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1.07.07(수)

버팀목2 2021. 7. 7. 14:30

2021.07.07(수) 장맛비 5일째 小暑

 

오늘은,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절기 '소서'는 작을 小와 더위 暑로 작은 더위라는 뜻을 지닌 절기입니다.

퇴직하고 나서 2~3년 지나고 난 뒤 월간 '공무원연금지'를 구독하게 되었는데 

06/22자 연금공단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제20회 공무원연금문학상을 구독자 대상으로 작품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제는 '가족'이며 응모분야는 '시 또는 수필로 1개 분야, 1개 작품만 응모 가능하고,

응모기간은 '6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이며

 

시상은 각 분야별 '금상 1명(상금 150만 원), 은상 2명(상금 100만 원), 동상 3명((상금 50만 원)으로 진행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응모하였습니다.

 

제20회 공무원 연금 문학상 '수필'부문 공모 원고

 

"부끄러운 자화상"

 

내가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기 전에 내가 살아오면서 저지른 과오를 밝혀두는 것이 최소한의 내 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형님 두 분에 대한 예의이고 그 과오에 대한 갚음을 위해 집안을 위해 헌신한 내 삶을 조명해 둠으로써 저승에서 만나도 떳떳하지 않을까 하는 위로로 삼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내 아버님 초상 때 일입니다.

나는 아버지 쉰다섯, 어머님 마흔넷에 빈농(貧農)의 12번째로 태어난 막내 사내아이였습니다. 울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늘 자식농사 반타작했다고 한탄처럼 흘려보냈습니다. 그 말인즉, 열두 명을 낳았으나 성인이 된 자식은 여섯이고, 여섯은 성장과정에 잃어 어머님 가슴에 묻은 자식들입니다. 내 나이 열한 살에 봄비가 내리던 날 새벽에 작은 방에서 자고 있는데 잠결에 큰 방에서 나는 통곡소리에 잠이 깼는데 어렴풋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겁이 덜컹 나서 아버지가 계신 큰방으로 달려가지 못하고 이불 밑에서 울고 있는데 어머니가 저를 불러서 집 뒤 냇가를 건너서 있는 작은 아버지 댁에 가서 장례절차를 물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어 장례가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과오는 그때의 일입니다.

마을 앞 뻔득에서 노제를 지내는데 끝나고 나면 제상에 올랐던 술과 떡, 제물을 장례식을 구경 나온 마을 주민과 줄을 선 아이들이게 나눠주는데 내가 그 떡을 받아먹겠다고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줄을 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내보다 아홉 살 많은 둘째 형님은 아버님 제삿날은 물론이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단골 메뉴로 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린 나이였지만 수치심에 몸을 떨었고 그래서 평생 가슴속에 그들 모르게 원망의 씨앗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두 번째 과오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입니다. 읍내에서 방위병으로 중대본부에 근무하는 중학교 동창생이 시골에 있는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다섯 살 많은 셋째 형의 이름을 대면서 학력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에 응겹결에 ‘중학교 졸업’했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우리 형제들 중에 중학교를 진학한 형제는 저 밖에 없고 그 사실이 친구들 사에서 콤플렉스로 평소 작용하고 있었는데 그 한마디가 나중에 집안에 풍파를 몰고 왔습니다. 당시 국졸은 방위병이고, 중졸 이상은 현역 입영 대상이었습니다. 셋째 형이 신체검사를 마치고 입영통지서가 날아오고 난 뒤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셋째 형님은 또한 말더듬이였습니다.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하여 현역군인 자원이 될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나중에 부산 국군 통합병원까지 가서 실사를 받는 과정을 거쳐 군 면제는 받았지만 그 복잡한 과정과 과다한 예산이 소모되었는데 동창생 앞에서 순간적인 쪽팔림 때문에 저지른 과오가 형님 셋에게 평생 미움을 받게 된 단초를 제공한 두 번째 과오였습니다.

 

이런 과오를 묻어둔 채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외지로 상급학교를 진학하고 싶은 꿈을 형제들이 접게 하였다고 또한 우리 형제들 중 모두 공부를 못했으니 너라도 열심히 하라던 옛말도 잊고 자기 자식들이 장성해 오기 시작하니 제 자식 챙기기 바빠 동생 내 팽게 쳤다고 원망하고 살았습니다. 이후 저는 경찰에 투신했고, 수사 주특기로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할 무렵 문중 일을 책임지고 있던 둘째 형님이 갑자기 화장실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쳐 돌아가셨는데, 당시 내 보다 열여덟 살 많은 큰 형님은 요양원에 계셨는데 둘째가 죽었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는데 이듬해 큰 형님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형님 두 분이 떠나시고 나니 내가 잘나 내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고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울타리가 되어 주신 형님들 덕분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새삼 느끼며,

 

김해김씨 삼현파 64 세손 현연(顯連) 공(公)이 저희 고향땅에 입주한 6대조 조부이시고, 문중 일을 보시던 둘째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문중 일을 맡을 사람이 없어 결국 이 길이 먼저 가신 형님 두 분에 대한 내 과오를 씻는 길이다 싶어 흔쾌히 맡아, 문중 재실과 재산관리는 물론이고 문중 종원들의 한결같은 염원인 38년 동안 방치되었던 가승보(家乘譜)를 2018년 6월에 제작 출간하면서 무술 보서(戊戌譜序) 서문(序文)을 남겼으며, 내 남은 생애 집안일을 살피고, 조카들 돌보면서 헌신하며 살다가 형님들 곁으로 가겠습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저녁엔 지인들과 송죽일식집에서 B코스로 쭈욱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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