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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가 미운 오리 새끼일 줄 몰랐다카이

버팀목2 2023. 11. 2. 17:43

사투리가 미운 오리 새끼일 줄 몰랐다카이

                                                                                           

                                                                                               양미경 수필가

 

 

어릴 때는 사람들이 다 내처럼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나이 들면서 여러 지역 사람들 만나고 보니까 내 말을 그 사람들이 잘 못 알아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 발음 좀 고치면 좋겠다고, 사투리가 좀 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쳐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사투리를 고친다는 것이 생각보다 안 쉬웠다. 내가 할 말을 표준어로 옮겨 적어서 읽으면 겨우 되는데 그때뿐이었다. 적은 글을 안 보고 이야기하려면 사투리가 막 튀어나왔다. 그리고 사람들하고 대화하면서 할 말을 매일 글로 쓰고 읽어 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세월이 변하니까 점점 더 절망할 일들이 생겼다. 과학이 끝도 없이 발달하다 보니 옛날에는 리모컨으로 작동시켰는데, 요즘은 말로 지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언어 감지 기능이라 하는 것이 그것이 딱 내 같은 사람 곤란하게 하려고 만든 것 같다. 요즘은 텔레비전도 소파에 누워서 "지니야, 채널 몇 번 돌려 봐라, 여행 프로그램 한번 켜 보아라." 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다시 말씀해 보세요."

이렇게 한다니까. 그러면 딱 울화가 치밀어 얄미워 죽겠어. 경상도에서 물건 팔려고 하면 경상도 말을 알아듣게끔 만들어야 될 것 아닌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전화국에 전화해서 "경상도 말 알아듣는 지니는 없어요."하고 물어보았다. 어이가 없는지 대답을 안 하더라고. 

  

   어디를 가든지 그 지역 문화가 있고 그 지역 말이 있다. 영어가 세계공통어라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사람들 모두 영어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산 컴퓨터도 한국에 팔 때는 한글을 적용해서 파는 것이 정상이다. 처음부터 경상도 사투리가 표준어로 채택되었으면 지금은 서울 사람 말이 사투리 되었을 것이다.

   안다, 알아. 사투리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해보는 넋두리다. 내는 사투리 한번 고쳐보려고 힘을 쓴 것이 아마도 30년 다 되어 갈 것 같다. 거짓말 아니다.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글은 똑바로 써면서 말은 어떻게 사투리를 못 버리느냐.'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 속 사정을 모르는 사람 이야기이지. 혓바닥이 표준어 쪽으로 안 굽어지는데 어찌하겠냐. 내가 더 답답해 죽겠다.

 

   몇 년 전에 글 선배한테 내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그 양반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양 선생, 그러지 말고 사투리로 수필을 써보는 게 어떻겠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암만해도 그렇지. 사투리로 문학작품을 쓴다고 하는 것이 이야기가 되나? 사람들이 뭣이라고 수근 되면 개망신당한다고.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어떻게 한번 써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살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해보려고 하니까 갈등이 만만찮았다. 그때까지도 내가 해온 수필작업들이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방향을 확 바꾸는 것이 옳은 것인가 싶었다. 사투리로 수필을 써 가지고 사람들한테 웃음거리가 되면 이것은 낭패 아닌가. 고민을 몇 달을 했었다.

 

   그러다가 딸아이 집 간다고 기차 타고 가다 보니 기찻길 옆에 판잣집 다닥다닥 짓고 살던 마을 생각이 후딱 떠올랐다. 아, 이 이야기는 사투리로 쓰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가지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 >도 쓰고 이어서 시집 《난중일기》에서 <만지도>를 읽고는 만지도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래가지고 '내 쫌 만지도'로 써보니까 쓰는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써 기는 썼는데 발표하려고 하니 또 망설여졌다. 어느 날 큰맘 먹고 발표를 했는데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우스워죽겠다고, 계속 쓰라고 전화가 왔다. 거기서 용기를 얻어 가지고 사투리로 수필을 쓰고 발표하고 책으로 엮어서 출판도 했다. 책 제목이 《내 쫌 만지도》이다.

 

  어느 날 서울에서 전화가 오더니 '조연현 문학상'을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내 쫌 만지도》가 수상 대상이라고 하는데 사투리로 쓴 수필이 상을 받을 만한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 얼떨떨했었다. 상의 위상을 떠나서 사투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고향 경상도 사투리로 평생 수필작업을 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요새는 '갱상도 사투리 수필 2집' 준비하고 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사투리로 정말로 미워했는데 이것이 생각해 보니 내에게는 '미운 오리새끼'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 사투리수필이 무슨 백조라도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개인한테는 틀림없는 백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여하튼 백조면 어떻고 오리면 어떻겠나. 알만 잘 낳으면 된다. 그렇다, 계속 앞으로 열심히 사투리 수필 써 보겠다. 

 

▣. 사투리를 표준어로 고치기 숙제를 하기는 했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봉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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