결혼.

1896년(30세) 시집갔던 월선이가 평사리로 돌아와 재회.

1902년(36세) 호열자로 강청댁 죽었다. 임이네로부터 아들 홍이 얻었다. 월선이가 간도에서 평사리로 돌아왔다.

1907년((41세) 윤보 목수를 쫓아 최참판 집 습격하고 의병으로 산에 들어갔다.

1908년(42세) 평사리 사람들과 조선을 떠나 간도 용정에서 살게 되었다.

1912년(46세) 용정을 떠나 통포슬 근처 문루구 마을서 농사짓고, 벌목일을 하다. 전라도 사내 주갑이를 만났다.

1918년(52세) 월선은 간도서 죽고 평사리 사람들과 고향으로 돌아왔다.

1919년(53세) 죽음에 이르게 되는 십 년간의 병고가 시작되었다.

1922년(56세) 한가위 오광대 놀음 때 아들 홍이 일본 경찰에 잡혀갔다.

1926년(60세) 홍이의 어미 임이네 죽었다.

1926년(63세) 평사리에서 죽었다.    

 

 

13. 공월선
    △. 월선은 그녀의 무당 어미 월선네가 어떤 떠돌이 바람잡이와 눈이 맞아 생겨난 애였다.

아비도 모르는 무당 월선네의 딸 공월선! 자랄 때 최참판댁 굿을 하는 어미를 따라 최참판댁을 드나들며 이용과 친구처럼 지내며 정이 들었으나, 혼인할 나이가 되자 이용의 부모가 적극적으로 상민의 자식이 무당 딸과 혼인을 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통에 어미처럼 살지 말라고 나이 많고 절름발이 남자에게 혼사를 시키는데 그 넘도 월선네 뜻과 다르게 월선이를 홀대하여 결혼 10여 년 만에 친정으로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는데 이미 월선네는 세상을 떠난 지 두 해였었고 잡초가 우거진 빈집만 뎅그라이 남아 있다. 봉순네와 간난 할멈의 도움으로 윤씨부인에게 돈을 얻어 읍내 삼거리에 주막을 차린다. 

 

장날마다 주막에 들러 술 한잔이라도 걸치고 가는 것이 반가운 일인데 법으로 만난 조강지처 강청댁이 있어서 어릴때처럼 바라만 볼뿐이다. "오광대 판이 벌어졌던 밤"을 기점으로 합방을 하면서 관계가 전환된다. 

 

질투가 심한 조강지처 강청댁의 육체적 폭력, 용이의 아들을 낳은 임이네의 정신적 폭력에 속수무책 월선이는 당하고만 있었다. 

절망의 순간에 월선의 손을 잡아 준 것은 강원도 삼장수 삼촌 공 노인이다. 공 노인을 따라 간도로 간다.

 

간도로 이주한 용이네 식구는 월선이 하는 국밥집에 매달려 산다. 우직하고 보수적인 농민 습성이 뼛속까지 스며있는 남도의 사내, 안으로 수줍어하고 섬세하지만 오기가 또한 대단했던 용이는 월선에게 빌붙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용이는 아들 홍이를 월선에게 맡긴 후 권속을 끌고 영팔네 퉁포슬로 가서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벌목일을 하러 다닌다.

그러나 가엾은 월선이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만 간도에서 숨을 그 둔다.

 

"생전에 외로웠던 월선이었으나 죽어 누워 있는 그의 빈소는 쓸쓸하지 않았다." 삼촌인 공 노인이 거간 업을 하여 발이 넓어 찾아오는 사람이 많기도 했으나 서희와 길상, 영팔이 내외, 박 서방, 홍 서방 등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용이와 홍이가 상주 노릇을 한 것이 가장 고마운 일이다.  

 

△. 월선이는 서럽게 나서 서럽게 살았지만 서럽게 죽지는 않았으며 서러운 사람으로 기억에 남지 않았다.


14. 임이네

     △.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그만 처녀성을 잃어버려, 그 소문이 이웃 마을까지 퍼지는 바람에 서둘러 혼사를 하여 가진 게 쥐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잘생기지도 않았고, 손가락 하나가 없는 병신 사내 칠성이었다. 칠성이는 "등 빠진 적삼에 보리죽 먹은 농사꾼은 되지 않겠다고 20세 전후 고향을 등지고" 나가 "등짐 장사할 무렵" 재산 좀 있는 수절하는 과부를 겁탈하려다가 오른쪽 가운뎃 손가락을 물어 뜯겨 둘째 마디에서 잘려진 손을 가졌다. 원래 가진 것이 없었기에 부부는 안팎이 다 똑같다는 말을 들어가면서 열심히 살았다.   

