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21.07.25(일) 대성골

버팀목2 2021. 7. 26. 07:37

2021.07.25(일)

대성골(의신~원대성)

 

산행코스 : 의신마을 주차장 → 의병 묘 → 대성주막 → 대성 석문 → 원대성 독가촌 →원점 회귀

▣ 거리 : 왕복 약 8km

 

 

 

1 진은 먼저 올라갔고

2 진만...

 

 

 

 

대성 석문

 

원대성 독가촌

 

독가촌 주민이 접근을 꺼려해서 여기서 원점회귀했습니다

 

원대성 독가촌 채마밭

고추, 상추, 배추, 호박, 감자 

 

절구통이 방치되어 있는 지점으로 보아 원대성 독가촌 아래 부근에도 화전민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

 

원대성 주민의 통행로

 

 

원대성 쉼터

의신 3.4km, 세석대피소 5.7km

 

 

2시 방향이 지리산 주능선 덕평봉?

의신마을에서 삼정마을로 가는 저 계곡이 빗점골 계곡이고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된 곳이지요.

 

의신마을 주차장

주차장이 따로 없고 적당한 장소에 각자 알아서 주차시킴.

 

 

의신마을에서 주차시키고 대성골 올라가는 길

 

 

 

대성동 주막에서 미리 예약한 닭백숙과 도토리묵, 산채 나물로 배를 채우고 다섯은 원대성으로 올라가고,

다섯은 물놀이한다고 내려 갔는데 원대성 독가촌에서 돌아오다가 대성동 주막에서 목을 축이고 있는데 먼저 물놀이 한다고 내려갔던 일행들이 국공한테 들켜서 소동이 났다고 연락이 와서 우리 일행 다섯은 계곡에 발도 한번 담가 보지 못하고 내려와서 의신마을 개울에서 발만 씻고 왔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지리산의 빨치산 현황은,

1951. 8월 빨치산이 지리산에 집결했는데,

 

전북도당 위원장 방준표 : 뱀사골

전남도당 위원장 박영발 : 화엄사골, 문수리골, 피아골

경남도당 위원장 남경우 : 대원사, 칠선골, 중산리골

이현상의 남부군 : 장터목, 세석평원, 영신봉, 덕평봉, 꽃대봉, 명선봉, 거림골, 대성골, 영원사골을 각각 차지하고 있었다고 소설속에 나옵니다.

 

대성골을 활동무대로 삼고 있던 남부군의 총사령관 이현상에 대해서만 잠깐 열독합니다

 

 

地異風雲堂紅洞 (지리풍운당홍동)

伐劍千里南州越 (벌검천리남주월)

一念向時非祖國 (일념향시비조국)

胸有萬甲心有血 (흉유만갑신유혈)

 

지리산의 풍운이 당홍동에 감도는데

검을 품고 남주를 넘어오길 천리로다

언제 내 마음속에 조국이 떠난 적이 있었을까

가슴에 단단한 각오가 있고, 마음엔 끊는 피가 있도다

 

이현상이 사살되었을 때 품속에서 나온 한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1948년부터 시작된 빨치산은 6년 동안 1만 회가 넘는 교전을 벌였고,

죽은 사람만 해도 2만여 명이 넘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게릴라전이었다.

이런 활동에는 여러 걸출한 인물이 있었는데,

김지회, 박종하, 박영발 같은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남부군 총사령관으로 빨치산 활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이현상을 빼놓을 수 없다. 

 

이현상은 1906년 충남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에서 4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아났다.

 

지역에서 대를 이어온 전주 이 씨 양반가였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고창고보를 다니다, 서울로 전학하여 중앙고보를 졸업했다.

 

중앙고보 재학 중이던 1925년 박헌영과 함께 공산당 운동을 했고, 1926년 6.10 만세  사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다시 보성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조선공산당, 고려 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27년에는 휴학을 한 뒤 상해로 건너가 망명 청년들의 모임인 '한인청년회'에 활동했고, 학교로 돌아와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1928년 8월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일제 치하에서 총 12년 간의 옥살이를 했다. 

 

그 뒤 조선공산당이 해체되자 경성 컴을 만들어 활동했고, 해방 직전 일본 경찰을 피해 지리산으로 입산했다.

해방 후 산에서 내려와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하여 남로당 연락부장, 간부부장을 맡았다.

미군정 때문에 공산당 활동이 어렵자 월북했다가 모스크바 유학을 떠났다.

 

1948년 다시 서울로 내려온 그는 11월 지리산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사령관'으로 치열한 빨치산 투쟁을 이끌면서 골짜기마다 수많은 전설을 남겼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남한 곳곳에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다시 입산하여 1951년 7월 '남한 6개 도당 위원장 회의'에서 남한 빨치산의 사령관 자리를 맡았다.

1953년 휴전이 되면서 북한에서는 박헌영, 이승엽에 대한 숙청이 이루어졌고, 그해 8월 6일 지리산 빗점골에서 열린 제5지구당 조직위원회에서 제5지구당은 해체를 맞고, 평당원으로 내려앉았다.

 

또, 남부군의 핵심부대였던 제5지구당과 김지회 부대를 여러 지역에 분산시키면서 그는 모든 권한마저 박탈당하고 말았다.

1953년 9월 18일 (혹은 15일, 17일), 이현상은 빗점골 합수내, 너덜겅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의문의 총탄을 맞고 죽음을 맞았다. 이때 그 나이 48세, 화개장터 앞 섬진강변에서 화장되었다.

*빗점골 : 의신에서 삼정마을에 이르러는 계곡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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