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0(일) 맑음
「 여우난곬족 / 백석 」
※여우가 자주 출몰하는 골짜기 부근에 사는 일가 친척들 이야기를 현대문으로 인용.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
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後妻)가 된 포족족하
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
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
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
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
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
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찰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
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
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이렇게 밤이 어둡도
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랫간에들 웃고
이야기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께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
고 이렇게 화댕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랫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
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
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끊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
록 잔다
은혜사 석일공 스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부탁하는 전화였다.
거두절미하고 초파일날 줄테니 돈 100만원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내한테까지 부탁했으랴 싶었다.
시주하는 마음으로 계좌번호를 찍어 달라고 했다.
감사드린다는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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