    △. 살인죄인 칠성이 아내

        없는 살림에 셋째 아이까지 낳고는 칠성이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김평산이 부르기만 하면 일을 팽개치고 쫓아 나갔다. 

    △. 1899년 정월 초하루 해가 뜰 무렵 최참판 댁에 화재가 나고 그 바람에 사랑 양반이 돌아가셨는데 처음에는 미친 또출네가 불을 내어 그런 일이 일어난 줄 알았는데 칠성이가 최참판 댁에 끌려가고, 이후 최참판 댁 나으리가 돌아가신 것은 평산과 귀녀 그리고 칠성이가 함께 계획한 살인이었다고 한다.

    △. 읍내 관아로 죄인들이 끌려간 날 밤 비가 내렸고, 임이네는 정신이 나간 채로 앉아 밤을 새웠고, 새벽에 접어들면서 비가 멎고 날이 샜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데 김평산의 아내 함안댁이 목을 매 죽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서 목을 매달아 죽으라고 강요할 것만 같았다. 이튿날 밤 야간 도주했다.

평사리를 떠나 만 2년 동안 생각지도 못한 험한 일을 다 겪고는 이른 봄날 평사리로 돌아온 그날 마을길에서 처음 만난 것은 용이였다. 용이의 주선으로 두만네의 도움으로 품팔이를 해서 하루하루 살아나갔다.

 

   △. 보리타작이 끝났을 때 어느 날 밤 용이가 겉보리 한 말을 갖다 주었고 강청댁이 알면 동네에서 쫓겨 날지도 몰라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용이는 남의 속도 모르고 감자를 들고 또 찾아왔다.

1901년 평사리로 돌아온 그해 극심한 흉년이 들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임이네 탓으로 여기며 눈총과 타박을 주었다. 그는 이후로도 종종 식량을 챙겨주었고, 임이네는 용이를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다 임신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강청댁과 마을 아낙들이 합세하여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임이네로 쳐들어와서 몰매를 맞았다. 임이가 달려가서 용이와 영팔이를 데리고 와서 겨우 풀려났고, 그때 용이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렸다. 배가 눈에 띄게 불러감에 따라 아낙들의 입은 잠잠해져 갔다. 그런데 아웅다웅하던 강청댁이 앓기 시작하는데 산기가 있어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 집에 가서 죽을 끓여주었는데 호열자로 결국 죽었다. 

가을에 홍이를 출산했고, 그의 아내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했다. 저고리에서부터 버선까지 용이의 입성을 꼼꼼하게 챙기고는 했는데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마을 장정들이 최참판댁을 습격하여 친일파 조준구를 잡는데 실패하고 산으로 숨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일로 최참판댁 전답을 얻어 쓰던 논밭을 잃고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가을걷이가 끝났을 무렵 마을에는 쫓겨난 사람, 도망간 사람들로 하여금 빈집이 많아졌는데 임이네도 결국 읍내 월선집으로 들어가 끔찍한 동거가 시작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밤 이상한 인기척이 느껴졌고 분명 용이의 목소리였다.

 

   △. 월선이가 그 일이 있은 후 집을 팔아버렸다. 며칠 후 용이가 나타나서 동행을 청했고 임이와 홍이를 데리고 오월에도 찬서리가 내리는 간도로 갔고, 용정촌에서 월선이 주인 노릇을 하는 국밥집에서 얹혀살다가 청인들의 땅 문구루로 가서 농사를 짓고 살게 되었고. 다시는 평사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간도에서 복막염을 수술을 하고 죽었다.

 

산으로 올라온 홍이는 할아버지 묘부터 벌초를 하고 제수를 차린 뒤 절을 했다. 다음은 할머니 무덤의 풀을 깎고 제수를 차린 뒤 절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 묘에 제수를 차린 뒤 홍이는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엎드려 있었다.

   '아버지 지는 만주로 갑니다. 왜 가는지 아시지요. 다음부터는 상근이 상조가 할아버지 뵈러 올 겁니다.' 맨 마지막에 벌초를 하고 제수를 차리고 홍이 절을 한 무덤은 강청댁, 보지도 않았던 큰어머니의 무덤이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용정촌에 있는 월선의 무덤을 홍이는 생각했고, 무덤도 없이, 화장한 생모 임이네에게 홍이는 강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15. 강포수

   "강포수."

   "와."

