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

2024.11.02(토) 영호남 친선 산행 영암 월출산

버팀목2 2024. 11. 1. 16:56

2024.11.02(토) 비





☆   가 을 비  편 지

울지 말아
가을이 흘리는 눈물은 너무 슬퍼
낙엽이 날리는 계절에 이별의 상처를
주지 말아요

그냥 그렇게
바람에 날리는 것들을 바라보게 해 줘
외로워도 울지 않을래
가을비 오는 날에 흘리는 눈물은
빗물이 되니까요

눈물이 빗물이 되는 걸 아무도 모르지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말없이 흐르는 빗물일 뿐
내 마음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하는 날들이
꽃잎처럼 피어나 빗물에 지워지는 건
당신의 사랑이 더욱더 그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사랑을 눈물로 지워버리고 되돌아섰지
뜰 안에 꽃이 피던 날
가을비에 젖어 꽃이 질 줄 알았다면
사랑하지 말 것을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그래도
사랑은 그런 거라고
한때는 예쁜 꽃이었으니 가을비 오던 날
살며시 꺼내어 그날을 기억합니다

☆* 강은 다 건너야 깊이를 안다 * 중에서
               이    도   연        글



♤      에          필         로         그

가을비 내린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비 그치면 하늘은 더 높아지고
높아진 만큼 그리움은 더 깊어질 텐데

깊어진 그리움에 구절초 핀 꽃 속에서
그대 모습 실컷 볼 수 있을 텐데


☆ 가을비 내린다고    /   윤   보   영

☆* 커피도 가끔은 사랑이 된다 * 중에서 ♡

 

 

 

 

남도 친선산행 통영산악연맹 대표로 10명이 거제에서 출발하여 오는 관광버스에 용남면 청구아파트 앞에서 06:20경 합류해서  가기로 했는데 여성 회원 2명이 늦잠을 자고는 정확히 27분 늦게 와서 지체되어 출발했다. 그로 인해서 공룡휴게소에서 충무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하는데도 식사시간 15분이 주어졌고,

 공식행사가 09:00경 영암 월출산 입구 국립공원 광장에서 계획되어 있는 관계로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평소 잘 아는 회원들이라 나무랄 수도 없고 또한 거제산악연맹 회원들도 꾹 참고 있는 터라 모두들 인내심으로 버티고 갔다.

 

월출산으로 가고 있는 버스안에서 양미경선생님으로부터 문자 메일이 왔다. 내용 인즉, 첨삭을 부탁했던 수필을 메일로 보냈으니 다시 수정할 내용이 있으면 수정하여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낚시 유감

 

김봉은

 

 내 고향은 읍내에서 십 리나 떨어져 있는 반농반어의 빈촌이다. 중학교는 읍내에서부터 오리나 더 비포장도로를 걸어서 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언제였던가. 마을에서 두어 살 위 형들이 마을 아래 선창가에서 낚시하는 모습을 보고는 낚시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학년이 바뀌자 가정방문 조사서에 취미가 무엇인지 적는 난이 있었다. 나는 적을 게 없어서 무심코 소 풀 먹이는 거요.’ 했더니 친구들이 폭소를 터뜨렸었다. 그 부끄러웠던 생각을 떠올리니 낚시를 배워서 취미가 낚시라며 정정당당하게 적어보고 싶었다.

 하루는 톱과 낫을 들고 남의 대밭에 바람처럼 숨어들었다. 주인 몰래 대나무 하나를 베어 집으로 와서 보니 굽어 있었다. 낚싯대용 대나무를 대충 보고 곧게 뻗은 대나무라고 벤 것인데 그대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대나무 곧게 펴는 방법을 동네 형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본 게 있어서 그대로 해보았다. 굽은 부위를 짚불에 구워서 뒤꼍에 펴놓고 담장 돌을 가져와서 굽은 부위를 눌러두었다. 며칠 후에 보니 희한하게도 곧게 펴져서 낚싯대를 만들었다.

 만들어 놓은 낚싯대로 낚시하기 위해 썰물 때 마을 아래 갯벌로 갔다. 오뉴월 땡볕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갯지렁이를 오후 내내 파서 잡았다. 해 질 무렵 산에 풀어놓았던 소를 집 외양간에 매어 놓고는 바닷가로 내달렸다.

 방파제에서 밀물에서 썰물로 바뀔 때까지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깜깜하게 어두워진 둑길을 따라 집으로 오는 길에 그리 정성스레 만들었던 낚싯대를 분질러서 팽개쳐버렸다. 다시는 낚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허공에다 냅다 소리를 지르고는 집을 향해 너털너털 걸었다. 낚시생각에 들떠서 온종일 빈속이라는 것을 뱃속에서 쪼르륵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허기를 느꼈다.

 몇 날 며칠을 낚싯대로 쓸 대나무를 꺾을 기회를 엿보고, 굽은 대나무를 곧게 편다고 짚불 연기에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하루해를 보냈고, 땡볕 아래 미끼 판다고 비지땀 흘렸는데 내 강태공 입문은 이렇게 허사로 막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가 된다. 서너 번 더 시도도 해보지 않고 그만두다니! 그래도 다행이다. 다른 일들은 중도하차 안 했기에 이 정도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요즘은 돈만 있으면 낚시점에서 입맛에 맞는 낚싯대를 고를 수가 있고, 미끼도 잡을 생선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다. 시간과 취미만 있으면 언제든지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어릴 적 못다 이룬 낚시꾼의 꿈을 한 번 더 시도해 볼까?.

 

 낚시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첫 부임지 파출소장님이셨다. 소장님은 비번날이면 차석이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어디론가 모셔다드리고 오곤 했는데, 알고 보니 낚시터였다. 소장님은 김해 출신이라 바다낚시보다 저수지나 수로에서 민물낚시를 즐긴다고 한다. 특이한 것이 차석이 오전에 소장님이 원하는 장소로 모셔드렸다가 저녁 무렵 모시러 가면 처음 내려 준 곳에서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계셨다고 한다.

 훗날 직장 단체 회식 자리에서 낚시터에서 고기가 입질이 없으면 장소를 이동해야지, 왜 같은 장소에서 계속하느냐며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이러했다.

 “낚시터는 명상하는 자리라네. 처음에는 오늘은 어떤 종류의 고기가 입질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살아온 과거를 반추하면서 잘못에 대해 반성도 하고, 닥쳐올 미래도 구상한다네.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세월을 낚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진정 강태공이셨다.

 소장님은 평생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사셨다. 이태 전 갑작스러운 부고를 전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가족에게 저가 달포 전에 목욕탕에서 만났을 때는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느냐며 여쭈어보았다. 갑자기 급성 췌장암 판정을 받고는 수술비와 항암치료 등을 걱정하시면서 남은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고. ‘이제 살 만큼 살았다라며 그만 수저를 놓고는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평생 사치라고 모르며 직장에 충실하던 그분의 털털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낚시 생각하니 좋은 추억보다는 유감이 많다. 아직 늦지 않았을까? 이제 나도 내 인생을 반추해 보며 세월을 낚기에 늦지 않았을까. 낚싯대 하나 사서 들고 바다나 강으로 가볼까나.