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방

조물주는 공평하다

버팀목2 2011. 5. 12. 15:38

조물주의 공평함에 대하여

 

2011년5월9일 월요일 야간 당직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숙직실에서 잠을 청해 본다

억지로라도 눈을 좀 붙여야 새벽이 덜 괴롭다

모닝콜을 12시40분에 맞춰 놓고 잤는데

아무런 영문도 없이 잠이 깨졌다

12시20분이다

01:00가 교대시간인데 누운채로 망설이다가 벌떡 일어났다

 

예정시간보다 일찍 교대를 하고 상황실 의자에서 깜박 졸았다

 

-상황 1-

음주운전으로 직장에서 쫒겨나 고향으로 가서 중고 자전거를 타고 어릴 때 뛰놀던 논뚝길을 한참 동안 혼자서 달리며 고뇌에 차 있다

아직 한참 일할 나이에 실직자가 되었고,

자식 두놈 아직 출가도 못 시켰는데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시 복직하려면 공개채용 시험을 치러야 한단다

내일 당장 영어 단어집부터 사야겠다.

 

-상황 2-

군대 제대한지 34년이 지났는데 이제와서 다시 징집통지서가 나왔다

내일모레 머리박박 깎고 훈련소에 들어가야 한단다 기가 막힌다.

 

낙숫물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는데

짧은 시간에 위와 같은 두가지 꿈을 꾸었다

젤 기뿐 나쁜 꿈이다.

 

낮부터 내리던 비는 가는 이슬비에서 빗방울이 굵어져 소낙비로 변해 온 세상을 힘차게 두들기고 있다

한 동안 멍하니 창문 밖을 초점 잃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가

저 멀리 책상 앞에서 안경 너머로 뭔가를 열심히 끄적이고 있는 친구가 있다

살며시 호기심이 일었다

 

발소리 죽여가며 그 친구의 어깨 너머에 섰다

내가 등뒤에 서 있는 것도 모른 채 그 친구는 열심히 A4 용지 두장 째 글을 쓰고 있었다

 

♠ 내 나이 56세 공무원 마누라 만나 맞벌이 하여 돈도 모았고 자식도 둘 낳았다

   얼마전 여유자금 2억8천만원을 투자하여 가까운 지역에 밭떼기 딸린 전원 주택도 사서

   주말이면 달려가 텃밭에 고추, 상치도 심었다

    마루에 서면 발아래 크다란 저수지가 있어 여름에는 시원이 바람이 불어 올 것이다

 

    3년전 직장 암 수술을 받고 다행히 빨리 발견되어 6개월간의 항암치료를 받고

    이제 정상인에 가까워 졌다

    그런데 신체에 문제가 생겼다

    남성기능이 작동 불능이다

    수소문 끝에 좋다는 약을 구해 복용해 보았지만 별다른 효험도 없었다

    이렇게 유난히 빗소리가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날에는 한잠도 눈을 붙일 수가 없다 ♠

 

여기까지 읽고 난뒤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헛기침 하면서 이 밤에 무슨 글을 쓰노?

못 본 척 하면서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티비를 틀었는데 온통 19세 이상 볼 수 있는 낯 뜨거운 정사 장면만 나오는 프로만 칠갑이다

 

티비를 끄고 눈을 감았다

정신은 더욱 몽롱해 져 온다

 

정년을 4년 앞두고 있다

평소 고향에 땅떼기 한평 없는 것이 한 처럼 어깨를 누르곤 했는데      

맘을 달리 먹기로 한다

큰 시련없이 여기까지 왔고

자식 두놈 부모 속 썩인적 없고

 

남은 4년 마무리 잘해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건강 챙기며

불평불만 하지 말고

조물주의 공평함에 감사하며 살련다...

 

2011. 부처님 오신날에

버팀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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