   "추석에는 성묘 가야 제요."

   "성묘 갈 조상이 있어야제."

   "조상 없는 자손이 어디 있소. 우리네들이사 남의 집에 매인 몸이지마는."

   "누가 떨어티리도 떨어티리기야 했겄지마는 철나고 보니께 이 빠진 주막집 할망구가 날 줏어왔더마. 그러니 조상을 우찌 알겄노. 내 강가라는 성도 알고 모믄 그 할망구 성이라."

   "기른 이도 부모 아니요."

   "말 마라. 그 할망구가 좀 더 살았이믄 내가 죽었일 기다."

   "몹씨 했던가 배."

  

    지리산 일대 명포수. 최치수가 구천을 쫒으러 산에 갈 때 수동과 동행한다 오발사고로 수동이 다친다.
이 일로 최참판 가에 머물면서 귀녀를 짝사랑하게 되고, 최참판가에 머무는 동안 남몰래 귀녀가 술이랑 안주를 챙겨 주고 몸도 한번 허락한다. 귀녀가 옥에 갇힌 후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바치다가 옥중에서 출생한 강두메를 거둠(칠성이 씨). 

두메가 15살이었던 그해 봄 강포수는 두메를 학교에 넣고선 한 번도 나타나지 않다가 어느 날 거금 삼백 원을 들고 용정촌에 나타나 송장환에게 내밀며 두메를 부탁하고선 홀연히 떠난다. 여름방학 때 두메가 아비 있는 곳을 찾아갔으나 계속된 장마로 하천이 범람하여 못 가고 장마가 끝나고 아비 있는 곳을 찾았으나 산막 근처 화전민들이 장사까지 치렀다는 소식만을 들을 뿐이었다. 사인은 오발 사라 했는데 두메는 미심쩍었다. 봄에 거금 삼백 원을 들고 상의 학교 교장 송장환을 만난 자리에서 두메를 학자로 만드는데 써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송장환은 그 돈을 공 노인에게 맡기고 용정을 떠났고 공 노인은 그 돈을 활용하여 이자만으로 두메 학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두메가 늘 수석을 차지해서 따로 학자금이 들어가지 않았고 하숙비와 잡비 정도는 이자만으로 충분했다.

비극적 사랑의 열매인 두메는 중국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길상의 소개로 만난 옥이와 가정을 이루고 자식까지 낳았으나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삶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16. 귀녀

    최참판댁 계집종. 계집종의 욕심과 허망의 결과가 평산과 칠성이의 가정을 파괴하고 최씨가를 결딴낸다. 함안댁은 살구나무에 목을 매고, 임이네는 정처 없는 유랑을 하게 되고, 남겨진 서희 일행을 간도로 유배하게 만든다. 토지라는 거대 서사의 출발은 이렇듯 아무런 힘도 없는 계집종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성으로 타고나는 기라. 서방질하는 년 따로 있고 도둑직하는 놈 따로 있제."

 

별당아씨가 사라지자 최치수의 사랑을 얻어 아이를 낳음으로써 면천하려 했으나 거절당하고 김평산, 칠성과 모의 보복의지, 귀녀의 임신 사실과 음모를 눈치챈 최치수가 강포수와 결혼시키려 하자 김평산으로 하여금 최치수를 교살하게 한다. 결국 윤씨부인에게 모든 사실 발각되고 실토하고 옥중에서 강포수의 헌신적인 옥바리지에 감동 죄를 뉘우치고 옥중에서 강두메를 낳고 세상 원망하지 않고 죽는다.

 

   "강포수. 내가 잘못했소."

   "알았이믄 됐다."

   "내 그간 행패를 부리고 한 거는 후회 스랍 아서 그, 그랬소. 포전 쪼고 당신하고 살 것을 , 강포수 아,  아낙이 되어 자식 낳고 살 것을, 으으흐흐······."

 

주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겠다던 욕망도 내려놓고 강포수의 사랑도 내려놓고 홀로 갔다. 아이를 남겨둔 채로 그녀가 떠나고 강포수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다. 그러고 나서 강포수는 평사리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강포수의 바람대로 귀녀의 아들 강두메는 강포수의 아들로 자란다. 강포수는 상의 학교에 돈을 기탁하여 姜杜梅의 앞날을 부탁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허망을 꿈으로 품은 계집종의 곁으로 간 것이다. 두매의 어머니가 그 계집종이라는 것을 비밀에 묻은 채로.  

