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1.08.06(금)

버팀목2 2021. 8. 6. 14:45

2021.08.06(금) 맑음

 

몸과 마음을 불태운 사랑도

결국 남는 것은 들끓었던 감정의 기억 아닌가? 

 

▣ 홍정욱 에세이 '예술은 인간이 신의 영역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中- p83.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갑자기 그가 남긴 말 한마디가 뇌리를 스쳤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도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인가?"

국회의원직에 대한 고민은 이미 당선 직후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사회가 양분되고 국회가 공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시작했었다. 그 후 끊임없는 정쟁과 반복되는 몸싸움 속에서 초선 의원의 미약한 날갯짓을 계속하며 내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비전으로 시작해 성과로 끝나는 경영과 달리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곳, 국가와 국민 대신 당파와 지지층을 위해 일하는 곳에서 소명의 감동을 찾기는 힘들었다. 결국 그날 나는 잡스의 질문에 마침내 "아니다'라고 명확히 답할 수 있었다. 두 달 뒤 나는 제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듬해 국회의원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진정한 성공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삶이다.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을 안 해도 되는 삶, 즉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없는 삶이다. 물론 누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삶의 90퍼센트가 그칠 날 없는 싸움과 기다림, 의미 없는 행사와 목적 없는 모임으로 채워져 있다면 이는 재고할 가치가 없는 삶이었다.

 

   부족한 나를 믿고 응원해준 상계동 주민들과 당원들이 끝까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맹자는 "벼슬을 하는 자는 직분을 다 못하면 떠나고, 꾸짖음을 맡은 자는 말이 안 통하면 떠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오로지 내 역량의 부족을 꾸짖으며 국회를 떠났다.

 

   몇 년 후 어느 봄날, 나는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며 내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때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동시대를 살았음을 기쁨으로 여기며." 

 

"문 앞의 한 줄기 길, 산자락 나서자 천 갈래 길이 되더라는고운(孤雲) 최치원. 천 갈래로 펼쳐질 삶의 길을 고민한다."

 

홍종욱 에세이 집에 푹 빠진 기분입니다.

 

저녁에는 혼술을 즐기며 뜨거운 오늘을 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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