 

17. 김두수

     김두수의 아비 김평산은 조준구의 은밀한 사주를 받아 최치수 살해를 주도했다가 발각되어 사형당한다. 아버지의 용모와 성정을 빼닮은 김두수는 어려서부터 손버릇이 좋지 않았다. 함안댁의 자살 이후 마을 사람들의 증오와 멸시로 평사리를 떠난다.

일본의 밀정 노릇을 하며 수많은 독립지사들을 잡아넣고 사리사욕을 위해 살인과 인신매매를 일삼았던 김두수.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지만 자신은 원했던 삶을 살았노라고 자위한다.

그의 동생 한복이는 평사리 사람들로부터 억울하게 멸시를 받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양심을 지켰고 마침내 세상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형님이 서울 한번 다녀가라고 벌써 세 번이나 편지가 왔는데..."

하고는 한복은 무겁게 입을 떼었다.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으나 영호는 지난 이른 봄이었는지, 김두수가 재산을 정리하여 서울로 왔다는 얘기를 잠시 들었다.

"큰아버지가 오시면 안 됩니까?"

영호도 기분이 착잡했던 것이다.

"안 오실 거다. 죽어 송장이 되어도 고향에는 안 간다. 늘 그런 말을 했다."

" 일본이 손을 드는 날이면."

"그야 온존치 못하겠지요."

"온존치 못할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무슨 죄를 지었건 하나밖에 없는 형이 당할 고초를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당연히 받아 마땅한 벌이겠으나 내 마음이 어찌 편하겠냐."

 

"형은 조선사람 아닌 것 같소."

"내가 어째서 조선사람이야! 나는 벌써 옛날 옛적에 조선사람은 사양했다. 내가 이놈의 땅에서 받은 게 뭐야? 천대와 학대, 배고픔뿐이었다. 그 서러운 세월을 내가 잊어? 못 잊는다! 내 마음속에는 저주와 미움밖에 없어! 너는 어릴 적 일을 잊었나? 병신 같은 놈아! 너는  다 잊었다 그 말가!"

 

송인숙 강탈 정식 혼인, 결혼 불행
한복에게 부동산 맡기다

서울에서 한복이와 재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김두수는 완전히 사라진다. 

 

 

18. 유인실과 오가타, 쇼지

     유인실이 오가타의 아들을 낳아 일본에서 조찬하 부부에게 맡긴다. 쇼지는 아버지 조찬하, 엄마 노리코, 누나 후미 사이에서 자란다. 훗날 찬하가 쇼지를 데리고 인실을 찾아가 관계를 밝혀준다

 

19. 주갑이

     "無慾의 자유인" 

공 노인을 통해 기화의 죽음을 듣고 혜관과 함께 길을 가던 주갑은 혜란강가에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학처럼 춤을 춘다.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것, 그것이 주갑이 슬픔을 털어버리는 방식이다.

 

해야만 했던 일 끝나면

춤을 배워볼까

하얀 버선발 세우고

학이 날개 펴듯

두 팔 허공에 띄우며

나도

예쁘게 춤을 출 수 있을까

 

주변 가지런히 챙겨 놓고

노래라도 배워봤으면

접은 부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나도 신명 내며

노래할 수 있을까

 

학과 같이 춤을 추고

소쩍새같이,

아니 아니 그냥

신명내어 노래 부르다

죽었으면 참 좋겠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 자유는 바로 '무욕'에서 오는 것이다

 

20. 심금녀

     '푸른 다브잔스를 입은 여인'

상이 학교 교사였던 윤이병이 청진 예배당에서 알게 된 여자, 심금녀는 '상민이지만 조촐하게 사는 딸'로 한때는 윤이병과의 결혼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투번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주정뱅이가 되어 그녀를 술집에 판 것으로 시작으로 삶의 행로가 꼬이기 시작한다. 한 사내에 의해 몸값을 치르고 감금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사내가 김두수, 김평산의 큰아들 김거복이었다. 윤이병, 김두수, 장인걸이 심금녀의 남자들이다. 김두수의 그녀에 대한 집착으로 금녀가 죽음을 선택한다. 


21. 간난할매(김서방댁)
     바우 할아범 처. 윤씨부인 몸종. 최참판 가에서 일생을 보낸다
김환의 정체 알고 있다.

22. 강청댁
     이용의 본처. 자식 없고 칠성이 사형당하고 아내 임이네가 이용의 아이를 가지자 기죽어 지내다가 호열자로 사망.

23. 김개주
     중인 출신 우관스님 동생, 연곡사에 휴양차 와 있는 동안 불공드리려 온 윤씨부인 겁탈, 김환을 얻는다
동학혁명 한창 무렵 무리를 이끌고 최참판 가에 와서 윤씨부인에게 은밀히 김환의 성장소식과 환이에게 생모의 존재를 알려 주고 떠난다. 전주감영에서 효수.

24. 김판술
     최참판가 마름

25. 김영팔
    평사리 농민 이용과 절친, 평사리에 대흉년이 들어 어려워지자 윤보, 용이 등과 최참판 가 습격하고 입산, 의병활동.

26. 김이평(두만 아비)
     최참판 댁 노비 출신 면천한 작인, 최참판 가와 주종관계 유대, 최참판 가 습격할 때 참여하지 않고 도피
둘째 아들 영만을 간난 할멈 양자로 보내 논 다섯 마지 얻지만 나중에 조준구에게 빼앗긴다

27. 김평산
    개다리(무반) 출신 몰락 양반
귀녀와 함께 최치수를 살해 모의하고 교살하나 발각되어 처형

28. 김한복
     김평산의 둘째 아들. 김두수와는 달리 평사리에서 만주로 독립자금 전달책을 맡는다.


29. 김훈장
    등과를 하지 못하고 향반으로 살면서 평사리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어른. 아들 셋을 잃고 심화병으로 부인도 잃고 막내딸 점아기가 궁색한 살림을 꾸려나가고, 한경을 양자로 맞이한 후, 윤보 등과 의병활동 서희 일행과 간도행.

30. 두만네
    김이평의 처. 경위 바르고 포용력, 한복과 임이네 돌봐준다. 김이평이 의병 가담하지 않아 평사리 주민들에게 부채의식

31. 또출네
     평사리의 미친 여자,아들이 동학당으로 포살 되자실성하여 마을을 떠돌다가 최치수가 살해당 하던 날 그곳에 불을 질러 함께 죽는다.

32. 문 의원
     한의사로 최참판 가 주치의, 우관스님 죽마고우며 윤씨부인 임신 사실 숨기고 보호

33. 바우 할아범
     윤씨부인 몸종.

34. 박수동
     최참판댁 하인.

35. 봉순네
     최참판댁 침모, 귀녀의 음모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윤씨부인에게 알림. 1902년 호열자로 죽음

36. 서금돌
    목청 좋은 노래꾼.

37. 우관스님
     연곡사 주지, 김개주의 친형, 길상의 대부, 최 씨 집안의 정신적 후견인 역할.

38. 월선네
     평사리 무당, 윤씨부인이 겁탈당하여 임신 사실 알고 구원.

39. 이동진
    최치수와 장암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 독립운동 투신. 이상현의 부친.

40. 정한조
    마을 습격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이전에 조준구를 무시한 것이 화근이 되어 폭도 누명 쓰고 왜 헌병에게 총살.

41. 칠성
    평사리 농민, 임이네 남편, 평산의 유혹에 넘어가 귀녀에게 씨를 빌려주어 임신시키려 했던 사실 발각 처형.

42. 함안댁
    김평산의 아내. 남편이 살인죄로 잡혀가자 목을 매달아 열부의 길 가다.

43. 허윤보
    대목수

44. 홍 씨
    조준구의 처

45. 강두매
    귀녀가 옥중에서 낳은 칠성의 씨, 강포수가 길러. 간도 송장환에게 맡겨져상의 학교 다니며 이홍, 박정호 등과 동문수학 나중엔 사회주의자.

46. 강의원(강우규 1855~1920)
    역사상 실존인물. 1911년 북간도 망명 독립운동가, 서대문형무소 사형, 토지에서는 독립운동가 교육 사업하는 한의사로 등장 주갑의 급체를 고쳐준다.

47. 공노인
    공월선의 백부. 강원도 인삼장사, 월선과 용정에서 터를 잡고 객주 업,서희가 빼앗긴 토지와 재산 되찾는데 중심적인 역할.

48. 공송예
     공 노인의 양딸.

49. 권필응
    운헌 선생 아들. 만주 일대 독립운동가.

50. 박재연
    박재수 동생. 박재수가 러시아 간첩 혐의로 김두수의 손에 총살당하자 김두수 추적.

51. 박정호
     강두 메, 이홍 절친.

52. 서의돈
53. 송관수
54. 송병문
55. 송영환

56. 옥이네
     용정 과부로 김길상 가까이 지낸다.

57. 윤도집
     운봉 양재곤 계열의 동학 잔당.

58. 윤이병
    상이 학교 교사.

59. 임역관
     임명빈 아버지. 공 노인과 황태수 중개 조준구 함정에 빠뜨리다.

60. 장인걸
    만주 독립운동가

61. 정석
     정한조 아들 물지게꾼. 관수 따라 동학운동, 조준구에게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조준구 심부름꾼. 서희 평사리 복귀에 역할.

62. 혜관 스님
     연곡사 금어 길상에게 그림지도.

63. 강봉기
    평사리 농민. 딸 두리가 삼수에거 겁탈, 이를 숨기려고 복동네가 삼수가 불륜 저질렀다고 헛소문
복동네 자살, 석이의 설득으로 자복 마을 주민에게 돌 맞다.

64. 강선혜
     마포 강서방 외동딸. 권오송과 재혼.

65. 길여옥
     명희의 동창 절친.

66. 김강쇠
     지리산 숯 굽는 천민. 김환의 심복, 김환을 밀고한 지삼만에게 복수하러 잠복했다가 지 서방에게 피살되는 모습 목격.

67. 김두만
    김이평의 장남. 윤보를 따라 서울에서 목수일, 진주에 정착 결혼 후 막딸이 구박, 쪼깐이(서울네) 비빔밥 집하고,자신은 술 도매 부 축적, 축첩.

68. 선우 신
    개화기 신지식인.

69. 선우일
    선우신의 형. 이상현 절친.


70. 성환 할머니(석이네)
     정한조의 처. 정석, 순연. 복연 어미, 석이 아내 양을례와 손자 양육문제로(성환, 남희) 갈등.

71. 양소림
     진주 양교리 집안 외동딸. 의전 학생 허정윤과 결혼.

72. 양을례
    정석이 처.

73. 염장이
    이홍의 첫사랑 상대.

74. 이순철
     최환국 절친.

75. 권오송
     극단 산호주 대표. 강선혜 잡지 <청조> 출자가 인연이 되어 재혼.

76. 귀남
    정한조 외손주. 정순연의 장남, 장연학 경영 여관 일.

77. 귀남네(정순연)
     정한조의 장녀, 정석의 큰누이. 남편, 아들과 친정에 얹혀살다. 남편 노름판에 다니다가 가출
조카 남희, 성환.

78. 길여옥
    임명희 동창, 결혼에 실패 여수에서 전도사업, 기독교 반전 공작 운동 참여 형무소 수감
최상길의 도움 결혼 제의 거절.

79. 김범석
    김훈장 손자, 보통학교 졸업 후 독학 농사꾼, 마을 대소사 처리.

80. 김영호
    김한복의 장남, 진주농고 재학 시 맹휴 계획 주동자로 투옥 퇴학, 숙이와 결혼 통영 어업조합 취직.

81. 김한복
    김평산의 차남, 모 함안댁 품성 이어받다. 외가 함안을 오가며 평사리 주민들의 도움 성장
아버지와 형의 죄를 보상하기 위해 독립군 자금 전달 임무 수행.

82. 김휘
     김강쇠의 외아들, 지리산에서 숯 구우며 성장, 해도사 밑에서 공부
송관수의 딸 영선과 결혼. 소지감을 따라 통영으로 옮겨 조병수에게 소목장 배운다
강제징병을 피해 입산

85. 마천일
    마당쇠의 장남, 홍이의 화물차 조수로 일하다가 만주로 이주 사업 돕고,홍이 밀수사건 압송되자
진주로 귀향. 통영진주 노선버스 운전사,홍이 아이들 상의, 상근 남매 보살핀다

86. 몽치
    사당패의 아들. 산에서 죽은 아버지 시신을 지키다 해도사가 거두어 키우다
헤어졌던 누이 숙이 재회, 통영에서 어장 아비 꿈을 키우며 주점 하는 연상 과부 모화와 결혼
징용 피해 도망 온 사람 어장 일꾼 고용 두호한 혐의 경찰에 체포 고문당하고 출옥 후 도솔암 은신 산사람들과 합류.

87. 박효영
    진주 외과의사 최서희의 주치의. 아내 익란이 후배와 도망 패배감과고독
최서희 사랑 느껴 고백 거절, 재혼했으나 자살

88. 배설자
    일본 경찰의 끄나풀 곤도게이지 정부, 일본 밀정 아버지를 독립투사로 가장하고, 상류사회 누비고 사기 행각. 친일 연설, 스파이 노릇, 익명의 청년에 의해 살해

89. 성환할매(석이네)
    정한조의 처, 조준구에게 누명을 쓰고 죽은 후,정석, 순연, 복연 키우며 산다
석이 만주로 피신한 후 손자 성환, 남희를 맡아 키우며 딸 귀남네 냉대 성환의 징용 충격 눈이 먼다. 

90. 소지감
    지리산 도솔암 주지. 20년간 방랑 도솔암 정착, 해도사, 강쇠. 관수 교류

91. 송관수
    평사리 농민, 최참판댁 습격 가담 후 은신처에서 만난 백정 딸 영선네 결혼.
동학 잔당 중심인물 의병활동, 형평사 운동, 부산 부두 노동자 파업 관여 일경 표적 만주로 도피, 백정 신분 이유로 악극단 트럼펫 주자로 전락한 아들 영광을 보면서 신분에 대한 혐오감과 자기 비하, 만주 조직 합류 일하다가 모란강 방면에서 호열자로 사망.

92. 송영광
    송관수의 장남. 부산 p고보 재학 중 강혜숙과 사랑, 그녀의 부모가 백정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소동 퇴학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판에서 다리불구. 길상의 후원을 거절하고 악극단 트럼펫 주자 겸 작곡가 유랑
양현과 사랑에 빠져 심한 갈등.신분 차이 허무 의식 탈피 못해 만주행.

93. 쇼지
유인실과 오카다 사이 아들, 조찬하에거 맡겨져 부모를 모른 채 자란다

94. 양을례
    정석의 처. 나형사와 불륜 마을에서 쫓겨나고,부산에서 일본인 야나기와 동거 고급 요정 경영 딸 남희를 데려갔다가 일본 중위에게 강간.

95. 영선네
    송관수의 처. 관수가 죽자 영광과 만주로 가서 유해 가져와 도솔암을 거쳐 평사리 앞 강에 뿌리고
영광과 양현이 맺어지길 바라지만 영광이 만주로 떠나자 도솔암 은거.

96. 오가타 지로
    세계주의자 자처 일본인. 사촌인 지에코 약혼 사이지만 파혼하고 인실과 통영에서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인실이 떠나자 방랑. 신경에서 무라카미와 어울리며 찬하의 도움으로 인실과 재회하나 후일 기약 헤어지고 신경에 정착 

97. 옥선자
    이상의를 좋아하는 ES여고 친구.

98. 우개동
    우가의 둘째 아들.아버지가 죽은 후, 징용 간 동생 덕에 면소 서기 되어,징용병, 정신대 모집 앞장서 일제의 세력 등에 업고 온갖 횡포. 군수를 찾아간 최윤국에 의해 파면되고 지리산 입산 산사람들에 몰매 맞고 죽는다

99. 유인실
    동경유학생 출신 항일의식 신여성. 계명회사건 투옥 오카타에게 순결 바치고 떠나버린다
동경에서 쇼지를 낳아 조찬하에게 양육을 부탁하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 조직에 가담.

100. 이민우
    이상현의 차남 일본 와세다 진학. 양현을 사모했으나 이복동생 충격 일본에서 행불.

101. 이범호
    이범준의 사촌동생, 투철한 사회주의자, 도솔암 피신중 해도사 등 지리산 사람들과 갈등.

102. 이상의
    이홍의 장녀이자 이용의 손녀. 조선으로 압송된 부모를 따라 귀향, 천일네 도움을 받으며 진주 ES여고
진학.

103. 이양현
    이상현 기화 사이 난 딸. 아편중독된 기화가 자살한 후 서희의 양녀. 여전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지만 성장 비밀 알고 정신적 방황. 환국을 찾아온 영광과 운명적 만남, 격렬한 사랑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영광이 만주로 떠나고, 남매처럼 자라온 윤국의 사랑고백과 윤국과의 결합을 원하는 서희를 피해 집과의 연락을 끊고 인천의 개인병원에 머물다가 인천에 찾아온 서희와 화해하고 평사리로 돌아와 해방을 맞는다.

104. 이홍
    이용과 임이네 사이 아들. 간도에서 성장한 후 생모 임이네와 그리운 어머니 월선 사이 갈등
김훈장의 외손녀 허보연과 결혼, 임이네와 이용이 죽고 간도로 다시 건너가 자동차 서비스 공장 경영
만주에서 씨 다른 누이 임이로부터 괴롭힘 당하기도 하나 동사한 누이 장례 지냄. 하얼빈에 영화관 차리고
영광 직장도 알선해주고, 이상현, 정석과 교류.

105. 임명희
    임명빈의 동생. 상현을 사모하나 거절당하고, 조용하와 결혼, 시동생 찬하의 사랑 감정 때문에 조용하의 질투와 가학에 시달리다가 결혼 청산 자살시도. 친구 길여옥 도움으로 새로운 삶. 조용하가 자살 후 서울로 돌아와서 조찬하의 도움으로 유산을 상속받아 유치원을 운영하며 말년.

106. 홍성숙
     양소리의 이모. 조용하와 불륜녀

107. 장연학
     평사리 장서방의 아들. 서희가 진주로 귀향한 후 서희 집 사무장 역할. 평사리와 진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해결사. 후에 서희 집에서 독립, 진주에서 남강 여관 경영. 남희의 강간사건 개입 치료 후 도솔암에 정양시키고, 도솔암 은신 젊은이 외부 연락하며 해방의 소식을 듣고 춤추며 돌아오는 모습이 말미 장식.

108. 정남희
     정석의 딸. 집 나간 어머니 양을례를 따라갔다가 일본군 중위에게 강간 당해 성병과 정신적 상처로 고생, 장연학의 도움받아 비밀리 치료받고 도솔암 요양후 평사리로 돌아온다.

109. 정성환
     정석의 아들. 부모가 없는 가운데 할머니 석이네 손에서 성장. 최참판 가의 잔심부름하며 진주 중학 나오고 서희의 보조를 받아 대학 진학중 징용.

110. 조병수
    조준구의 곱새 아들,부모로 부터 외면과 수모 수차려 자살시도. 신분도 버린 채 통영에서 소목장이로 다시 태어남. 자신을 버린 아버지 조준구가 쇠잔한 몰골로 찾아오자 갖은 학대를 받으면서 병시중과 임종을 지킨다. 은신한 젊은이들을 위해 식량을 가득 가지고 도솔암에 와 길상이 그린 관음 탱화를 보고 서희와의 사랑과 오랜 갈등에서 벗어난다.

111. 조찬하
     친일 귀족 조병모 남작의 차남. 형의 방해로 명희와의 사랑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도피 노리코와 결혼. 인실과 오카다의 사랑의 주요한 관찰자로 그들의 아들 쇼지를 거두어 키운다
일본과 조선, 만주 등지를 여행하며 인실과 오카다의 재회를 돕기도 한다. 일제 말 공습을 피해 북해도로 이주한다.

112. 최윤국
     최서희의 차남. 진주고보 재학 중 광주학생 사건의 연장인 맹휴 사건으로 연행 무기정학 처분을 받으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Y대학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사회주의 성향 관여. 남매처럼 자라온 양현을 사랑하지만 양현의 거절로 만주로 가가위해 자원입대.

113. 최환국
     최서희 장남. 서울 K중학을 거쳐 일본으로 유학, 동경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 후 사립중학의 미술교사로 일하며 역량 있는 화가로 인정받는다. 근화 방직회사 황태수 사장의 막내딸 덕희와 결혼하지만 덕희와 양현의 갈등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양현과의 사랑 실패로 친구 송영광이 만주로 떠나자 자책감에 빠지고, 쓸쓸한 어머니의 사랑과 집을 떠나야 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며 조용하고 성실한 가장으로 집안을 지킨다.

114. 해도사(성도섭)
     중인 출신으로 풍수지리에 조예가 있고 운봉 양재곤의 조카. 살림이 부유하여 어릴 때부터 학문을 닦았으나 기구한 운명 탓에 지리산 움막에 은거. 산에서 발견한 몽치를 성인으로 성장시킨다.
도솔암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 모임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며,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이범호의 폭력주의를 경계한다.

2020.05.17.12:52경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외부활동 억제로 인해 통영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읽기 시작하여 2020.07.24.13:15경 출판사 마로니에북스에서 발행한 "소설로 쓴 한국 근대사" 20권을 끝내다.

1부 1~4권(1897~1908) 최참판댁을 둘러싼 평사리 사람들 이야기

2부 5~8권(1911~1917) 최참판댁 간도 정착기

3부 9~12권(1919~1929) 3.1 운동 그 이후, 문화통치의 현실

4부 13~15권(1930~1938) 중국과 소련, 일본 그 사이 조선

5부 16~20권(1940~1945) 1945년 8월 15일 광복, 독립만세!


1945년 8월 15일
읍내 갔다가 나룻배에서 내린 장연학이 둑길에서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모자와 두루마기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동저고리 바람으로,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끝>

토지는 20권으로 총등장 인물이 700명이며, 평균 1권당 434페이지이며, 총 8,684p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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